검진에서 해독→분석까지 24시간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12.3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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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유전자 교체로 병에 걸리기 전에 예방 가능

한동안 ‘지놈 지도를 완성했다’ 또는 ‘유전자 정보로 맞춤 치료가 가능하다’는 소식을 접해도 먼 미래의 이야기인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들렸던 것이다. 그러나 유전체 검진은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유전 정보를 이용해 최상의 치료법을 제시하는 병원이 국내에 생겼다. 서울아산병원은 2012년 12월28일 유전체맞춤암치료센터를 열었다. 5백여 개의 암과 관련된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아내고 그 암에 맞는 항암제로 치료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는 폐암과 담도암 환자를 우선 대상자로 한다. 김상위 유전체맞춤암치료센터 교수는 “항암제의 치료 효과 및 부작용 발생 정도는 환자마다 다르고, 편차도 워낙 심하다. 최상의 치료를 위해서는 정확한 사전 분석이 중요하다”라며 유전체 분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은경 교수는 “8백여 개의 항암제 중에서 환자에게 맞고 부작용도 적은 항암제를 선택해 치료를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조직검사로도 암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유전체 검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조직검사를 위해 환자가 고통을 참아가며 조직을 떼어내지 않아도 된다. 또, 현재 검사법으로는 잡아내지 못하는 작은 암세포도 찾아낼 수 있다. 심지어 그 암세포의 유전자를 검사해 폐암인지, 췌장암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학자들은 10여 년 전부터 유전체 해독과 분석에 매진했고, 미국과 영국 등 6개국 공동 연구팀이 2003년 최초의 ‘인간지놈지도’를 완성했다. 한국은 2008년 한국인 지놈 지도를 내놓았다.

서울아산병원의 유전체맞춤암치료센터 의료진이 유전체 샘플을 살펴보고 있다. 원 안은 미국 국립암연구소가 공개한 46개의 인간 염색체 모습. (위)ⓒ AP연합, (아래)서울아산병원 제공
적은 비용에 피 한 방울로 검사 가능

일반인이 개인적으로 유전체 해독·분석업체에 유전체 검진을 의뢰할 수는 없다. 반드시 의사와 상담을 통해야만 유전체 검진을 받을 수 있다. 유전체 검진은 건강 검진보다 단순하다. 건강 검진을 받으려면 반나절 또는 1박 2일 동안 병원에서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여러 검사를 받아야 한다. 유전체 검진은 몇 분 만에 끝난다. 병원에서 혈액을 뽑거나 타액(침)을 채취하면 된다. 과거에는 헌혈하듯이 많은 혈액을 뽑았고, 그 후에는 우유 한 팩(2백㎖) 정도의 혈액이 필요했다. 현재는 피 한 방울(1㎖)만 있어도 된다. 2013년부터는 면봉으로 입안을 긁어내는 것(상피세포)만으로도 가능하다.

2003년 최초의 인간지놈지도를 완성했을 때만 해도 유전체 해독, 분석 시간으로 13년이 걸렸다. 이 시간은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2012년에는 2주일 만에 유전체 해독과 분석이 가능했고, 기술의 발전으로 2013년에는 그 시간이 하루로 단축된다.

아무리 유전체 검진이 좋아도 비용이 비싸면 그림의 떡이다. 10년 전 유전체 해독 비용은 3조원이었지만, 2012년 1천만원으로 낮아졌고, 2013년 5백만원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30억쌍의 염기 서열을 모두 해독하는 시간과 비용이다.

질병과 관련된 염기 서열은 얼마 되지 않으므로 일부만 해독한다면 비용은 더욱 저렴해진다. 유전체 해독·분석업체인 테라젠이텍스의 김태형 유전체사업부장은 “2013년이 유전체 검진의 원년이 될 것이다. 과거 약 2주일 걸리던 해독 시간이 2013년부터 12시간 만에 가능해진다. 분석하는 시간까지 합해도 24시간을 넘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 샘플을 채취하면 다음 날 아침에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비용도 일부 암에 대한 유전체 검진만 하면 몇십만 원으로 내려간다. 가족력이 있어서 특정 질환에 대한 유전체만 검사한다면 몇만 원으로도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유전체 해독·분석업체인 테라젠이텍스의 한 연구원이 유전체 해독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병에 걸리는 시기도 예측  

사람의 염색체는 23쌍이다. 이 중에 22쌍은 모습이 똑같지만, 마지막 23번 염색체는 남자(XY)와 여자(XX)를 결정하는 성염색체이다. 이처럼 각 염색체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유전병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21번 염색체 일부에 이상이 생기면 다운증후군에 걸린다. 염색체에는 유전 정보가 있으므로 자녀는 부모의 유전병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그렇다고 유전병이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확률에 따라 병이 생기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테라젠이텍스의 김태형 유전체사업부장은 “질병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에 의해 생긴다. 전문가들은 질병 예측 공식을 만들고 있다. 유전자 돌연변이와 환경적 요인을 복합적으로 계산해서 실제로 질병에 걸릴지를 알아내려는 것이다. 또 언제 질병에 걸릴지를 예측하는 방법도 고안하고 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예측은 지금도 가능하지만 그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정보의 축적이 필요할 뿐이다. 심지어 특정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면 해당 유전자를 조작해 질병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도 있다.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연구하는 마이크로RNA(세포 안에 존재하는 가느다란 띠 모양의 염기 사슬)가 한 사례이다. 마이크로RNA가 질병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라고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 용량이 18~24개월에 두 배씩 증가할 것이라는 무어의 법칙을 능가할 정도로 유전체 분석 분야는 21세기 들어 가장 급격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타 분야보다 투자 및 기술 수준이 낮은 편이다. 정부는 2014년부터 2021년까지 8년간 5천7백88억원을 유전체 연구에 투자할 계획이다.

지식경제부가 만든 2011년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유전 정보 서비스산업의 시장 규모는 2007년 이래 매년 약 25%의 고속 성장을 보였다. 이 규모는 2014년 86억 달러(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장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는 미국으로, 2006년 약 10억3천만 달러를 투자해 전 세계 투자액의 35% 정도를 차지했다. 영국(3억6천만 달러), 일본(1억6천만 달러)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유전체 검진 시장은 구글(google)이 2006년 투자한 유전체 해독·분석업체(23andMe)가 수백 달러에 유전체 해독 서비스를 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한국에도 테라젠이텍스, 다엔에이링크와 같은 유전체 해독·분석업체가 생겼다. 이들 업체에 제약사와 IT업체들이 협력하고 있다. 신약 개발 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SK케미칼과 디엔에이링크가 유전 정보 서비스(DNAGPS)를 시작했고, 유한양행은 2012년 말 테라젠이텍스에 투자하고 유전정보 서비스(헬로진)를 내놓았다. KT도 고용량의 유전체 해독·분석 데이터를 관리 분석하는 서비스(지놈클라우드)를 하기 시작했다. 오세현 KT 신사업본부장은 “KT가 지놈 분야 신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디딤돌로 큰 의의가 있다. 지속해서 국내 다수 연구기관, 기업 및 의료기관의 방대한 지놈 데이터 공유 및 연구 네트워크 협력을 통해 맞춤 의료를 실현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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