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시용 용병에 불과했다”
  • 유호 인턴기자 ()
  • 승인 2013.01.1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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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정치 초년병들의 생생한 현장 체험담

“안철수로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었다면….”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후보의 대선 패배 후, 젊은 층으로 분류되는 이른바 ‘2030세대’ 주변에서 공공연하게 흘러나온 말이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후보의 지지층을 문 전 후보가 고스란히 끌어안지 못해 패했다는 분석 때문이다.

18대 대선의 화두는 ‘안철수 현상’으로 불린 ‘새 정치’였다. 기존 정당들에 대한 불신과 불만에서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2030을 중심으로 안철수 현상이 일었다. 그러나 문 전 후보로 야권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면서, 많은 젊은 유권자는 “찍을 후보가 없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젊은 층의 새 정치에 대한 갈망을 민주당이 끌어안지 못하면서 2030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4월 총선부터 2030세대의 투표율이 주요 변수로 떠오르면서 2030은 선거의 키워드로 등장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새누리당은 이준석·손수조라는 20대 정치인을 키워냈고, 민주당은 청년비례대표로 김광진·장하나라는 30대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표면상의 이슈에 불과했다. 정치 현장에서 2030은 여전히 외면받고 있었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캠프에서 각각 활동했던 2030 정치 초년병들을 다양하게 접촉하며, 그들이 현장에서 직접 접한 생생한 경험들을 청취했다. 실제 정치 현장을 체험한 그들은 하나같이 현실 정치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을 토해냈다.

지난해 12월5일 새누리당의 청년유세단(왼쪽 사진)과 민주통합당 청년 선거원들이 각각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
“당원화하려는 모습에 회의감”

민주당에서 대학생 정책 자문 활동을 한 김 아무개씨(25·여)는 “(민주당은) 우리의 생각을 정책으로 연계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내가 자문단에 있을 때 한 차례도 정책으로 입안되지 않았다. 전문성이 부족했다면 정책연구원과의 협의로 개선하면 되는데, 적극적인 도움이 없다 보니 대학생들만의 활동으로 그쳤다”고 아쉬움을 밝혔다. 역시 정책 자문으로 활동한 이 아무개씨(26·여)도 “활동 프로그램이 강연과 교육 위주로 돌아갔다. 대학생들에게 민주당의 목소리와 색을 그대로 입히려고 하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의 참신한 의견과 청년 의제를 받아들이려는 모습보다, 민주당의 표심으로 당원화하려는 모습에 회의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런 모습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후보 캠프 안에서 활동한 청년들은 대개 선거 유세용으로 이용되었다. 정책 개발 참여와 2030과의 소통을 기대해 캠프에 합류했지만, 실망감을 느껴 발길을 돌린 사례도 적지 않다. 앞에서 언급된 김씨는 “20대를 바보로 보는 것 같았다. 문재인 전 후보의 이미지 메이킹에만 초점이 맞춰졌는데, 문 전 후보가 20대를 상징하는 청바지를 입고 명동에서 말춤을 추면 2030 투표율이 오를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안이 나왔다. 이런 사고의 전제는, 2030에 대한 민주당의 인식이란 것이 ‘너네는 어차피 우리 찍을 거니까’라는 수준이다. 당연히 20대를 유혹하려는 노력도 없고, 참신한 전략·정책을 발굴하는 시도도 없었다. 2030은 모든 것이 전시용에 활용되기 위한 수단으로 보였다”고 토로했다.

2030의 이러한 실망은 여당인 새누리당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새누리당 중앙청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재민씨(29)는 “선거철에만 청년들을 찾는 정당의 모습에 실망을 느꼈다. 그렇게 되면 청년들이 정당 안에서 서로 토론하며 정책을 만들어가기보다는, 주로 선거운동에 참여하고 선거가 끝나면 정치권에 취업을 기대하는 구태의 모습을 되풀이하게 된다. 이는 해결해야 할 청년 정치의 과제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선거 때마다 들러리로만 이용되는 청년 정치의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를 당내 내부적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조직 구성의 문제와 의사소통의 폐쇄적 방식으로 인해 2030의 진솔하고 진지한 목소리가 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야의 청년 정책과 전략을 총괄하는 청년위원장은, 각각 새누리당 오신환 의원(43)과 민주당 박홍근 의원(45)이 맡고 있다. 여야의 청년위원회 연령 제한은 만 45세로, 청년위원회에 40대 인물이 상당하다. 청년 정치의 주 세대가 2030인 점을 감안할 때, 청년을 육성하고 그들의 의사가 자유롭게 반영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이러한 정당 구조에 대해, 민주당 청년비례대표자 모임 대표를 맡았던 신정현씨(33)는 “정당과 캠프 청년 조직이 주로 정치 지망생, 혹은 팬클럽이다 보니 청년들을 위한 실질적인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 또한 조직 구조가 상당히 진부하다. 나이만 2030이지, 이끌어가는 방식은 옛날 4050세대의 방식을 고수한다. 이런 구조로 인해 권위적 체계가 잡히다 보니 청년들이 원하는 새 정치와 새 방식을 끌어안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의사소통은 물론, 조직 내 감성과 정서가 맞지 않은 데서 불만을 갖는 청년들도 있었다. 문재인 후보 시민캠프 2030네트워크 팀장이었던 정준영씨(27)는 “청년캠프 발족식 때 민주당의 구시대적 문화와 감수성, 정서적인 부분에서 충돌이 많았다. 청년 캠프 발족식인데 기성세대들이 많이 오셨고, 임명장을 전달하고 사진을 찍는, 너무 진부한 그림이 연출되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후보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한 최 아무개씨(30)도 “처음 간 날에 임명장을 나눠줬다. 그 이후에는 적절한 업무 배분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뭔가는 계속하고 의견은 제시하는데, 그것이 어떤 구조로 결정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장경태 민주통합당 전국 청년위원회 부위원장(왼쪽)과 신정현 전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자 모임 회장(가운데), 청년리더네트워크 김형욱 대표. ⓒ 시사저널 임준선
“무늬만 2030, 방식은 4050 고수”

이런 구조적 문제에서 빚어지는 소통의 폐쇄성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2030의 장점인 창의성과 청년다움이 현실 정치 안에서는 활용되지 못했다. 박당선인의 후보 캠프 미디어팀에서 활동한 박 아무개씨(33)는 “일단 안을 내놓으면, ‘그거 예전에 우리도 해봤는데’라거나, ‘보나마나 안 될 텐데’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수많은 설득 작업이 필요했다. 갇힌 사고를 하게 하는 구조였다. 그나마 우리 팀이 이 정도였는데, 다른 팀은 더 심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씨 또한 “내가 만든 선거 전략 중 문 전 후보가 대리운전을 직접 해서 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는 방안이 있었다. 모임 안에서는 반응이 좋았는데, 막상 실무자와 당직자에게 이를 건의하자 바로 거절당했다. 단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사례는 너무 많다. 청년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활용하려는 노력과 수용의 자세가 없었다”라고 꼬집었다.

청년리더네트워크 김형욱 대표(28)는 “앞으로 당의 입지를 논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청년을 잡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선거 때만 반짝 잡고, 끝나면 놔버리는 현실에서 정당이 정치 불신을 스스로 만드는 것 아닌가. 불신의 벽을 줄이고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당 차원에서 청년 추진팀을 꾸려 정당의 개혁 마인드를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경태 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부위원장(31)은 “2030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권한과 지위를 높여줘야 한다. 당내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청년이 발굴되어야 하는데, 이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육성하려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 단발성에 그치지 말고 2030이 꾸준히 당내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역할의 폭을 넓혀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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