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고령화야”
  • 도쿄·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3.01.0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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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양적 완화 정책, 일본 경제 다시 살릴까

지금의 아베 신조 총리에게서는 2006년 총리 시절의 나약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아베 총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연소 총리로 국민적 기대를 크게 모았지만 결과는 정치적 리더십도, 자신의 색깔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단지 운 좋게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나 총리까지 되었다는 평가가 전부였다. 결국 지병을 이유로 들며 총리직을 중도 포기했다. 그런 아베 총리가 지난해 12월16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의 대승을 전후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베의 자민당은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일본을 다시 찾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경제 대국 일본을 다시 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강성 이미지에 걸맞게 과감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것은 일단 두 개의 큰 축으로 나뉜다. ‘안보 능력 강화’와 ‘경제 회복’이다. 지난 20년간 경기 침체로 패배감에 빠져 있는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동기를 부여하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헌법 개정’을 국민 50% 이상이 반대하고 있지만 많은 정치인이 지지한다는 이유로 강행하려고 하며, 자위대도 국방군으로 바꾸려고 시도 중이다. 국방 개념을 국외로 확대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도 명문화하려고 한다.

새로 집권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앞줄 가운데)가 지난 12월26일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첫 내각 회의를 마친 후 각료들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 AP 연합
아베노믹스 핵심은 ‘무한 양적 완화’

지난해 12월26일 총리에 취임한 뒤 아베가 가장 먼저 추진하는 정책은 일본 경제의 회복에 관한 것들이다. ‘엔저(低)’를 유도해 침체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올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지난 민주당 정부가 추진해온 정책과 확실하게 차별화를 꾀하려 하고 있다. 민주당 정부는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고 지하 경제를 양성화해서 재정을 강화하려는 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생각은 다르다. 그렇게 해보아도 일본 경제나 재정에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지하 경제를 양성화한 효과도 별로 없고, 낭비성 예산을 줄여 재정 건전화에 기여하지도 못했으며, 경기 침체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라고 판단했다.

거기서 비롯된 아베 정부의 정책 기조는 간단명료하다. 과감한 금융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돈을 무한정 푸는 것을 의미한다. 명목성장률을 3%까지는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명목성장률 2%를 마지노선으로 지켜왔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릴 경우 엔화의 가치가 떨어지고 주식이 오르며 소비가 진작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른바 ‘아베노믹스’에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아베 총리 취임 직후인 지난해 12월27일, 도쿄 외환 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1달러당 85엔까지 떨어져 약 2년 3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주식시장도 연일 상승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경제 회복의 조짐을 조심스럽게 예측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침체되어왔던 경제에 화색이 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꿈틀거림에 고무된 아베 총리는 양적 완화 정책에 더욱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1조 엔 이상을 투입해 노후 설비와 자산을 구입하려는 구상도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또, 최신 설비를 구입할 경우 33%까지 자금을 지원해주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나친 양적 완화 정책에 대한 일부의 우려에 대해서는 지난 정부의 정책으로 일본 경제가 진전된 것이 없지 않느냐는 말로 일축하고 있다. 기존의 방법이 안 통한다면 다른 방법을 택해야지 똑같은 방법을 취하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 회복, 기업의 경쟁력 강화, 소비 활성화, 제조업 부활을 위한 일이라면 일본은행의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공급하겠다는 얘기이다. 아베 정부의 무한 양적 완화 정책으로 엔화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제조업체들은 모처럼 희망을 갖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토요타자동차는 엔저 현상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하지만 엔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본의 지난해 11월 무역 적자는 9천5백34억 엔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2년 11월 누계로 재정 적자 규모는 이미 6조 엔을 넘어섰다. 2011년 적자 규모는 2조5천억 엔으로 31년 만에 적자로 전락했는데, 2012년에는 2011년에 비해 적자 규모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엔저로 수출을 촉진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수입이 늘어나면 무역 수지를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일본 수출 기업들이 2007년 이후 엔고(高)로 힘들어졌지만, 그와 동시에 수입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이 증가하는 원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가동이 중지됨에 따라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천연가스 등의 수입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엔저로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정책이 역효과를 낼 경우 일본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를 엔고만의 문제로 진단하는 것도 단견이다. 그동안 일본 제조업체들이 고전했던 이유는 흔히 말하는 ‘6중고 문제’ 때문이다. 엔고 외에도 높은 법인세율, 전력 부족, 자유무역협정(FTA)의 지지부진, 노동 규제·환경 규제 강화 등이 장벽으로 지적되었다. 환율 문제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엔저가 수출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기업의 제반 환경이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

일본 경제 어려움은 ‘6중고’ 때문

일본 기업들의 글로벌 의식도 문제로 지적받는다. 한국의 중소기업·대기업들이 일찍부터 세계 시장에 눈을 돌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해온 데 비해 일본 기업들은 이 점에 소홀했다. 정치적 리더십 부족도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약하게 만든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우익·강경 보수들의 주장이 한국과 중국 등 인근 국가와 마찰을 일으키면서 ‘일본 불신’으로 이어져 일본 제품에 대한 견제 및 불매를 심화시켰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로 지난해 중국 전역에서 발생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대표적 사례이다. 반일 시위가 일어난 이후인 지난해 10월, 일본의 대중국 수출은 12%나 줄어들었다. 아베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라인의 면면을 볼 때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그리 쉬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중국 수출은 계속 축소되거나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점쳐진다. 아베 정부 역시 대중국 관계의 한계를 인식하고 인도나 태국 등 동남아 시장 진출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런 이유를 모두 포함해도 일본 경제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히는 것은 역시 재정 적자이다. 재정 적자는 현재 1천조 엔 정도로 일본 GDP의 두 배에 이른다. 일본 경제의 향방은 이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국채 하락으로 인한 이자율 상승이다. 2011년 7월, 일본 정부의 일반 회계는 94조7천억 엔이다. 이 중 국채 발행 상환금이 21조5천억 엔으로 전체의 22.8%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국채가 하락해 이자 비용이 증가하게 될 경우 매년 지급해야 하는 이자 비용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현재 22.8%인 비율이 더 높아져 일본 정부의 재정은 더 악화될 것이 뻔하다.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20년 가까운 경기 침체 속에서도 오랜 세월 자민당과 민주당 정부가 통화 정책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며 신중하게 관리해온 이유도 이 재정 적자 때문이었다.

시라가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는 아베 정부의 양적 완화 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미온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양적 완화 조치에 따라 통화를 무한하게 공급했는데도 불구하고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스태그플레이션’에 돌입하게 되고 일본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디플레이션만을 경험한 일본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를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아베 정부의 양적 완화 정책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는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과연 일본 경제의 추락이 엔고와 소비 침체, 제조업 경쟁력 약화, 설비 투자 감소만의 문제였을까? 개인의 금융 자산이 1천5백조 엔에 이르는 부자 국가, 세계 경제력 3위, 세계적인 첨단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많은 기업, 애플의 스마트폰이나 한국 기업들의 전자기기 부품 소재의 상당 부분을 아직도 일본 기술에 의존할 정도로 강한 기술 경쟁력을 지닌 국가. 이런 국가의 경제가 좀처럼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차를 구매하려는 사진 속의 노인처럼 일본 개인 금융 자산의 대부분은 고령 인구가 소유하고 있다. ⓒ EPA 연합
‘저출산·고령화’로 생긴 인구 변화가 걸림돌

최근 중요한 이유로 주목되고 있는 것은 인구이다. ‘저출산·고령화’로 표현되는 일본의 인구 문제는 일본 재정과 경제 그리고 제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일본은 65세 이상을 전기(前期) 고령화, 75세 이상을 후기(後期) 고령화라고 구분할 정도로 고령화 현상이 심각하다. 개인 금융 자산 1천5백조 엔의 대부분은 이들 고령 인구들이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소비는 미덕이 아니다.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최소한의 소비 외에는 돈을 잘 풀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소비 진작을 권장하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없는 이유이며, 지난 20여 년간 소비가 침체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했다. 고령자들의 증가는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 예산 증가를 불러온다. 2011년도 일본 정부의 일반 예산 중 사회보장 지출 비율은 전체 27.9%에 달했다. 노령화가 진행될수록 사회보장비는 증가하고 재정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예산 구조를 볼 때 국채 상환금과 사회보장 지출비를 합하면 50%가 넘는데, 지방교부금 18.4%를 빼고 나면 사업성 예산의 탄력성이 아주 낮은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채가 하락해 이자 비용이 증가한다면 일본 재정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저출산·고령화의 인구 구조가 미치는 악영향은 재정이나 소비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에서는 생산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워졌고, 전통적인 부품 제조회사의 경우 가업을 승계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줄어 좋은 기술들이 사장되어가고 있다. 20여 년간 장기 침체를 겪으면서도 일본 경제가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중소기업이 탄탄했기 때문인데, 젊은이들이 전통적인 제조업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면서 일본 경제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그나마 일할 수 있는 인구라도 풍부하다면 다행이지만 저출산 현상이 심각해 생산 현장을 받쳐줄 노동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외국에서 인력을 받아야 하지만 일본의 이민 정책은 대단히 보수적이어서 해결책으로는 역부족이다.

아베 정부는 ‘무한 양적 완화’라는 전가의 보도로 병든 일본 경제를 수술하고 있다. 수술이 성공할 경우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고 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 경제 전반에 닥칠 쓰나미는 예상외로 클 수 있다. 개인 재산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고령자들의 최소 소비마저 얼어붙으면 경기 침체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아베 정부의 금융·재정 정책 시험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자동차·IT(정보기술)·가전 등에서 우리 기업들이 엔저 정책의 영향을 받게 된다. 아베 정부의 통화 정책이 실패로 끝날 경우 일본발 경기 불황이 우리 경제를 덮치게 된다. 계사년 새해부터 아베 정부의 양적 완화 정책과 우익적 리더십에 눈을 뗄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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