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 잃은 민주당호, 기지개 켜는 문재인
  • 이가윤│매일경제 기자 ()
  • 승인 2013.01.08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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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만에 칩거 깨고 정치 행보 재개 “또 한 번 분열에 휩싸일 것” 비주류 반발

문재인 민주통합당 전 대선 후보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장기간 칩거에 들어갈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최근 정치적 행보를 하나 둘씩 늘려가기 시작한 때문이다. 문 전 후보의 당초 계획은 지난해 12월21일 시민캠프 해단식을 끝으로 경남 양산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칩거는 단 일주일 만에 끝났다. 그는 12월27일 비공식 일정으로 한진중공업 직원 고(故) 최강서씨의 빈소를 방문했다.

이를 시작으로 이후 잇달아 이어진 행보는 상당한 의미를 담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선 지난해 12월30일에는 광주 5·18 국립묘지 참배, 무등산 등반, 광주 지역 원로들과의 원탁회의 등 광주 민심 행보에 나섰다. 1월1일에는 새해를 맞아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도 참배했다. 이날 묘역에는 참여정부 전직 관료와 ‘친노(親盧)계’ 지자자 등 1천여 명이 참석해 세(勢)를 과시했다.

지난해 12월30일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대선 후보가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해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친노 그룹 “문재인 외에 대안 없다”

트위터를 통해서도 자신의 근황을 소개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1월2일에는 헬렌 켈러의 말을 인용해 ‘하나의 행복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그 닫힌 문만 너무 오래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 ‘비관주의자들은 별의 비밀을 발견해낸 적도 없고, 지도에 없는 땅을 향해 항해한 적도 없으며, 영혼을 위한 새로운 천국을 열어준 적도 없다’는 글을 남겼다.

문 전 후보는 연초에도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겨울 칩거를 뒤로 하고 엄동설한(嚴冬雪寒)에 ‘후보급’ 행보를 금방 다시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면초가인 친노 세력을 살리기 위해 또다시 총대를 메고 정치권 전면에 뛰어드는 것일까.

야권에서는 문 전 후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정치 행보로 오는 3월 혹은 5월로 예정된 민주당 전당대회 출마를 꼽고 있다. 당권을 노려 친노 세력을 부활시키고, 야권 정계 개편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물론 문 전 후보가 본격적인 기지개를 펴기 위해서는 곳곳에 넘어서야 할 변수들이 산적해 있다. 일단 1월9일 선출키로 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관심거리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28일 중립 온건 성향의 박기춘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된 후 비대위원장 선임에 박차를 가했다. 당초 당내 전체적인 분위기는 합의 추대를 통한 비대위원장 임명에 방점이 찍혔지만, 계파별로 선호하는 후보가 갈리면서 선출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당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의견을 한데 모으지 못하고 난항을 겪고 있는 이유는, 차기 전당대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비대위원장은 앞으로 민주당 전당대회 룰을 만들고 외부 세력 간 통합 논의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 당의 정책 노선을 수정하기 위한 정강 개정도 가능하다.

표면적인 역할의 이면에는 계파별 주도권 싸움도 내포되어 있다. 진보적 노선을 취하고 있는 친노측 인사가 비대위원장으로 들어설 경우, 친노 진영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된다. 그러나 중도적 노선의 비노(非盧)측이 비대위원장을 맡게 되면, 친노 진영은 자연스럽게 밀릴 수밖에 없다. 비노측의 한 인사는 “지난해에 있었던 두 차례의 전당대회와 대통령 후보 경선대회에서 친노 진영에게 유리한 모바일 경선이 도입되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패했다”라면서 “양 계파 간의 비대위원장에 이은 차기 전당대회 수 싸움이 사뭇 복잡해질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현재 친노 진영을 대표하는 뚜렷한 당권 주자가 보이지 않는 것도 문 전 후보의 ‘구원 등판론’에 힘이 실리는 이유이다. 친노 진영 전체가 동의하면서도 당의 정통성과 대표성을 지닌 후보는 문 전 후보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를 제외하고 현재 거론되는 친노 진영 후보는 정세균·박영선 의원 정도이다. 범(凡)친노인 정세균 의원은 대선 과정을 통해 신주류로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일각에서는 친노와 비노를 아우를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다만 이미 당 대표를 두 차례나 지냈던 만큼 참신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캠프 상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으며 친노의 신주류로 떠오른 박영선 의원은, 대중적 인지도에 비해 정통 친노 세력이 아니라는 점이 걸린다. 친노계의 한 재선 의원은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지 못할 경우 정말로 폐족 중의 폐족으로 떨어질 수 있다”라며 “현재는 문 전 후보를 제외한 누가 나와도 대표로 당선되기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1월3일 민주당 고위정책회의에서 박기춘 원내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안철수 귀국 메시지가 ‘태풍의 눈’

결국 문제는 문재인 전 후보의 의지에 달렸다는 평가이다. 문 전 후보는 대선 패배 직후인 12월20일 해단식에서 “새로운 정치, 새로운 시대를 제가 직접 이끌어보겠다고 생각했던 꿈은 끝이 났다. 개인적 꿈은 접지만 민주당·시민사회·국민연대 등 야권 진영 전체가 더 큰 역량을 키워 나가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발언만 놓고 보면 일선 후퇴는 물론 정계 은퇴라는 해석까지도 가능했다.

그러나 대선 이후 당내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면서 문 전 후보의 마음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듯하다는 전언이다. 자신의 대선 화두였던 ‘국민정당론’이 흐지부지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주위에서 하나 둘씩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연대 구성에 적극 나섰던 시민사회측이 대선 후 민주당에 대해 비판적 관점으로 돌아서자, 이를 재통합할 수 있는 적임자로 친노측이 문 전 후보를 다시 내세우고 있는 모양새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문 전 후보가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한 명분으로 ‘국민정당론 추진’을 내걸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초 손학규 전 대표가 주도했던 야권 대통합이라는 기치를 문 전 후보가 합리적 중도 보수층까지 포함한 국민연대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문 전 후보가 당권에 대한 의지를 서서히 키워갈수록 오히려 당내 계파 갈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비노 진영측에서는 국민정당론을 기치로 문 전 후보가 정치 일선에 다시 뛰어드는 것은 대선 패배의 책임론을 모면하기 위한 ‘꼼수’라고 보고 있다. 비노측의 대항마로는 김한길 전 최고위원, 김영환 의원 등이 당권 도전 의사를 조심스럽게 내비치고 있다. 비노계의 한 중진 의원은 “문 전 후보가 정치의 중심에 서겠다는 의지를 내세울 경우 야권은 또 한 번 분열에 휩싸일 수 있다”라며 “대선 패배의 책임이 있는데, (지금은) 자숙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통 큰 행보를 보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2월쯤 귀국할 예정인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후보의 거취도 문 전 후보에게는 염두에 두어야 할 변수이다. 안 전 후보가 문 전 후보를 국민연대 결성의 동반자로 생각할지, 아니면 짐으로 여길지는 향후 2개월 동안 문 전 후보 등 친노 진영의 통 큰 행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단일화 과정에서 둘 사이에 생긴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이를 얼마나 봉합한 상태로 안 전 후보가 귀국하느냐 하는 것도 관건이다. 결국 안 전 후보의 귀국 메시지가 야권의 ‘태풍의 눈’이 될 전망이다. 그것이 문 전 후보에게도 당권 도전에 대한 최종 결심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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