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엿보는 간신은 좀벌레와 같다”
  • 심경호│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 승인 2013.01.1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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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⑥ / 책 함부로 다룬 자신 질책하며 <고부> 지어

성종은 책을 좋아했다. 그런데 언젠가 무더워서 열흘간 책을 읽지 않았더니, 좀이 책을 쏠았다. 그러자 <고부(蠱賦)>를 지어, 책을 함부로 다룬 자신을 질책했다.

고(蠱)는 벌레나 독기를 뜻하는 글자이다. 고독(蠱毒)이라고 하면 뱀·지네·두꺼비 등의 독기가 든 음식을 남에게 몰래 먹여 복통·가슴앓이·토혈·하혈 등의 증세를 일으켜 죽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성종의 <고부>는 책을 좀먹는 벌레를 두고 지은 것이다.

또, 부(賦)는 산문적인 내용을 운문으로 진술하는 방식이다. 성종은 <고부>에 서문을 붙여서, 왜 이 글을 짓게 되었는지 밝혔다. 그 서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늘 서적을 즐겨 읽었으며, 또 활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국정을 보는 여가를 틈타고 하루 중의 한가한 짬을 엿보았다. 일이 있으면 낮에는 앉아서 독서를 하여 함(函)에 촛불을 불사르기까지 읽어나가고, 일이 없으면 낮에 과녁을 걸고 높은 누정에 자리를 깔고서 활쏘기를 구경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하는 도리를 강론하고 국경을 보중하는 책략을 마련하였으니, 나의 일에 무슨 잘못됨이 있었던가!

그런데 나의 덕과 나의 재주는 정말로 이렇다고 말할 것이 없어서, 늘 무거운 책임을 제대로 짊어지지 못하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그래서 일만 권이나 되는 많은 서적을 찌(책갈피)를 나누고 표지를 잘 싸서, 가는 곳마다 펼쳐서 보아, 돌아가면서 읽어서 그만두지를 않았다. 그리고 제자백가의 서적들도 간혹 손에 잡아 보고는 하였다.

근일에 더위가 하도 심하여서 잠시 쉬었더니, 좀이 틈새로 들어가서 여러 책을 씹어 먹었다. 내가 다행히 오늘 열어서 보고는 놀라고 애석해하여, 제멋대로 보관한 나의 죄를 꾸짖고, 또 물건 해치는 벌레의 존재에 대해 놀라게 되었다. 그래서 노래조의 글을 하나 적는다.’

전북 전주의 송정식씨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아 전주역사박물관에 기증한 고서 61권 전체. ⓒ 전주역사박물관 제공
<고부>의 본문인 사(辭)는 다음과 같다.

좀벌레의 벌레로서의 본질에는

의리에 대해 생각할 것이 있다

바람 불고 비 오며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사물이 어지러워져서는

어두워지고 말았구나

어찌 서적에 자취를 가탁하였더냐

본시 깊이 숨어서 원망하고

후회하지 않아야 하거늘

군자를 조금도 닮지 않아서

그늘과 어스름에 의지하길

따스한 날 그러하듯이 하여

내 세상이라고 여겨

자유자재 움직여서는

평소 지척의 시끄러움에

아예 개의하지 않고서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틈새에 파고들어

정말로 소인이 그러하듯

들러붙고 기어오르다니

어이 글자를 깨물고

문자를 망가뜨린단 말이냐

혹 내가 자주 치켜드는 걸

의심하고 질투하여 그러느냐

한 손으로 죄다 죽이려고 하다가는

화들짝 복희 시대 사람들을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오랫동안 연회를 즐기다가

질병이 생겨난다는 것이

큰 강을 건너기에 이롭다고

한 주역의 큰 논설이었다

사전에 잘 처리하라고

한 주역의 가르침을 본받아서

지금 성현의 가래침(서적의 말씀)의

물결 같은 은혜를 드리우니

진시황이 서적을 태워

없애버린 일을 멀리 생각하여

마땅히 위대한 주역에

모여들어 태워지길 면하라

만일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서 뻗댄다면

도륙되는 곳에서 가엾게도

후회하게 되리라

“글자를 깨물고 문자를 망가뜨리다니…”

성종은 좀벌레들을 죽이려고 하다가, 옛날 전설의 복희씨 시대에는 사람들이 세상의 작은 일에 개의하지 않던 것을 떠올리고는, 도륙을 중지했다. 그리고 자신이 연회를 즐기느라 책 읽기를 게을리했다고 자책하고 덕성과 학문을 길러나가야겠다고 말했다. 또 좀벌레들에게는, 진시황 때 태워지지 않았던 <주역> 책에 모이면 너희를 태우지 않겠다고 했다.

성종은 자신의 안일을 뉘우치고 <주역> 대축괘(大畜卦)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대축괘는 위의 괘가 산의 상이고, 아래의 괘가 하늘의 상이다. 건하 간상(乾下艮上)이어서, 산천 대축괘라고 한다. 그 점치는 말인 ‘단전’에 “대축은 강건하고 독실하고 빛나서 날로 덕을 새롭게 한다”라고 했다. 끊임없이 수양해 덕을 날로 새롭게 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또, 전체 괘의 의리를 밝힌 괘사에는 “대축은 바름이 이롭다. 집에서 먹지 않으면 길하니, 대천을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라”라고 했다. 학술과 도덕을 많이 축적해 이를 세상에 널리 펴라고 가르친 것이다.

그런데 성종이 좀벌레들에게 경고하는 말투는 무척 해학적이다. 북송 때 구양수가 파리를 두고 지은 <증창승부(憎蒼蠅賦)>와 발상이나 수법이 비슷하다. 다만 구양수의 글은 파리를 소인배에 비유해, 그 탐욕스러움을 비판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성종은 신하들에게 경고하면서 자신을 책망하는 뜻을 함께 드러냈다.

구양수의 <증창승부>에 이런 말이 있다. ‘파리야, 파리야, 나는 너의 살아가는 방도를 슬퍼하노라. (중략) 네 형체는 지극히 작고 네 욕심은 채우기 쉬우니, 술잔에 남은 찌꺼기나 도마 위에 남은 비린 것 정도가 고작이라, 바라는 바가 아주 적고, 이보다 지나치면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괴로이 무엇을 구하여 늘 부족해서 종일토록 윙윙거리며 다니느냐. 냄새를 쫓고 향기를 찾아서 이르지 않는 곳이 없어 잠깐 사이에 모여들곤 하니, 누가 서로 일러준단 말이냐.’ 이것은 소인배가 탐욕을 부리는 모습을 잘 묘사한 것이다.

성종의 <고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늘과 어스름에 의지하길 따스한 날 그러하듯이 하여, 내 세상이라고 여겨 자유자재하게 움직여서는, 평소 지척의 시끄러움에 아예 개의하지 않고서,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틈새에 파고들어, 정말로 소인이 그러하듯 들러붙고 기어오르다니, 어이 글자를 깨물고 문자를 망가뜨린단 말이냐.’

성종은 간신을 좀벌레에 비유했다. 간신은 군주의 지척에 있으면서 군주의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회를 엿보아 자신들의 뜻을 이루려고 한다. 더구나 간신은 법령과 정강의 올바른 글자들을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성종이 자그마한 좀벌레를 소재로 이런 글을 쓴 것은 아무래도 문예 취향의 탓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 속에는 군주로서 신하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군주로서 자기 자신을 경계하는 뜻이 매우 잘 드러나 있다.

참고 : 심경호 <국왕의 선물>, 책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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