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CEO, 큰일 내겠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1.0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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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종 찾기부터 커피전문점 해외 진출까지 잰걸음

40대 CEO(최고경영자) 전성시대. 이들이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이끌고, 새로운 부의 지도를 그린다. 신수종을 찾아 새로운 영역에 거침없이 도전하고, 커피전문점으로 해외에까지 진출해 명성을 쌓는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 세계의 많은 기업이 신음하고 있지만, 이들이 있기에 우리의 미래는 밝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부의 대물림이라는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재계의 젊은 피들이 전면으로 대거 떠오름에 따라 침체된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올해 46세인 삼성의 이재용 사장은 최근 부회장으로 임명되면서 ‘이재용 시대’를 열었다. 이부회장이 그룹의 지휘권을 물려받은 모양새는 그의 부친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전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내려받은 것과 닮았다. 이병철 전 회장이 이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시점은 그가 70세가 된 때였다. 이병철 전 회장은 1978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고, 그 이듬해인 1979년 아들을 부회장으로 임명했다. 차세대 먹을거리를 점지해준 후 지휘봉을 후계자에게 넘긴 것이다. 이회장은 지난 2010년 5대 신수종 사업을 정했고, 만 70세를 맞은 2012년 아들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삼성이 먹고살 미래 산업을 정하고 경영권을 물려준 것이다.

이부회장에게 도움을 줄 측근들도 이번 정기 인사에서 전진 배치되었다. 이부회장의 경영 스승으로 알려진 최지성 부회장은 지난해 6월 삼성미래전략실장으로 임명되어 신수종 사업을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6개월 후인 지난해 12월 미래전략실에서 전략 1팀장(사장) 자리에 김종중 삼성전자 DS(부품) 부문 경영지원실장을 임명했다. 최부회장이 삼성전자 DS 부문에까지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부회장을 보좌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상훈 전략 1팀장은 삼성전자 DMC(완제품) 부문 경영지원실장(사장)으로 이동했다. 대표적인 ‘이재용의 남자’로 꼽히는 이사장은 재무통이다. 재무최고관리자(CFO)로서 이부회장의 경영 행보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비자금 사건’으로 추락한 그룹 이미지 제고를 성공적으로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 이인용 삼성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도 이부회장의 측근이다. 이번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부회장의 대내외 소통 창구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이사장은 이부회장의 서울대 동양사학과 동문이다.

이부회장은 언론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한다. 그런 탓에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1968년생인 이부회장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 대학 MBA(경영학석사)를 거쳐 미국 하버드 대학 비즈니스스쿨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훤칠한 키에 어머니(홍라희 여사)를 닮은 미남형이다.

이부회장은 삼성에 입사할 때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최소한 공학도 이상의 전문성을 갖추라는 지시를 받았다. 또, 이회장이 이부회장에게 ‘임원들과 주말에 골프를 치며 임원들에 대한 사항을 꼼꼼히 파악하고 삼성전자 해외법인을 모두 돌아볼 것’을 주문한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이부회장은 2008년 특검 당시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힌 후 해외 순환 근무를 통해 신흥 시장과 미국·일본·유럽의 선진 시장을 두루 살폈다. 현장에서 직원들과 회식이라도 할 때에는 폭탄주를 직접 만들어 나누어주고 자신도 여러 잔을 마시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인 이병철 전 회장의 냉철함이나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의 내성적인 면모와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정의선 “ 품질 경영으로 세계화”

지난 2009년 현대자동차의 기획·영업 담당 부회장이 된 정의선 부회장은 1970년생으로 올해 44세이다. 정부회장은 지난해보다 약 4% 늘어난 7백40만여 대를 판매한다는 올해 계획을 잡았다. 정부회장이 이 계획의 근간으로 삼은 점은 품질 경영이다. 그는 지난 2011년 초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New Thinking, New Possibility)’이라는 새로운 품질 경영을 강조했다.

정부회장은 미국, 유럽, 신흥국에서 생산한 현대차의 품질이 고르지 못한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생산하더라도 현대차는 모두 같은 품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품질을 담보해야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또 그는 2011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제주에서 해외법인장 및 주재원들을 만나 ‘세계 표준(글로벌 스탠더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1968년생으로 올해 46세이다. 1995년 신세계백화점 이사로 출발했고, 2009년부터 총괄대표이사 부회장을 맡고 있다. 정부회장은 그룹의 지속 성장을 위한 핵심 사업으로 ‘교외형 복합쇼핑몰’을 선택했다. 그는 2016년 개점을 목표로 하남, 인천 청라, 대전, 안성, 의왕, 고양 삼송에 복합쇼핑몰 건립을 위한 부지를 확보했다. 총 투자비만 3조원에 육박하고 부지 면적도 30만평이 넘는다. 쇼핑·식사·여가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다. 이번 교외형 복합쇼핑몰의 연착륙을 위해 백화점과 이마트 대표를 모두 50대 초반의 인물로 교체했다. 신세계그룹은 경영전략실장인 허인철 사장(54)을 이마트 대표이사로 임명하고, 백화점은 판매본부장인 장재영 부사장(53)에게 맡겼다.

고 정주영 회장의 손자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1972년생으로 올해 42세이다. 2001년 현대백화점 기획실장 이사로 입사해서 2006년 부회장, 2007년 30대 나이에 회장 직함을 달았다. 2010년에 정회장은 ‘비전 2020’을 발표하면서 그룹 성장 동력을 유망 사업의 인수·합병(M&A)으로 발굴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20년 그룹 매출 20조원, 경상이익 2조원, 현금성 자산 8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금성 자산이 2013년 2조원, 2015년에는 3조7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금융·건설·환경·에너지 등 신규 부문에 대한 M&A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그 첫 번째 실현 사업으로 패션 사업을 택했고, 지난해 1월 국내 1위 여성복업체인 한섬을 인수했다. 그러나 그 이후 내놓을 만한 M&A는 나오지 않고 있다.

대신 백화점 사업을 확장하는 분위기이다. 지난해 8월 청주에 현대백화점 충청점을 열었다. 올 하반기에는 무역센터점 증축을 마치고, 2015년 판교점·광교점 등 새로운 매장을 낼 계획이다. 그는 프리미엄 아웃렛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4년 개점할 계획으로 한강 아라뱃길 김포터미널에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가칭)을 올 상반기에 착공한다. 연면적 16만5천㎡(5만평) 시설에 명품 매장과 유흥 시설까지 갖춘다.

삼성가(家)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1970년생으로 올해 44세이다. 이사장은 일 처리가 꼼꼼하기로 소문나 있지만 직원을 대할 때는 부드러운 모습을 보인다. 직원들과 삼겹살에 곁들여 소주를 마시고 노래방에 간 일화는 호텔신라 내에서도 유명하다. 호텔업의 생명이 서비스이고, 그 서비스는 현장 직원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이 이사장의 경영 철학이다.

한동안 면세점 키우기에 몰두해온 이사장은 올해 호텔 사업 확장에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1월10일부터 7월10일까지 호텔신라의 객실 개·보수 공사에 들어간다. 또 이사장은 호텔 사업을 키울 심산이다. 호텔 사업을 키우기 위해 내놓은 카드는 비즈니스호텔(신라스테이)이다. 2013년 1개 비즈니스호텔을 개점할 계획인데, 운영 방식은 위탁 운영 체제이다.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은 1973년생으로 올해 41세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자녀 중 유일하게 부사장 직급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정기 인사에서 이부사장은 승진하지 못했다. 그러나 제일모직의 미래 성장에 보탬이 되는 모양새를 갖추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제일모직의 패션 부문과 전자재료·케미컬 부문이 각기 대표이사 체제로 개편되었기 때문이다. 기존 박종우 대표이사가 전자재료를 맡고,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이던 윤화주 사장이 패션 부문을 맡았다. 최근까지는 패션 부문에만 치중했던 이부사장은 올해 경영 전략을 담당하면서 사업 전반을 짚어볼 힘을 얻은 셈이다.

이해진·김범수 “모바일 사업 원년”

재벌가 출신이 아닌 이른바 자수성가형 CEO들도 올해 두각을 보일 전망이다. 이해진 NHN 이사회 의장은 1967년생으로 올해 47세이다. 1992년 삼성SDS에 입사했고, 1999년 사내 벤처였던 네이버에 3억원을 투자해 독립했다. 이의장은 100억원대 투자를 유치하면서 네이버에 공을 들였다. 공동 마케팅 관계였던 한게임과 전격 M&A를 하면서 2001년 9월 NHN을 세웠다. 지식인(iN)과 통합 검색 등에 집중한 결과, 검색 점유율 70%를 기록하며 업계 1위를 차지해 연 매출 2조원대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지난해는 이의장에게 도전의 해였다. 무엇보다 영업이익이 감소했는데도 직원들 사이에 위기의식은 없었다. 그는 지난해 사내 강연과 트위터 등을 통해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의 발언을 쏟아냈다. 이의장이 올해 주력할 분야는 모바일 사업이다. 지난해부터 일본을 오가며 모바일 메신저(라인) 개발을 지휘했다. 2011년 6월 서비스를 시작한 라인은 국내보다는 일본 등 해외 시장에 초점을 둔 서비스이다. 일본·타이완·홍콩 등 아시아 국가에서 1위를 점하고 있으며 현재 5개국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다. NHN은 우물 안 개구리라는 불명예를 받아왔다. 해외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의장이 NHN을 구글(google)처럼 세계적인 IT기업으로 키워낼지가 궁금한 요즘이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도 이해진 NHN 의장과 같은 서울대(산업공학)와 삼성SDS 출신이다. 1966년생으로 올해 48세인 그는 1998년 한게임을 창업해 국내 최대 게임 포털 사이트로 키웠다. 2000년 네이버와 합병하면서 NHN을 탄생시켰다. 한때 NHN의 공동대표를 맡았던 김의장은 2007년 홀연히 회사를 떠나면서 변화를 맞았다. “정박한 배에 있는 것이 싫어 NHN을 떠났다”고 말한 김의장은 3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새로운 도전을 모색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큰 변화가 일던 2010년, 오랜 공백을 깨고 카카오라는 회사를 설립해 돌아왔다. 그리고 내놓은 것이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이다.

김의장은 올해 모바일 시장에서 또 한 번 돌풍을 일으킬 준비를 마쳤다. 세계 최초의 모바일 콘텐츠 장터(카카오페이지)를 지난해 11월 공개했다. 요리법, 영어 교육, 카툰, 동영상, 음악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고 장터에 올려 돈을 벌 수 있는 플랫폼이다. 누구나 모바일에서 쉽게 콘텐츠를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모바일·소셜·플랫폼이 만나는 상생 생태계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카카오 플랫폼에서 100만개의 파트너가 3년 이내에 수익을 내는 구조를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국내 커피 시장에서 세계적인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를 제친 토종 상표가 카페베네이다. 1968년생으로 올해 46세인 김선권 대표는 2008년 레드오션으로 평가받던 커피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3년 만에 미국 뉴욕에서 미숫가루라떼를 파는 세계적인 상표로 키워냈다. 미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필리핀, 일본 등지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짧은 시간에 성공을 거머쥔 배경은 ‘소통’에 있다. 사내에서는 무슨 말이든 들어주고 직원들을 받들어주는 지휘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직원들과 정서적 교감이 이뤄지면, 사적인 관계뿐 아니라 공적인 업무 역시 탄력을 받게 된다. 김대표는 매장도 소통의 공간으로 다듬었다. ‘커피 한 잔 할까’라는 말에는 단순히 커피가 아니라 소통의 욕구가 들어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올해 미국 내에서 카페베네 가맹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 꿈도 소통의 힘으로 이루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지난해 11월 코오롱 최초의 여성 CEO가 나왔다. 올해 46세의 이수영 코오롱워터앤에너지 공동대표이사 부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입사 10년 만에 CEO의 자리에 오른 초고속 승진 사례인 만큼 올해 그의 행보가 궁금하다. 그는 1994년 삼성에서 근무하다 1999년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MBA를 딴 뒤 2003년 코오롱에 차장으로 입사했다. 맡은 업무는 신사업 발굴이었다. 여기서 능력을 인정받아 입사 2년 만인 2005년 부장을 생략하고 상무보로 2단계나 승진했다.

2007년 경영전략본부 전략사업팀장(상무)을 맡아 환경시설관리공사 인수 작업을 주도하면서 코오롱워터앤에너지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회사에서 담당하는 ‘물’ 사업은 현재 코오롱그룹에서 차세대 먹을거리 사업으로 육성하는 분야이다. 2011년 전무로 승진한 그는 1년 만에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상승했다.

고속 승진의 힘은 사람을 많이 만나려는 그의 노력에서 나왔다. 신문을 읽다가 눈에 띄는 사업이라고 생각되면 그 사업의 핵심 인물을 꼭 만나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10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늘 현장에 있거나 사람들을 만나 귀동냥을 하면서 신사업을 구상한다.

1967년생으로 올해 47세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게임 대통령’으로 통한다. 출시하는 게임마다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해 엔씨소프트의 대작 ‘블레이드앤소울’이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받았고, <타임>이 ‘길드워2’를 올해의 게임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럭비공과 같아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 지난해 6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엔씨소프트 지분 14.6%를 넥슨에 매각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갑작스러운 빅딜에 엔씨소프트 직원들은 물론, 게임업계 관계자들도 당황스러워했다. 게임 사업 포기, 새로운 사업 착수 등 다양한 소문이 돌았지만 김택진 대표는 “넥슨과 힘을 합쳐 세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협업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김대표는 지난해 모바일 환경으로 넘어간 만큼 PC 환경에만 갇혀서는 엔씨소프트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행보는 달랐다.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모바일 게임 사업을 모두 정리했다. 대신 세계적인 모바일 게임 기업인 그리(GREE)와 손잡고 게임을 개발했다. 김대표는 2013년을 모바일 게임 사업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그는 ‘2012 대한민국 게임대상’ 시상식에서 “2013년을 원년으로 삼아 모바일 게임 분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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