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부검’으로 자살률 ‘확’ 낮춘다
  • 조현주 객원기자 (jhonju@naver.com)
  • 승인 2013.01.2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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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책으로 급부상…부산시, 2월 첫 시행

전직 야구선수 조성민씨의 자살을 계기로 ‘불명예스러운’ 한국의 자살률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은 8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0년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33.5명으로 OECD 평균(12.8명)을 한참 웃돌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자살률이 가장 높다.

자살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면서 자살 대책 마련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먼저 부산시가 발 빠른 조치에 나섰다. 지난 1월6일 조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부산 지역에서는 이튿날인 7일 하루 동안 무려 7명이나 자살해 유명인이 자살하면 따라서 자살하는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우려가 상당했다. 이날 부산시는 부산시교육청·부산경찰청 등과 협의한 후, 오는 2월부터 자살 예방을 위해 ‘심리적 부검’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자살 예방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심리적 부검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시의 방침은, 자살을 개인이 아닌 지역 사회의 문제로 환원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되고 있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심리적 부검 제도 도입에 적극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부산시에 이어 경기도 역시 올해부터 심리적 부검 제도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지난 1월12일 밝혔다.

지난 1월8일 엄수된 전직 야구선수 고 조성민씨의 발인식. ⓒ 시사저널 임준선
“자살자 60.8%, ‘자살 신호’ 미리 보내”

심리적 부검이란, 자살자의 가족을 비롯한 지인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하고 고인의 유서·일기 등 개인적 기록과 병원 진료 기록 등의 자료를 분석해 자살의 이유를 규명하는 연구 방법을 일컫는다. 외국에서는 심리적 부검 결과를 자살 예방 정책을 만들기 위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심리적 부검을 통해 자살률을 크게 낮춘 사례도 있다. 실제로 핀란드는 1987년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심리적 부검을 실시해 1980년대에 인구 10만명당 30명대였던 자살률을 20여 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미국 역시 이런 방식으로 자살 예방 정책을 실시해 자살률을 10만명당 19명 수준(1990년)에서 14명 수준(2000년)으로 낮출 수 있었다. 아시아권에서도 심리적 부검을 통한 자살 연구가 늘어나고 있는데, 일본은 이미 1993년에 심리적 부검 조사 사업을 실시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심리적 부검은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다. 지난 2009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2차 자살 예방 대책 5개년 계획에 따라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한국의 심리적 부검 모델’을 만들어 시범 사업을 벌인 것이 전부이다. 당시 심리적 부검 건수도 겨우 7건에 그쳤다.

그런데 오는 2월부터는 심리적 부검 제도가 지자체 차원에서 전면 도입되는 만큼 그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시의 계획에 따르면, 시는 부산시 자살예방센터가 만든 체크리스트를 시내 15개 경찰서에 배포하고 담당 경찰관이 자살자 정보를 파악해 이를 기록하게 된다. 부산경찰청이 분기별로 체크리스트 관련 기록을 모아 부산시에 보내면 시가 자살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체크리스트에는 질병, 가족 관계, 학력, 거주 형태, 소득, 가족 갈등 등의 항목이 포함되어 자살을 선택한 심리·환경적 요인을 조사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김종윤 부산시 건강증진과 과장은 “아직 경찰청과의 조율이 남아 있어 시행 일시가 확정된 단계는 아니다. 빠르면 2월 초에 심리적 부검을 시행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심리적 부검 전담 부서 마련할 때”

전문가들은 심리적 부검을 통해 자살 요인과 유형별로 특성화된 자살 예방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 11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심리적 부검을 통해 자살 사례를 연구해 ‘한국 자살 사망자 특징: 사례-대조 심리적 부검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한 서종한 제주경찰청 프로파일러는 “실제 56건에 달하는 심리적 부검을 진행한 결과, 60% 가까이는 자살 시도 전에 자살을 암시하는 신호를 보냈다. 또한, 자살 요인으로 직장에서의 실직과 관련한 불안감과 학교에서의 왕따 부적응 문제가 가장 두드러졌다. 이런 결과를 더 심층적으로 조사한다면 실질적인 자살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심리적 부검 제도가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우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전담 부서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형 심리적 부검 절차와 모델을 구축하는 것 또한 과제이다. 서종한 프로파일러는 “핀란드에서 1천4백건에 이르는 심리적 부검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이를 전담할 기관을 두었을 뿐만 아니라, 경찰서 안에 심리적 부검을 전담할 부서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핀란드처럼 심리적 부검이 국가적으로 시행된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형 심리적 부검 절차나 모델이 미비하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전담 부서조차 없는 실정이다. (당장 시행된다면) 지자체나 경찰, 의료기관, 자살 예방 센터 등이 얼마나 긴밀하게 협조할지도 미지수이다”라고 말했다. 

 

핀란드는 지난 1986년 세계 최초로 국가적 차원에서 심리적 부검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핀란드는 자살률이 인구 10만명당 30.3명에 달해 수년간 세계 자살률 1~2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핀란드는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1986년부터 5년 동안 전문가 6만명을 동원해 1987년에 자살한 1천3백97명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시행했다. 당시 투입된 예산만 해도 약 3백억원에 이른다.

심리적 부검 결과, 자살자 가운데 80% 정도가 우울증을 앓았고, 이 가운데 단 15%만이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핀란드 정부는 이 결과를 토대로 자살 예방 실행 전략을 세웠고, 1991년 대대적인 자살 예방 사업에 나섰다. 이에 따라 일반 환자 또한 병원에 가면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 여부를 주기적으로 체크할 수 있게 되었고,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게 되었다. 덕분에 핀란드의 자살률은 지난 2004년에는 인구 10만명당 20.4명, 지난해에는 17.3명으로 눈에 띄게 낮아졌다. 심리적 부검 제도 시행 23년 만에 자살률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사실 핀란드의 자살 예방 프로젝트는 유족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참여가 없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1987년의 자살자 유족 가운데 80%가량이 심리적 부검에 참가한 덕분에 무려 1천3백97명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리적 부검에 대한 유족 참여가 유독 저조한 한국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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