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이 가르는 ‘나라의 품격’
  • 김재태 편집위원·부국장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3.01.2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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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한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 국회의원을 친구로 둔 한 사람이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학창 시절부터 오래 보아 오기로는 꽤나 심성이 착하고 윤리 의식도 강했는데, 의원이 된 후에는 사람이 많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때론 거들먹거리기도 하는 모습이 영 거슬렸다고도 했습니다. 어디 그 의원뿐이겠습니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금배지를 달고 나면 초심을 잊은 채 안면을 바꾸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애써도 특권의 단맛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 수 있습니다.

‘특권’이라는 말의 사전 속 해석은 ‘특정인, 또는 특정 신분이나 계급에 속하는 사람에게 특별히 주어지는 우월한 지위나 권리’입니다. ‘특정인’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꼭 힘 있는 사람만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법이나 제도에 의해 정해질 수도 있고, 돈을 주고 살 수도 있습니다. 항공기 퍼스트클래스 같은 것이 그런 경우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휴일 고속도로에서 버스가 전용차로를 시원스럽게 달리는 것도,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이 손님에게 자리를 지정해주는 것도 일종의 특권이라면 특권입니다. 문제는 특권 자체가 아니라, 그 권한을 대하는 마음가짐입니다. 특권에 의식이라는 말이 따라붙어 ‘특권의식’이 될 때 그 특권은 비뚤어지고 추해집니다.

최근 국회의 행태를 두고 ‘특권’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세비를 삭감하겠다고 큰소리치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치미를 떼는 것도 모자라 의원연금까지 만들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국회의원뿐만이 아닙니다. 해가 저문 현 정권까지 마지막 남은 헌 칼을 휘두르듯 대통령 측근 인사들에 대한 사면을 추진한다는 말이 흘러나와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일부 인사의 경우 사면 대상에 포함되기 위해 일부러 상고를 포기하는 등 ‘짜고 친’ 정황마저 포착되었습니다(34쪽 기사 참조). 이것이 사실이라면 말 그대로 특권의 발악입니다. 국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이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꾸밀까 싶습니다.

그동안 칼럼을 통해 서구, 특히 북유럽의 정치인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것쯤은 뉴스도 되지 않고, 일이 너무 고된 탓에 국회의원 이직률이 평균을 웃돈다는 등 부러운 모습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수없이 되풀이해도 우리나라 의원 나리들께는 그저 소 귀에 경 읽기일 뿐입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는 기준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특권을 가진 자들이 떵떵거리는 나라는 후진국이고, 특권을 가진 자들이 몸을 낮추는 나라는 선진국입니다. 간단하게,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와 부유한 북유럽 국가들만 비교해보아도 그림이 선명해집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가 남미의 인디언 추장 일행을 만나 남긴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몽테뉴가 그 추장에게 “당신의 특권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추장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맨 앞에 나서는 것이지요.” 우리 정치인에게, 권력자에게 이런 모습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국민보다 자신의 밥그릇이 더 소중하게 보인다면, 또 자신의 일을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돈이나 아껴 쓰고 겸손하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힘을 가진 분들이 생각 없이 천방지축 설치면 많은 사람이 피곤해집니다. 특권이 요란을 떨면 떨수록 나라의 격만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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