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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 보며 다시 살아갈 힘 얻었다”

한국 공연에 푹 빠진 일본인 이시이 유조 씨

허미선 객원기자 ㅣ 승인 2013.01.29(Tue) 17: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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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빨리, 빨리!”

성남아트센터에서 뮤지컬 <캐치미 이프 유 캔>을 보고 나오자 친구와의 약속까지 1시간 남았다. 충무아트홀에서 상연 중인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함께 보기로 한 것이다. 일본에서라면 “무리데스(無理です, 무리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상황에서 한국의 택시는 “오케이”를 외치고 내달리기 시작하더니 1시간 2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일본 시부야 소재의 복합문화시설인 도큐 분카무라(Tokyu Bunkamura, 東急文化村)에서 무대·조명·음향 등 극장 운영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시이 유조(石井雄造) 씨의 한국 방문 일정은 언제나 그렇듯 숨 가쁘게 돌아간다. <캐치미 이프 유 캔>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비롯해 <점프> <액션드로잉 히어로> <Bibap> <벽을 뚫는 남자> <지킬 앤 하이드> <완득이> <난타> 등 1월21일부터 25일까지 그가 관람할 공연은 9편, 스스로 만든 공연 관람 일정표에 빈칸이라고는 없다. 이처럼 바쁜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게 하는 한국의 문화가 그에겐 마냥 신기하고 즐겁기만 하다.

   
지난 1월24일 서울극장 <점프> 전용관을 찾은 일본인 이시이 유조 씨. ⓒ 시사저널 전영기
<점프> 공연만 1백64회 봤다

“처음 본 한국 공연이 <점프>이다. 놀랍고 굉장했다.” 이시이 씨는 대사가 아닌 몸짓과 소리, 리듬과 비트만으로 구성된 넌버벌 공연(Non-Verbal Performance)

<점프>를 통해 한국 공연에 매료되기 시작하던 2007년 5월을 “마치 신세계를 만난 듯했다”고 회상한다. <점프>는 할아버지, 엄마, 아버지, 삼촌, 딸, 사위로 구성된 무술 가족의 집을 방문한 도둑들과 미스터리한 노인 등 9명의 등장인물이 전통 무예인 태권도와 태껸, 아크로바틱 등을 바탕으로 다양한 무술을 선보이는 코미디이다.

공연 관련 일을 하다 보니 공연의 본고장인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관람한 뮤지컬·연극 등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처음 접한 한국의 공연은 분명 달랐고 새로웠다. 일본에서 <점프>가 공연되는 한 달 반 동안, 이시이 씨가 <점프>를 관람한 횟수는 20번. 오사카까지 원정을 가기도 했고, 도쿄 공연 마지막 날에는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아쉬움에 휴가를 내는 것까지 불사했다.

그리고 그해 9월, 처음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 가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던 그의 첫 한국 방문은 오롯이 <점프>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시작한 <점프> 관람이 벌써 1백64회째(1월24일 현재)이다. 부산·대구 등 <점프>가 가는 곳이면 한달음에 동행했다. 그럼에도 서울극장 5층에 위치한 <점프> 전용관으로 향하는 그의 얼굴에는 설레는 표정이 역력했다.

“2010년 7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몇 달 동안 서울에 올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슬픔을 가라앉히고 12월에 다시 찾은 서울에서 <점프>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라고 털어놓은 그는 “<점프>는 나에게 힘을 주는 무대”라고 덧붙였다. 그는 “볼 때마다 9명의 등장인물 중 한 사람에 집중하다 보면 매번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각 등장인물의 캐스팅이 달라질 때마다, 바뀐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어울림이 다양한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무대’의 매력과도 일맥상통한다. “무대는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라서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볼 때마다 달라지는 감흥, 그것이 바로 공연의 매력이다.”

<점프>를 시작으로 그는 한국 공연에 빠져들었다. 1년이면 10번 이상 한국을 방문하는 그의 주요 일정은 공연 관람. 늘 하루 두 편의 공연을 관람하곤 했다. <엘리자베스> <황태자 루돌프> <스프링 어웨이크닝> <지킬 앤 하이드> 등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공연을 비롯해 <명성왕후> <영웅> <서편제> <완득이> <여신님이 보고 계셔> <점프> <난타> 등 한국 창작 뮤지컬 및 공연까지 두루 섭렵했다. “이번 방문에서 처음 접한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인 창작 뮤지컬이었다. 남과 북으로 갈려 갈등하는 상황에서 화해로 마무리되는 과정이, 한국어를 잘 몰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잘 그려졌다. 분단, 이산가족 등 일본인으로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일본 무대에서 공연되기를 바라는 작품으로 윤호진 교수가 제작하고 연출한 <영웅>과 <명성황후>를 꼽았다. 안중근 의사의 일생을 다룬 <영웅>이나 시해 100주년 기념작인 <명성황후>는 일본인으로서는 분명 껄끄러울 작품이다. 그럼에도 두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균형적인 시각’ 때문이다. “특히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일생을 다루다 보니 이토 히로부미가 악역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일본 총리로서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역사적 배경과 복잡한 심경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월7일,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국 국방부와 육군본부, 한국뮤지컬협회가 공동 주최하고 제작한 창작 뮤지컬 <프라미스>에 대한 소식을 보도했다. <프라미스>는 군에 입대한 뮤지컬배우 김무열,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인 이특과 초신성의 윤학, 지현우, 에이트 이현 등 한류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뮤지컬이었다. NHK 보도 직후, 한국에서 상연될 공연인데도 일본인 예매율이 30%까지 급상승했다.

“일본인들이 공연 관람을 위해 한국을 찾기 시작한 계기를 마련한 작품은 동방신기의 시아준수(김준수)가 주인공으로 나선 뮤지컬 <모차르트>”라고 전한 이시이 씨는 한국 공연에 대해 “일본에는 노래를 잘하는 뮤지컬배우가 많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노래와 춤 실력이 뛰어나다. 한국처럼 일본에서도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공연을 위해 무대에 오르지만 한국 아이돌 멤버들의 춤과 노래는 정말 훌륭하다”라고 평했다.

   
넌버벌 공연 <점프>의 한 장면. ⓒ (주)예감 제공
‘K뮤지컬’과 ‘K스테이지’ 부흥 꿈꾸며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 일본인이 많아지는 가운데, 일본에 진출하는 한국 공연도 늘어나고 있다. 비수기인 요즘도 일본의 극장가에는 <광화문연가>와 <베르테르의 사랑> 두 편의 한국 창작 뮤지컬이 상연되고 있다. “일본의 공연 가격은 1만3천 엔 정도로 매우 비싼 편이다. 그래서 일본인에게 공연 관람은 도박과도 같다. 재미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전한 이시이 씨는 “그런 면에서 재미를 보장받을 수 있는 한국의 작품은 안전하다”고 한국 공연의 인기 이유를 분석했다.

최근 드라마와 K팝에 집중되었던 일본 한류 팬들의 관심이 공연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16, 17일, 팬미팅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뮤지컬 무대에서 시작해 ‘엄사마’로 불리기 시작한 배우 엄기준의 인기는 이런 흐름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뮤지컬 작품으로 일본 내에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기는 했지만, 드라마 <드림 하이> <유령> <여인의 향기> 등을 통해 더욱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에 대해 이시이 씨는 “다만, 일본 내 공연의 티켓값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데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공연의 일정이나 캐스팅 등이 늦게 발표되는 탓에 좀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시이 씨는 “훌륭한 K뮤지컬과 K스테이지가 K팝이나 드라마만큼 인기를 끌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고, <벽을 뚫는 남자> 관람을 위해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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