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이 자라에 세계 시장 안겼다
  • 이규대 기자·유호 인턴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1.0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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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유니클로에 밀려 2인자

패션업계에 SPA 열풍이 거세다. 수년째 성장세가 멈추지 않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04년 말 일본 업체인 패스트리테일링이 ‘유니클로’ 브랜드를 내세워 한국에 상륙한 이래, 시장은 매년 급성장을 거듭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주요 글로벌 SPA업체들이 대거 한국에 진출하며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SPA란 ‘제조·유통 일관화 의류(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를 뜻한다. 디자인부터 생산 및 제조, 유통과 판매까지의 전 과정을 단일 회사가 맡는 의류 전문점을 가리킨다. 상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기 직전까지 모든 과정을 관리할 수 있어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소비자 반응과 패션 트렌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지녔다. 이를 바탕으로, SPA업체들은 중저가 의류를 빠르게 생산하고 빠르게 소비하는 문화를 표방한다. 이른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트렌드이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입구에 있는 자라 매장. ⓒ 시사저널 임준선
본사 가까이에 공장 둬 유행을 따라잡다

최근에는 글로벌 SPA업체인 자라(Zara)가 매서운 기세로 약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자라는 스페인의 의류 기업 인디텍스(Inditex)의 주력 브랜드이다. SPA 브랜드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자라 등을 포함한 인디텍스의 매출액은 세계 SPA 시장에서 1위(2011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3년간 경쟁사 H&M에 비해 약간 뒤지는 수준이었으나, 지난해부터 정상을 지키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에 거침없이 대응하는 속도전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른바 ‘고속 경영’이다.

자라의 고속 경영 시스템은 ‘패스트 패션’에 가장 적합하다. 특히 물류 시스템이 그렇다. 자라의 공급 사슬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는 업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의류 디자인부터 시작해 생산이 끝난 후 점포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최단 기간이 15일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 업계 2, 3위인 H&M과 갭(GAP)이 각각 3주, 6주씩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속도이다.

생산 시스템도 독특하다. 가능한 한 공장을 해외 제3 세계권으로 이전하려 하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서다. 하지만 자라는 본사 가까이에 공장을 두고, 이곳에서 전체 의류의 절반이 넘는 물량을 생산하고 있다. 주로 유행에 민감한, 패션 감각이 살아 있는 상품들이다. 본사와 가까운 공장에서 주력 상품들을 생산함으로써, 최신 유행 및 소비자의 반응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관리하려는 것이다. 그 밖에 무난한 성격의 기본 제품들은 본사와는 먼 아시아 지역의 외주 공장에 생산을 맡긴다.

이런 물류 및 생산 시스템 덕분에, 자라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패션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속도 경영의 궁극적인 성패는 결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을 얼마나 빨리 내놓을 수 있나’에 있다. 자라는 연간 무려 2만점이 넘는 옷들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단순히 디자이너의 숫자가 많은 것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비결은 커머셜(Commercial)들의 활동에 있다. 커머셜이란, 중간 관리자 성격의 직원들이다. 각자 담당하는 권역의 지역 관리자 및 점포주로부터 시장 동향을 수집하는 한편 재고 관리를 맡아서 한다. 말하자면 ‘관리자 위의 관리자’인 셈이다. 고객의 목소리, 상품 및 재고의 동향 등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커머셜들에게 흘러들어온다. 전 세계적으로 발달된 정보통신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디자이너들은 커머셜들이 수집해 전달하는 정보들을 즉각 반영해 상품을 디자인한다.

한국에서 움츠린 ‘자라 목’ 언제쯤 펼까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상품이 빠른 속도로 생산되고 사라지는 경우, 재고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 디자인·생산·판매의 전 과정을 직접 총괄하는 SPA 브랜드의 특성상 재고는 곧 손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선 커머셜들이 매일의 판매 상황과 재고 정보를 면밀히 확인해 대응한다. 이와 함께 자라는 거대 물류센터를 활용하고 있다. 생산된 모든 상품을 스페인 국내 8개의 거대 물류센터에 집결시킨 후, 세계 각지의 점포로 보낸다. 각지의 공장에서 생산된 모든 자라의 제품을 한 곳에 모음으로써 재고 관리에 역점을 기할 수 있다. 사실 비용이나 시간 면에서 볼 때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이를 감수할 만큼 철저한 재고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자라는 지난해부터 신흥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아시아·남미·오세아니아 지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특히 중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급속도로 ‘파이’가 커지고 있는 한국 시장 또한 주요 타깃 중 하나이다.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얻은 자라이지만 한국에서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주요 업체들의 최근 1년간 매출액 규모를 비교해보면, 한국 SPA 시장에서는 유니클로가 압도적인 차이로 1위이다. 유니클로는 한 해 동안 5천4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한국에 일찍 발을 뻗어 시장을 선점한 프리미엄이 있다. 히트텍 같은 전략 상품이 높은 인기를 누린 덕도 있다.

성장세도 거침이 없다. 최근 2년 사이 50% 안팎의 매출액 신장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자라의 한국 자회사인 자라리테일코리아의 매출액 규모는 지난해 1천6백73억원이었다. 유니클로의 약 33% 수준이다. 성장률 역시 2010년 대비 25% 수준으로, 예년에 비해 다소 둔화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직은 한국 시장을 선도할 만한 위치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현재 패션계에서는 SPA 브랜드 열풍이 2013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여전히 블루오션으로 평가받는 시장인 만큼, 각종 브랜드의 시장 쟁탈전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과연 자라 특유의 고속 경영이 한국 시장의 판도 또한 뒤흔들 수 있을까. 올해 패션업계를 지켜보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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