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승인 자료, '판도라의 상자' 열리나
  • 원성윤│기자협회보 기자 ()
  • 승인 2013.01.2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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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종편 승인 자료’ 공개 판결

이명박 정부의 핵심 사업 중의 하나였던 종합편성 채널(이하 종편) 승인 과정의 ‘민낯’이 과연 드러날 것인가. 법원이 종편 허가를 내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대해 재차 종편 승인 자료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려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월16일 종편 승인 자료를 공개하라는 1심 판결에 불복해 방통위가 제기한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5월 언론개혁시민연대가 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종편 승인 관련 정보 중 개인정보를 제외한 일체 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에 방통위는 행정법원 판결에 불복해 심사위원회 회의록과 예산 집행 내역 등 일부 자료만 공개한 채 항소를 제기했었다.

당시 법원이 공개하라고 명령한 자료는 △종편 승인을 의결한 방통위 전체 회의록 △심사위 구성 등에 사용한 예산 집행 내역 △대상 법인 특수관계자 참여 현황 및 중복 참여 주주 현황 △주요 주주 출자 등에 관한 이사회 결의서 등이다. 일련의 내용들은 종편 출범 반년이 지난 뒤인 지난해 6월 방통위가 공개한 백서에서도 누락되었다. 이에 언론·시민 단체와 야당은 “방통위가 법원 판결을 무시한 채 ‘텅 빈 백서’로 국회와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 일러스트 권오환
정량 평가 항목에선 탈락 업체 점수가 더 높아

이런 가운데 항소심에서도 방통위의 종편 선정 관련 자료 공개 판결이 나오면서 ‘종편 판도라 상자’가 이제는 열릴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언론연대는 1월21일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원칙에 맞게 판단을 내린 법원의 결정을 환영하며, 방통위가 시간 끌기를 중단하고 해당 자료를 즉각 공개할 것을 촉구한다”며 “고법의 항소 기각 판결에 따라 방통위에 비공개 정보의 공개를 다시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민주통합당은 논평을 통해 “방통위는 종편 선정 관련 자료를 즉시 공개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현재 방통위는 상고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상고까지 2주간의 시간이 있어 판결문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종편 허가 과정을 놓고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0년 종편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불거진 불공정 심사 의혹, 특혜 의혹, 부적절한 출자 의혹 등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방통위가 정보 공개를 피하기 위해 발간한 ‘종편 백서’에 의하면, 사업자로 선정된 조선·중앙·동아·매경 종편이 탈락한 사업자들에 비해 계량 평가에서는 현저히 낮은 점수를 받고서도,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큰 비계량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사업자를 이미 정해놓고 심사를 한 것은 아닌지 밝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방통위가 지난해 5월 발간한 ‘종합 편성·보도 전문 PP 승인 백서’(종편 백서)를 보면 종편 승인 과정에 관해 의혹이 불거지는 이유가 나타난다. 종편 승인을 받은 채널A·JTBC·TV조선·MBN 등 4개 채널은 전체 44개 세부 심사 항목 중 수치로 계량화가 가능한 9개 항목 대다수에서 탈락된 사업자(한국경제의 HUB, 태광의 케이블연합종편 CUN)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4개 종편이 낮은 점수를 받은 항목 대다수는 ‘재정적 능력’ ‘자금 출자 능력’에 관한 것이었다. ‘재정적 능력’ 3가지 항목(자기 자본 순이익률, 부채 비율, 총자산 증가율)에서 1위는 JTBC였지만 2, 3위는 각각 HUB와 CUN이었다. 특히 HUB와 CUN이 부채 비율에서 각각 1, 2위를 차지해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JTBC는 3위, 채널A는 4위, MBN은 5위, TV조선은 6위로 밀려났다.

자금 출자 능력 3가지 항목(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단기 금융 상품 합계 대비 투자 금액의 적정성, 자기 자본 대비 투자 금액 적정성, 신청 법인 및 주요 주주의 신용등급)에서는 CUN이 1위를 차지했다. CUN은 ‘납입 자본금’ 규모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종편 주주들의 신용등급은 TV조선(3위), 채널A(4위), JTBC(5위), MBN(6위) 순으로 탈락 사업자보다 낮았다. 지난해 부실 판정을 받은 저축은행들이 종편에 투자한 것이 언론을 통해 밝혀졌지만, 방통위는 종편 투자 주주들을 백서 등에서도 공개하지 않았다.

종편 승인을 받은 사업자들은 수치로 계량할 수 없는 35개 비계량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모회사로 둔 종편 신청 사업자들의 점수가 높았다. ‘재정적 능력’ ‘자금 출자 능력’ 6개 항목(총점 1천점에서 1백50점)에서는 최고점과 최하점 차이가 10여 점에 불과했지만, 비계량 항목에서는 이 간격이 상당히 커졌다. 이 결과 종편 승인 ‘커트라인’을 넘긴 것이다. 2백50점이 배정된 ‘방송의 공적 책임, 공정성, 공익성 실현 가능성’(공적 책임, 공정성, 공익성 실현 계획/ 지역, 사회, 문화적 기여도/ 신청 법인의 적정성/ 시청자 권익 실현 방안) 항목에서 JTBC나 TV조선이 1위를 차지해 최하점을 받은 사업자보다 30여 점이나 앞섰다. JTBC나 TV조선은 ‘방송 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 계획의 적절성’ ‘조직 및 인력 운영 등 경영 계획의 적정성’ ‘방송 발전을 위한 지원 계획’ 등 나머지 대다수 항목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채널A는 ‘외주 제작 계획의 적절성’ ‘시장 전망 및 경영 전략의 적정성’ ‘콘텐츠 산업 육성, 지원 계획’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1년 12월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종편 채널 개국 축하 행사가 열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제공
주주 구성의 문제점도 거론돼

심사위원들이 심사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을 했는지도 의문점으로 제기된다. 14명의 심사위원은 지난 2010년 12월23일부터 31일까지 9일간 9번의 회의를 했고 종편·보도 채널 사업자들로부터 각각 1번씩 의견 청취를 했지만, 심사위원들 간에 토론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회의 속기록에 따르면, 이병기 심사위원장은 당시 12월24일 2차 회의에서 ‘심사 기본 원칙’이라면서 “궁금한 것이 있을 경우 위원님들 간에 개별적으로 질문하지 마시고, (방통위) 심사지원반에 질의해주셨으면 한다”고 밝혔고, 위원들도 거기에 동의했다. 이후 회의에 올라온 안건 대다수가 사실상 위원들 사이에 토론 없이 원안 그대로 통과되는 경우가 많았다.

주주 구성의 문제점도 거론된다. 백서에 따르면, 채널A는 수십여 개 대학들이 종편 주주로 참여한 문제, JTBC는 법 위반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주주들이 참여한 문제, MBN은 일본 닛케이그룹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투자하는 과정에서 방송법을 위반한 의혹 등이 심사 과정에서 지적받았다.

이처럼 ‘종편 백서’에서 주주들의 일부 문제가 거론되었지만, 방통위가 종편에 투자한 주주들을 전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어 실상은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사업 계획서가 요약본이어서 구체적인 주주 구성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업자 의견 청취 속기록과 심사 소견서에서 언급된 주주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되어, 주주를 알아내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이번 법원의 판결에 따라 방통위의 종편 승인 과정이 전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을지, 종편이 사업계획서에서 제출한 것과 실제 차이는 얼마나 될지, 내용이 공개되었을 때 종편의 재허가에 미치는 파장이 어떨지는 내용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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