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정파 운영하듯 해서야…”
  • 감명국·안성모·이승욱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3.02.0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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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부적절한 인사’ 시비와 ‘인수위 불통’ 논란에 이어 결국 새 정부의 첫 총리 후보자가 갖가지 의혹 제기에 자진 사퇴하는 사태까지 연출되었다. <시사저널>은 출범을 앞둔 박근혜 새 정부의 난맥상에 대해 정치 전문가 20인을 대상으로 긴급 인터뷰를 실시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박당선인이 지닌 태생적 한계”라는 의견을 많이 제시했다. “이런 성향은 앞으로도 쉽게 바뀌기 어렵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박당선인은 이제 당 대표가 아닌 대통령으로서 의식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라는 목소리가 드높다.


2008년 4월에 치러진 18대 총선 때 수도권에서 당선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한 초선 의원은 선거 직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약속 장소가 특이했다.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 앞이었다. 차를 가지고 갔는데, 박 전 대표의 비서인 듯한 사람이 와서는 차에서 내리라고 하더니 다른 차를 타라는 것이었다. 이 의원은 다소 황당했지만, 그래도 시키는 대로 했다. 차를 탔더니 간 곳이 강남의 한 유명 음식점이었고, 그 음식점의 한 방에 박 전 대표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사석에서 기자에게 이런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던 이 의원은 “그 음식점은 나도 1년에 몇 번은 갈 정도로 자주 찾는 곳이었다. 처음부터 그리로 오라고 하면 될 것을, 이게 무슨 007 작전인가 싶어 어이가 없었다. 하긴 그때만 해도 이명박 정부 초기라 (박 전 대표에 대한) 감시가 엄청 심했을 것 같아 그랬으리라고 이해는 되었지만, 그래도 참 씁쓸했다”라며 웃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당시 그 초선 의원에게 연락을 취하고 차를 가지고 나가 태우고 또 현장까지 안내하는 등 모든 수고는 비서진이 했음은 물론이다. 평소 박당선인은 만남의 장소로 호텔을 자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 노출을 극히 꺼리기 때문이다.

지난 1월30일에는 박당선인이 새누리당 강원 지역 의원들과 함께 오찬을 하면서 청와대 옆 안가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초선 의원은 “오찬 장소에 대한 주소만 문자메시지로 왔다. 주소지가 청와대 근처여서 인근 식당인 줄 알았는데 찾아가봤더니 청와대 옆 안가였다. 처음 가봤다”라고 밝혔다. 이 안가는 대통령이 외부 인사를 비밀리에 만날 때 이용하는 곳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초 당선인 신분 때 이곳을 사용한 바 있다. 하지만 박당선인은 이곳 사용을 마다하고 삼성동 사저를 그대로 이용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오찬 장소로 이 안가를 사용한 것이다. 여기에는 며칠 전 한 시내 음식점에서 이루어진 박당선인과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오찬 만남이 카메라에 잡혀 문 틈새로 찍힌 흐릿한 사진 한 장이 그 다음 날 일간지 1면에 게재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당시 이 사진에 대해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당선인이 여당 지도부와 오찬을 함께하는 것이 무슨 중대한 비밀이라고, 비공개로 해서 이런 사진을 나오게 하나”라며 어이없어 하기도 했다.

박당선인이 2011년 대선 출마 준비를 하며 여당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할 때도 가장 우선적으로 강조한 것이 만남에 대한 보안 유지였다. 당시 박당선인과 만났던 한 여당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는 우리가 질문하는 것 중에 다소 마음에 안 드는 질문이 있으면 바로 대답하지 않고 뜸을 들인다. 그러면 분위기가 싸~해진다. 그러면 얼른 알아서 다른 질문으로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박당선인의 스타일에 대해 많은 정치 전문가가 “한 정당을 이끌거나 선거를 지휘하는 데에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의 리더십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는 데에 있다.

연이은 ‘부적절한 인사’ 시비와 ‘인수위 불통’ 논란에 이어 결국 새 정부의 첫 총리 후보자가 갖가지 의혹 제기에 자진 사퇴하는 사태까지 연출되면서, 박근혜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큰 난맥상에 빠졌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첫 과반수 이상 득표 대통령·최다 득표 대통령으로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듯하다. 이 상태로는 2월25일 정상적인 정부 출범이 가능할지조차도 회의적이다. 대선 이후 지지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과 여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학계와 정치권·언론계의 정치 전문가 20인에게 물어보았다.

“박당선인이 태생적으로 지닌 한계”

‘박근혜 당선인이 주도하는 인수위의 난맥상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박당선인이 태생적으로 지닌 한계”라는 의견이 의외로 많이 나왔다. “이런 성향은 앞으로도 쉽게 바뀌기 어렵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모두 12명이 이와 유사한 답을 내놓았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박당선인은 이제 당 대표가 아닌 대통령으로서 의식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향후 박근혜 정부의 앞길이 평탄하지 않을 것 같다”라고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정치평론가 박상병 박사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박당선인의 기본적인 인식과 철학의 부재가 심각하다는 점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윤리위원장을 지낸 바 있던 인명진 갈릴리교회 목사는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어두운 그늘을 느끼게 된다. 지나친 국가주의 강조로, 단지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그것”이라고 밝혔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박당선인이 권력의 속성과 운용 방식에 대해서 너무 적나라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고 진단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박당선인이 갖는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은 ‘폐쇄성’과 ‘집단 이성에 대한 불신’이다”라고 지적했고,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태생적으로 갖는 부정적인 인간관과 네거티브한 인간관이 제일 큰 원인”이라고 꼽았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근본적으로 권력 독점욕이 너무 강하다”라고 밝혔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과거 당 대표를 할 때도 지금처럼 시스템 없이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다”라고 우려했다.

이런 비판은 여권 성향의 인사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새누리당 비대위원과 대선 캠프 정치발전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박당선인이 함께 국정을 이끌어나갈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친박계 핵심 전략통으로 알려진 ㅇ씨는 “박당선인이 과거(박정희 정권)의 트라우마, 불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고 밝혔고, 여당 고위 당직자 ㅈ씨도 “소통 부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채널을 이용하지 않고 사적인 채널에 너무 매달리는 폐쇄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명수 매일신문 서울정경부장 역시 “공적인 인재 풀을 가동하고 공식적인 시스템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당선인의 최근 발언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박당선인이 청문회의 문제점을 거론했는데, 국민들의 시선과 달리 완전히 거꾸로 보는 게 문제”라며 “지금의 인사청문회 제도 자체를 당선인이 문제 삼는 것이 과연 타당한 시각인지 언론에서 좀 더 강도 높게 비판에 나서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청문회를 두고 ‘신상 털기’라고 비난하는 것은 인사권자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당선인 뒤로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가 인수위 회의 자리에 들어서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참모는 간 데 없이 측근만 나부껴”

향후 다소 나아질 것이라는 일부 희망적 의견도 있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지금의 인사 시스템 난맥상은 박당선인이 근본적으로 이명박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후보자 검증을 제대로 하려고 하면 현 정부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박당선인이 그렇게 하기가 싫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지금의 박당선인에 대한 지지율 하락이 지지층의 붕괴나 균열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향후 국정 운영 스타일 변화에 따라서 상승할 여지는 남아 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과연 이 모든 난맥상이 박근혜 당선인만의 문제일까. 친박계를 비롯한 새누리당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심지어 “참모는 간 데 없고 측근만 나부낀다”는 말까지도 나온다. 박당선인에게 직언하는 참모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가신이나 측근이 아니라 참모가 필요하다. 이들이 자리를 내놓고 몸을 던지는 직언을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정희 교수는 “너무 눈치 보기에만 급급하다. 끌려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인상이다”라고 진단했다. 이렇게 된 데는 ‘한번 눈 밖에 나면 끝이다’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황태순 위원은 “박당선인이 예스맨을 좋아하는 상황이다 보니 쓴소리를 참지 못하는 분위기가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라고 분석했다. 유창선 박사는 “일단 눈 밖에 나면 버려진다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기 때문에 소신껏 의견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의도적으로 직언파 참모들을 곁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박당선인의 측근들이 과거 정치 지도자들의 측근들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도 나왔다. ㅇ씨는 “박당선인의 측근은 YS나 DJ처럼 30년에 걸친 정치적 동지 관계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박당선인이 어려울 때 감옥을 가거나 공천을 안 받는 희생을 한 이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인명진 목사는 “측근 몇 명이 똘똘 뭉치는 것도 보기 안 좋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충성파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라고 꼬집었다. 그렇다 보니 책임지고 일하는 측근들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윤태 교수는 “측근들에게 너무 힘이 실리는 것을 막고 부정부패는 차단해야 하지만, 중요한 의사 결정에서 책임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문제이다”라고 꼬집었다. 이상돈 교수는 “측근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림자 측근이라는 점이다. 정치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은 박당선인에게 있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윤희웅 실장은 “본질적인 여권의 난맥상은 곧 박당선인의 난맥상이다”라고 지적했다. 유호열 교수는 “박당선인이 1인 플레이를 하고 있고, 당은 가만히 지켜보는 한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당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박명호 교수는 “여당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당분간은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내다보았다.


“박근혜 인사 스타일, 여전히 불씨” 
 ‘새 정부 출범 직후 정국 쟁점’ 질문에 전문가 20명 중 6명이 ‘인사 문제’ 꼽아

정치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 직후 마주할 정국 쟁점으로 역시 ‘인사 논란’을 가장 많이 꼽았다. <시사저널>이 정치평론가와 교수, 정당 관계자, 정치부 기자 등 정치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새 정부 출범 직후 예상되는 정국 쟁점’을 물은 결과(복수 응답), 6명이 “연이어지는 인사 문제가 정국 쟁점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인 신분으로 한 인사마다 ‘불통 인사’와 ‘나 홀로 인선’ 등의 논란을 겪었는데도, 앞으로도 과거의 인사 스타일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것이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부소장은 “역대 정권마다 출범 초기 정부 구성과 청와대 인선 등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면서 “박근혜 정부 역시, 인사는 넘어야 할 첫 번째 관문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정희 교수는 “(그동안 인사 스타일을 보았을 때) 박당선인은 마치 사람의 능력과 도덕성을 따로 취급하는 것 같다. 그런 인식이 있는 한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인사 논란은 계속 불거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 뒤를 이어서는 남북 관계와 안보 등 대북 정책을 둘러싼 논란 등을 5명이 꼽았다. 유호열 교수는 “대북 전문가들이 인수위에 남북 관계의 위험성에 대한 시그널(신호)을 보내고는 있지만 전달할 경로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새 정부가 대북 정책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충돌 등) 초유의 사태를 맞을 우려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 “국정원이나 국방부 등의 인수인계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안보 공백이 나타날 수 있다”(이상돈 중앙대 교수), “대북 정책을 주도할 사람이 안 보이고 정책이 안 보인다”(인명진 목사)는 등의 우려 섞인 전망도 나왔다.

복지 공약 등 박당선인이 내건 일부 공약의 후퇴와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분열 및 여야 간 대립 등 정치권 갈등을 예상 가능한 정국 쟁점으로 꼽은 전문가는 각각 4명이었다. 새누리당의 전략통으로 통하는 ㅇ씨는 “지난 대선에서 박당선인과 새누리당이 내놓은 공약 중에는 현실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것이 많다. 지금은 당선인 신분이라서 책임을 피할 수 있지만, 취임 이후에는 공약의 실현 가능성 문제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 고원 서울과기대 교수는 “MB 정권의 유산을 청소하는 문제가 당장 걸릴 것이다. 어쨌든 청소는 하고 가야 하는데, 갈등을 관리하는 문제가 생길 것이다”라며 전 정권과의 갈등 가능성을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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