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위기 해결사, 다시 고민 속으로
  • 조명진 | 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3.01.2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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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압박에 딜레마 빠진 메르켈 독일 총리

2013년이 시작되자 독일 주가지수 닥스(DAX)는 치솟았다. 지난 5년 사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상승세를 기록한 주가지수와 달리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새해 첫 기사로 ‘독일 경제는 불확실한 해를 맞고 있다’고 보도하며 주가지수와 상반된 전망을 내놓았다. 앞으로 경제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경제 여건은 불확실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있다. 독일만이 유로존의 ‘해결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로존은 2013년에도 이전처럼 독일이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독일은 유로존 경제의 27%를 차지하는 최대 경제 대국이다. 2011년을 기준으로 할 때 유로존 수출의 31%, 수입의 27.3%를 차지했다. 유로존 전체 경상수지에서도 73.8%를 차지할 정도로 대외 경쟁력이 크다. 자본력도 막강하다. 경제 규모에 걸맞게 유럽중앙은행(ECB) 지분의 18.9%를 출자한 나라가 독일이다. 유로존의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해 마련한 4천4백억 유로 규모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중에서도 29.1%의 보증을 약속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공식 출범한 유럽안정메커니즘(ESM)의 납입 자본금 중 27.1%, 약 1천9백억 유로를 지원한 재정 부담국이 독일이다. 독일을 두고 유로존의 원동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과대평가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다. 유로화가 안정적인 데는 이만큼 독일의 역할이 컸다.

지난해 12월30일, 신년 연설 준비 중 TV 모니터에 잡힌 메르켈 독일 총리의 얼굴. 유로존 붕괴를 걱정하는 독일 정부와는 반대로 여론은 유로존 붕괴를 원하고 있다. ⓒ AFP 연합
무디스, 독일에 ‘부정적’ 전망 내려

과중한 책무가 주어졌기 때문일까? 국제 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는 지난해 7월 독일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전망이 낮춰진 탓에 독일이 올해 안에 지금의 AAA등급에서 강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무디스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에는 ‘독일이 유로존 국가들의 부채를 상당 부분 떠안게 될 것이다’라는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2009년 이후 독일 경제는 호황기를 내달렸다. 이를 발판 삼아 유로존 위기 국면에서 위상이 부쩍 커졌다. 2013년을 바라보는 경제 전문가들은 비록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장애물은 아닐지라도 독일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중대한 도전이란, 유로존의 재편이라는 작은 문제에서부터 유로존 붕괴가 불러올 마르크화(貨)로의 복귀라는 큰 문제까지를 포함한다.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탈퇴하는 유로존 붕괴 시나리오는 독일에게 상상조차 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독일 국민은 원하고 있다. 최근 설문조사 결과 대다수 독일 국민이 유로존 붕괴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로존 붕괴가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독일은 물론 유로존에 미칠 악영향이 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독일 경제 성장에 더 유리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현재 유로존 붕괴를 막기 위해 들어가는 자금 등을 감안하면 차라리 독일이 완장을 차고 유로존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도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한 단기적 손실이 너무 크다는 점이 독일 정부를 두렵게 한다. 독일 재무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로존이 분열하게 될 경우 독일의 실업률은 두 배로 뛰게 되고 국내총생산(GDP)도 10%나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물론 유로존 붕괴는 단지 하나의 시나리오에 불과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경제에서는 예측 가능한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잠재적 악재는 항상 존재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화폐 트라우마>의 저자이자 독일 일간지 ‘디벨트(Die Welt)’의 경제 전문기자인 다니엘 엑케르트는 독일이 오히려 유로존 붕괴를 이끌 수 있다고 본다. 그는 “그리스의 단독 탈퇴보다는 독일의 화폐공동체 탈퇴가 더 쉽다. 그리스 등과 달리 독일은 자본 유출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엑케르트는 “새로운 독일 마르크화는 평가 절하보다는 오히려 평가 절상될 것이다”라고 내다보고 있다. 엑케르트의 말처럼 유로존이 붕괴되고 평가 절상된 마르크화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는 독일에 반드시 유익한 일은 되지 못한다. 재도입된 마르크화가 강세를 보일 경우 수출 산업이 타격을 받는다. BMW·바스프(BASF)·지멘스(Siemens) 등 독일의 대기업들은 환율 정책에 대응하는 데 익숙하지만, 수출에 역점을 두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널뛰는 통화 가치에 따라 냉온탕을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다.

독일은 자동차 등 제조업에서 강세를 띠고 있다. 독일 브레머하펜에 늘어선 신형 벤츠의 행렬. ⓒ EPA 연합
“독일이 유로존에서 탈퇴한다면…”

엑케르트의 예측처럼 독일이 유로존에서 탈퇴한다면 나머지 국가들이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엑케르트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유럽이 2개의 통화 블록으로 분열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쓰고 있다. 그는 “통화 권역이 프랑화 블록과 마르크화 블록으로 나누어진다. 그럴 경우 유럽연합(EU)은 이해관계의 대립 속에서 완전히 지쳐버리게 될 것이다. 화폐공동체를 양분하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이해가 되지만 유럽 대륙의 정치적인 통합 면에서는 치명적인 일이다. 게다가 화폐공동체가 분열할 경우 유럽은 전 세계로부터 도전을 받게 된다. 그런 도전에 대항하기 위해 유럽은 ‘화폐 지역주의’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라는 급진적인 전망도 내놓고 있다.

최근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남부 유럽 국가들의 경제 성장을 옥죄고 있는 긴축 정책에 대응하려면 독일은 재정 통합을 더 늦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독일은 유럽의 재정 정책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주도해왔다. 라가르드 총재는 2013년 유로존 경제가 지난해와 비교해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지만 그 전제로 ‘올바른 정치적 결단’을 꼽고 있다. 이런 전망은 유럽중앙은행(ECB)과도 궤를 함께한다. ECB는 유로존 경제가 올해 0.5% 성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독일은 여전히 국제 경쟁력을 지닌 제조업 강국의 이미지가 강하다. 제조업의 지속적인 강세로 2013년 독일 경제가 뒷걸음질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독일의 올해 경제 전망에 대해서는 신중한 낙관론이 지배적이지만, 미국의 재정 절벽과 중국의 경기 둔화와 같은 외적인 복병이 독일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하는 분위기이다. 불확실성을 걷어내지 못할수록 유로존의 엔진은 제 힘을 내지 못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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