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밑으로 다 모여!”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3.01.2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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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지명되자 정치권에서는 ‘실무형’이 아닌 ‘의전형’ 총리라는 평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무난한 스타일의 김후보자 지명을 통해 직할 통치 체제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새누리당 내에서는 “‘책임형’이 아닌 ‘관리형’ 총리가 되면 장관 등의 시선은 바로 대통령으로 향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박당선인의 실무 비서진들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좋든 싫든 이너서클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십상시’란 말이 새 정부에서 다시 회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 후한(後漢) 말 영제 때에 장양 등 환관 10명이 있었다. 이들은 황제인 영제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주색에 빠지게끔 만들고, 국정을 농단했다. 이들은 모두 열후(列侯)에 봉해지고, 자기들 멋대로 천자의 칙명을 내리는 등 그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이들을 가리켜 ‘십상시(十常侍)’라고 불렀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부터 여권에서는 이른바 ‘십상시’가 화제로 떠올랐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주변에 십상시가 존재한다는 얘기였다. 대표적으로 박당선인의 비서진 4인방인 이재만 전 보좌관과 정호성·안봉근 전 비서관, 고(故) 이춘상 전 보좌관(2012년 작고) 등이 거론되었다. 이들을 향해 ‘문고리 권력’ ‘환관 권력’이라는 비난이 여권 내에서도 비등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나 캠프 관계자들이 박당선인과 통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명색이 국회의원인데, 보좌관들 눈치를 살펴야 하나”라는 불만이 실제 의원들 사이에서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1월24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서 국무총리 후보로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지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박당선인 실무 비서진 ‘이너서클’ 형성 전망

그렇다면 십상시로 거론되는 면면은 누구일까. 지난해 11월 대선 정국에서 민주통합당의 선대위 대변인이었던 진성준 의원은 십상시로, 새누리당의 김무성 캠프 총괄본부장, 서병수 사무총장, 권영세 종합상황실장, 이학재 비서실장, 이정현 공보단장, 이상일 대변인, 유정복 직능총괄본부장, 홍문종 조직총괄본부장, 안종범 의원, 변추석 홍보본부장 등을 지목했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는 것이 여권 내부의 전체적인 반응이다. 굳이 따진다면 이들은 ‘중신(重臣)’들이지 ‘환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십상시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정치권에 오래 몸담은 정치인이나 베테랑 취재기자들이 아니면 언뜻 알기 힘들 정도로 그 이름도 생소하다. 위에서 언급한 비서진 4인방 외에 ㅇ씨, ㅈ씨, ㄱ씨, ㄴ씨, 또 다른 ㅇ씨, 또 다른 ㅈ씨 등이 거론된다. ㅊ씨와 또 다른 ㅇ씨 등이 추가로 오르내리기도 한다. 이들은 거의가 친박계 의원들의 보좌관이나 비서관 출신으로, 현재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나 당선인 비서실 등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큰 변수가 없는 한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부분 청와대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박당선인이 웬만한 중진급 의원들보다도 이들 비서진을 더 신뢰하는 이유는 실무 능력이 뛰어나면서도 입이 무겁고 신중한 처신 등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점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박당선인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 ‘튀는’ 행동을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대구의 한 중견 언론인은 얼마 전 인수위 취재를 위해 일부러 서울에 올라왔다고 한다. 앞에서 거론된 ㅇ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일부러 인수위 사무실 앞까지 찾아가서 평소 호형호제하던 ㅇ씨에게 전화를 걸어 잠시 나와 줄 것을 청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ㅇ씨는 “만나드리기가 어렵다. 형님 번호여서 그래도 전화는 받은 것이다”라는 말만 한 채 전화를 끊었다. 그 후부터는 아예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이 언론인은 “과연 듣던 대로였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처럼 십상시로 비유되던 박당선인의 실무 비서진이 이번 김용준 총리 후보자 지명으로 또다시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새누리당 TK(대구·경북) 지역의 한 의원은 “책임 총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솔직히 기대했는데, 좀 뜻밖이었다”라며 김후보자 지명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총리가 실무형이 아니라 관리형이면 대통령의 직할 체제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즉, 장관들이 총리가 아닌 대통령과 직접 상대하려 할 것이다. 이는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당 대표 등도 마찬가지다. 관리형 수장이 자리에 있게 되면 수석비서관 등 참모들이나 의원들도 직접 대통령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누가 힘을 얻겠는가. 바로 대통령의 실무 비서진이다. 이들이 좋든 싫든 이너서클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십상시라는 말이 새 정부에서 다시 회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용준 인수위원장(오른쪽)이 1월24일 회견을 마친 뒤 기자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당선인, 권력 분산·직할 통치 의지 강해

새누리당 내에서 제일 우려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또다시 문고리 권력이니 환관 권력이니 하는 얘기들이 나오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여당 의원들이 박후보 앞에서는 제대로 말을 못하더라. 그러면서 뒤에서 비서들이 문제라는 둥, 박후보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둥 분통을 터뜨리곤 하더라”라고 전했다. 여당의 한 중진 인사가 박당선인에게 비서진들을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는 건의를 했다가 오히려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박후보 캠프 출신인 한 인사는 지난 1월21일 기자가 총리 인선 전망을 묻자 “박당선인을 잘 모르는 이들이 책임 총리 어쩌고 하는데, 그렇게 되기 힘들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이 인사는 “박당선인은 준비된 대통령이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구상이 이미 좍 서 있다고 봐야 한다. 5년이 짧을 정도로 말이다. 아마도 웬만한 업무는 대통령 자신이 직접 챙기려 할 것이다. 그리고 과거 박정희 정권 때 청와대 생활을 겪으면서 이미 특정인 한 명을 지나치게 믿거나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몸으로 체득한 바 있다. 아마 철저히 권력을 분산시키려 할 것이고, 그렇다면 책임형보다는 관리형이 더 맞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결과적으로 이 인사의 얘기는 적중한 셈이다.

이런 박당선인의 의중은 인수위가 최근 발표한 정부 및 청와대 조직 개편안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부 조직이 총리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부총리제를 다시 부활했고,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해서 무게 중심을 두었다. 청와대 조직 역시 대통령실장을 비서실장으로 격을 낮추는 대신, 국가안보실장을 신설하고,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키는 등 자칫 한 명에게 집중될 수 있는 권한을 철저히 분리시키는 구조로 바꿨다(20쪽 상자 기사 참조). 박당선인의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민주당은 김후보자 지명 보도를 접하고는 “(인사 청문회가) 별로 재미없게 되었다”고 입맛을 다셨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로 모처럼 존재감을 알렸던 민주당 입장에서는 총리 인선에 상당한 관심을 나타냈던 것이 사실이다. 박당선인 역시 이런 분위기를 읽고 고심 끝에 김후보자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김후보자의 두 아들을 둘러싼 병역 면제와 부동산 소유 등을 놓고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고 있어 청문회 논란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김후보자를 너무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제기한다. 장애를 극복하고 19세의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최연소 판사가 된 그가 대법관에 이어 헌재소장까지 오른 과정은 웬만한 집념과 의지가 없으면 어렵다는 것이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일부 언론에서 김후보자를 권력 지향적이지도 않고 그저 무색무취한 것으로 평가했던데,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박후보 캠프에 몸담기 전에도 정치권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실제 김후보자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과 친분이 두텁고,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선진통일연합’의 발기인으로 참여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선인과 당 지도부 식사가 비밀 회동인가?”

실제 김후보자 역시 자신을 그냥 ‘관리형’으로만 평가한 일부 언론 보도를 못마땅해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시사저널>이 총리 지명 다음 날인 1월25일 아침 김후보자를 밀착 취재했을 때 그는 한 조간신문을 보면서 “(내가) 사람은 좋은데 능력은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구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22쪽 딸린 기사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후보자의 총리 업무 스타일은 ‘실세형’이나 ‘책임형’이라기보다 ‘관리형’ ‘의전형’에 가까울 것이라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후보자는 (박당선인이 말했던) 책임 총리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책임 총리로는 대통령의 의중을 잘 파악하는 인물보다 자신의 생각대로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적임이다. 이동흡 후보자의 청문회 때문에 총리 물망에 올랐던 다른 후보자들이 (총리 지명을) 고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자체 검증을 상당히 엄격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육지책으로 (김후보자를)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향후 직할 통치 강화가 예상되는 박당선인과의 당청 관계 설정에 대해서 우려를 표시하는 목소리가 많다. 친박계 핵심 전략가로 통하는 한 인사는 “어제(1월24일) 날짜 조선일보 1면에 오른 사진을 봐라. 박당선인이 새누리당 지도부와 시내 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하는 사진이 희뿌옇게 게재되었다. (모임 사실을) 언론에 전혀 공개하지 않다 보니 누군가가 몰래 찍은 것 같다. 그런데 대통령 당선인이 당 지도부들과 점심 한 끼 먹는 게 비밀 회동처럼 비치게 할 일인가?”라고 다소 어이없어 했다.  
 

박당선인 정부 조직 개편, 핵심 권력 상호 견제 통해 ‘분산’

권력을 한곳에 집중시키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은 정부 조직 개편에서도 잘 드러난다. 현재의 15부2처18청은 17부3처17청으로 개편된다. 주목되는 부분은 경제부총리의 부활과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장관의 위상이다. 경제부총리는 경제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된다. 정부 출범과 동시에 맞닥뜨리게 될 과제인 경제 위기 극복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정부 내 영향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문제에서만큼은 사실상 총리가 아닌 부총리가 관장할 가능성이 크다.

미래창조과학부장관의 역할에도 힘이 실릴 예정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기존의 교육부·지식경제부·문화체육관광부·행정안전부·방송통신위원회 등 여러 부처의 기능을 통합해 신설되는 거대 조직이다. 각 부처에서 관할하던 정부 출연 연구 기관들도 대거 흡수해 한데 모을 계획이다. 말 그대로 ‘공룡 부처’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 개편도 마찬가지다.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기존의 대통령실이 비서실로 개편되면서 대통령실에 속해 있던 경호처가 분리되어 경호실로 승격된 점이다. 이에 따라 경호실장은 장관급으로 위상이 높아졌다. 여기에다 국가안보실도 신설된다. 안보 전략과 위기 대응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게 될 국가안보실의 수장 역시 장관급이다. 경호실장과 국가안보실장이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게 되면서 비서실장의 영향력은 현재의 대통령실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질 전망이다. 세 명의 실장이 경쟁 구도 속에서 권력을 나누는 모양새이다.

이러한 조직 개편을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정을 총괄해야 할 총리의 위상이 흔들릴 경우 정부 조직 전체가 우왕좌왕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청와대 개편과 관련해서는 장관급으로 격상된 경호실장이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지금 분위기로는 정치권 인사가 경호실장으로 임명될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데, 업무 특성상 인사까지 개입할 여지가 있어 자칫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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