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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표현 잃은 ‘팝콘 브레인’ 늘어난다

스마트 혁명 가속화되면서 현실 감각 결핍 부작용 확산

노진섭 기자 ㅣ no@sisapress.com | 승인 2013.01.21(Mon) 16: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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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인류 역사에서 현생 인류는 어떻게 분류될까? 직립 보행하는 사람을 호모에렉투스, 지혜를 사용하는 인간을 호모사피엔스라고 명명한다면, 현재의 인류는 먼 훗날 호모스마트쿠스나 호모인텔리쿠스로 불릴지 모를 일이다. 현대인은 스마트 기기와 전자 기기를 쓰는 인간, 또는 정보를 사용하는 사람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돈 탭스콧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세대를 일컬어 ‘인류 역사상 가장 영리한 세대’라고 칭하기도 했다.

40대 초반의 직장인 김영래씨의 하루를 따라가 보자. 아침에 휴대전화(스마트폰)의 알람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동안 태블릿PC로 뉴스와 날씨를 확인한다. 자동차를 타고 버릇처럼 내비게이션을 켠 후에 출근한다. 꽉 막힌 출근길에서 김씨는 다소나마 수월한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목적지까지 길을 안내해주는 장치)의 지시에 따라 운전대를 조작한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컴퓨터를 켠 후 전자메일(이메일)을 확인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모든 업무는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처리한다. 퇴근 후에는 인터넷TV(IPTV)로 물건을 주문하고, 아이들과 함께 전자 게임(닌텐도 위)을 즐긴다.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으며 잠자리에 든다.

이처럼 디지털 기기는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자리했다. 인간은 스마트 기기를 사람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김승환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향상하려는 욕구가 있다. 이 욕구를 스마트 기기가 실현해준다. 욕구와 도구가 만나 능력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인류가 진화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기기들은 이미 사람의 일부이다. 두뇌가 내장 하드(주 기억 장치)라면, 스마트 기기는 외장 하드(보조 기억 장치)인 셈이다. 친구의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아도 스마트폰이 대신 기억해준다. 스마트 기기가 발달하는 만큼 더 많은 정보가 두뇌에서 스마트 기기로 이동한다. 언젠가는 스마트 기기를 사람 몸에 이식하게 될 것이다. 이미 인간은 스마트 기기를 자신의 일부로 여기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자신의 많은 정보를 잃는 셈이어서 시쳇말로 ‘멘붕’(멘탈 붕괴·정신적 혼란)이 오지 않는가”라고 설명했다.

   
멀티태스킹 능력 갖춘 ‘디지털 원주민’

스마트 기기가 우리 삶의 일부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 때문에 이 시대에는 스마트 기기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가 공존한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이들을 디지털 원주민과 디지털 이주민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즈음에 태어난 세대(20~30대)는 스마트 기기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에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디지털 원주민’이다. 상대적으로 그 이전 세대는 디지털 이주민이다.

디지털 원주민은 현 시대의 신인류(호모스마트쿠스)를 이루는 구성원이다. 이들에게 두드러지는 것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과거에 신문을 읽으면서 산책을 하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TV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걷는 사람이 많다. 러닝머신에서 달리면서도 눈은 TV를 향해 있다. 운전할 때 우리 눈은 도로와 내비게이션의 지도를 동시에 따라간다. 동시에 라디오 음악을 들으면서 동승자와 대화도 나눈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의문이 생기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뒤진다. 그런 내용을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퍼뜨리면서 전자책을 읽거나 은행 업무를 처리하기도 한다. 육체적 움직임과 뇌의 사고가 동시에 일어나는 셈이다. 이쯤 되면 현대인은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의 달인처럼 보인다. 멀티태스킹은 본래 한 대의 컴퓨터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효율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현대인은 멀티태스커(다중 작업자)인 것 같다.

2011년 국제 과학 학술지인 <플로스 원(PLoS One)>에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 연구팀이 멀티태스커에게 다양한 모습의 사람 얼굴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들은 사진 속 인물들의 감정을 인식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겉으로는 여러 개 일을 동시에 진행하지만, 집중력은 결핍된 상태라는 결론이다. 멀티태스킹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능력이 아니라 조급증에서 오는 불안 증세와 맞물려 있다는 시각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의 자가 점검 항목과 겹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 가지 일이 끝나기 전에 다른 일을 하거나, 해야 할 일이나 놀이에 계속 집중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ADHD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천근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스마트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두뇌 기능에 이상이 생긴다고 보기는 어렵다. 스마트 기기 사용만이 ADHD의 원인이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ADHD 환자가 스마트 기기에 몰입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스마트 기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이는 전문의를 찾아 확인하고 치료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호모스마트쿠스는 감정을 주고받는 데에 미흡하다. 사람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던 행위가 점차 전화로 통화하는 단계로 옮겨가더니 현재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에 익숙하다. 직접 얼굴을 보면서 대화할 때에는 말뿐만 아니라 표정과 감정도 전달한다. 전화 통화로는 시각적인 표현이 생략되고 문자메시지로는 청각적인 표현마저 사라진다. 점차 감정이 사라진 글자만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앨버트 메라비언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발표한 메라비언의 법칙이 있다.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이미지는 시각 55%, 청각 38%, 언어 7%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호감 또는 비호감을 느끼는 기준의 93%는 비언어적인 것이다. 말 자체보다는 시청각적 비언어가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셈이다. 이 법칙을 적용하면 호모스마트쿠스는 말(언어)로만 상대방과 대하므로 서로 오해할 소지가 크다. 사람들이 이모티콘(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기호)을 개발해서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경향도 호모스마트쿠스의 특징이다. 한 가지 실험이 있다. 사람들에게 깜빡이는 불빛에 맞춰 손뼉을 치거나 발을 구르도록 했다. 정상인은 적당한 속도로 반응했다. 그러나 스마트 기기를 많이 사용한 사람은 너무 빠르거나 늦게 반응했다. 첨단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뇌가 팝콘이 튀어 오르는 것처럼 즉각적인 현상에만 반응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느리고 무던한 현실 변화에는 무감각하다. 의학계에서는 이를 ‘팝콘 브레인’이라고 부른다.

인터넷을 오랜 시간 사용하는 사람의 뇌를 MRI로 촬영했더니 생각 중추를 담당하는 회백질의 크기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환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는 “사람은 현실(오프라인)과 가상 세계(온라인)에서 산다. 두 사회가 연동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가 생기고 있다. 인간은 시각·청각·촉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를 접하고 분석하고 반응한다. 그런데 너무 스마트 기기에 몰입해서 가상 세계를 중시하면 특정 자극에만 반응하게 되어 감각이 떨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스마트기기 성능+사람 능력’ 바람직

영국에서의 실험이다. 런던에서 택시 운전사가 되려면 길 찾기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수천 개의 장소와 길을 헤매지 않고 다닐 수 있어야 자격증을 준다. 통상 2년의 훈련이 필요하다. 런던 대학 신경과학 연구팀이 택시 운전사들을 데려와 뇌 MRI를 찍어보았더니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일반인보다 훨씬 컸다. 그만큼 뇌세포의 수가 많은 것이다. 경력이 오래된 운전기사일수록 그런 경향이 뚜렷했다. 머리를 쓰면 쓸수록 뇌 기능도 좋아지고, 뇌도 커진다는 의미이다.

이유라 서울시북부병원 정신과장은 “병원을 찾는 70~80대 중에 기억력이 또래보다 뛰어나게 좋은 사람들이 있다. 평생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어보니 수십 년 동안 운전을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길을 찾다 보니 공간 지각력이 발달했고, 그 길을 암기하려다 보니 기억력도 좋아졌으며, 어떤 시간에 어떤 길로 가면 빠르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계속함으로써 계획 능력도 우수했다. 즉, 전두엽·두정엽·측두엽 등 두뇌의 여러 기능이 협동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가로 6cm, 세로 12cm 크기의 스마트폰을 손에 쥐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과 화상통화를 하고, 은행 일을 볼 수 있고, 하버드 대학의 명강의를 들을 수도 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일을 스마트 기기가 담당할 것이고, 인간은 덜 생각하고 덜 움직여도 많은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스마트 기기가 더욱 인간의 한 부분이 될 것은 뻔하다. 그에 대한 부작용도 나타날 것이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지 않으면 불안하고, 이메일을 확인하지 못하면 조급해지는 심리 변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났다. 이제는 스마트 기기가 없으면 행동의 제한까지 받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과거 자동차로 낯선 곳을 여행할 때는 지도를 살피고, 도로 이정표를 눈여겨보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행인에게 길을 물어 목적지를 찾았다.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이 모든 일을 대신해준다. 30대 주부 이형미씨는 “내비게이션이 고장 나서 작동하지 않으면 자동차를 운전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볼일을 보러 갔던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 밖에도 접하는 정보의 양은 늘어났지만, 생각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능력은 줄어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과거에 계산기가 주판의 자리를 대신할 때, 일부 전문가와 언론은 인간의 뇌가 퇴화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실제로 수리 능력이 떨어졌을지는 몰라도 인간은 계산기를 이용해 더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면서 과학을 발전시켰다. 즉, 스마트 기기의 성능과 사람의 능력을 합한 셈이다. 이유라 서울시북부병원 정신과장은 “스마트 기기는 어디까지나 기계이다. 내비게이션도 기계적으로 빠른 길을 찾아주지만, 사람도 직접 운전하면서 경험적으로 터득한 지름길을 알고 있다. 심지어 어느 시간대에 어떤 도로가 막히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내비게이션의 성능과 사람의 경험적 능력을 합치면 목적지까지 더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스마트 기기를 잘 활용하되, 너무 의존하지는 말라는 의미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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