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에 비친 강남 이미지 변천사
  • 하재근│문화평론가 ()
  • 승인 2013.02.0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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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부' 넘어 이제는 귀족이미지 대변

최근 종영한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는 서울 강남 청담동에 진입하려는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의 욕망을 절절하게 표현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는 ‘압서방(압구정동·서초동·방배동)’에 진입하려는 여성의 욕망이 표현되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오빤 강남스타일’이라며, 강남을 선망하는 여성들에게 잘 보이려는 강북형 남성의 몸부림을 표현한 노래였다. 강남 스타일이 되려는 남성들의 몸부림은, 강북 수유리에 살면서 <압구정 날라리>를 자처한 유재석의 노래에서도 표현되었다.

이렇게 최근 대중문화 속에서 강남에 대한 선망이 극에 달한 느낌이다. <청담동 앨리스>에서는 전통적인 캔디의 캐릭터까지도 바뀌었다. 전통적으로 캔디는 남자의 돈을 신경 쓰지 않으며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는 캐릭터였지만, <청담동 앨리스>

에서는 자신을 청담동에 진입시켜줄 재력가를 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 강변하는 캐릭터로 바뀌었다. 꽃뱀과 뒤섞인 ‘하이브리드 캔디’, 성격이 꽃뱀적으로 분열된 ‘분열형 캔디’이다. 순수했던 캔디 캐릭터가 꽃뱀형으로 진화할 정도로 강남을 향한 열망이 간절해졌다.

재미있는 것은 강남을 상징하는 지명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1990년대의 복고 콘텐츠였던 <건축학개론>과 <압구정 날라리>에서 강남을 상징하는 곳이 압구정동이었다면, <청담동 앨리스>에서는 청담동으로 변했다.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히트한 후에 서양 취재진들이 “이곳이 바로 강남”이라며 강남역 부근을 취재하자 한국의 젊은이들은 조용히 웃었다. ‘진짜 강남은 청담동인데’라고 말이다. 그야말로 천당 아래 청담이다. 청담동이 ‘강남 오브 더 강남’, 대한민국의 최정점으로 우뚝 섰다.

드라마 마지막회의 한 장면. 남녀 주인공이 청담동 아파트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 SBS 제공
잔혹했던 말죽거리와 신사동 그 사람

널리 알려진 얘기처럼 강남 지역은 논밭이었다. 주로 번화한 서울 강북 시장에 과일과 채소를 대는 역할을 했다. 당시 강남의 농산물을 받아서 팔아준 곳은 청량리·동대문 일대 시장이었다. 그런데 강남이 승천하는 동안 이 지역은 제자리에 머물러 요즘에서야 재개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개발 시대에 필자의 집은 청량리 시장에서 농산물을 사먹는 입장이었는데, 사먹을 것이 아니라 강남 논밭에서 직접 생산하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논밭이 금싸라기가 된 것은 제3한강교와 경부고속도로가 생기고 난 후였다. 이때 서울은 인구 과밀이었기 때문에 도시 확장이 필요했고, 정권 입장에서는 개발 투기를 이용해 정치자금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강북을 재개발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지만 무주공산인 강남은 ‘줄긋고 매립하고 건물 올리면’ 끝이었다.

당시의 부동산 신화를 상징하는 이름이 바로 말죽거리이다. 말죽거리는 양재역 부근인데, 인조가 피난길에 말 위에서 팥죽을 먹은 곳이라는 이야기부터, 지명 유래에 대한 몇 가지 설이 교차한다.

말죽거리의 땅값은 대략 수백 배에서 천 배 사이 정도 올랐다고 한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당시 강남의 땅값이 오른다는 말에 말죽거리로 이사 온 어느 집안의 아들 이야기이다. 강남이 사교육 1번지가 된 것은 나중 일이고 그때만 해도 폭력이 난무하는 변두리 학교 분위기였다고 한다. 영화는 그 시절의 잔혹했던 학교 분위기를 그리고 있다.

(위)싸이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아래) 영화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압구정 오렌지’가 청담동으로 이사한 까닭

이런 혼란기를 거쳐 강남 아파트를 부의 상징으로 결정지은 것은 1970년대 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등장이었다. 이때부터 강남은 완연한 부의 제국으로 자리 잡았고, 졸부들이 넘쳐나는 향락의 땅이 되었다.

그 향락의 분위기를 타고 테헤란로는 이른바 여관 단지라 불렸고, 향락가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서진 룸살롱 조폭 살인 사건이 벌어졌으며, 김수희가 부른 <멍에>가 강남 유흥업소 종사자들의 애창곡으로 떠올랐다.

당시의 강남 유흥 문화를 ‘영동 문화’라고 하는데, 주현미가 노래한 <비 내리는 영동교>와 <신사동 그 사람>을 통해 영동 문화를 종합했다. 잔혹한 말죽거리에서 향락의 영동 문화에 이르는 대서사시를 표현한 작품으로는 드라마 <자이언트>를 들 수 있겠다.

성인의 향락을 대표했던 강남이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은 1990년대 압구정 오렌지족이 등장했을 때부터다. 오렌지족은 소비문화를 추종하며 돈을 마구 써대는 ‘졸부의 아이들’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이들은 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를 흉내 내려는 강북 젊은이들의 몸부림은 ‘낑깡족’ ‘감귤족’ 등으로 희화화되었는데, 이들이 바로 싸이 <강남스타일>의 선구이며 유재석 <압구정 날라리>의 실체라 하겠다. <건축학개론>은 당시 압구정동에 진입하려는 어느 여대생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시집과 영화가 등장했고, <압구정동: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라는 문화 연구서가 발간되었다. 국민의 간담을 서늘케 한 지존파 사건이 터졌는데, 당시 그들은 ‘압구정동의 오렌지족을 다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문제는 낑깡족이었다. 부자들 노는 데에 강북민이 끼어들어 너도나도 ‘오빤 강남 스타일’을 외치자 부자들은 불편해졌다. 그들은 점점 대중 유흥가처럼 변해가는 압구정동을 탈출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청담동이다. 청담동에는 서민이 따라붙을 수 없었다. 대중교통이 거의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담동으로 피신할 때쯤 되면 이미 강남 부자들은 졸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돈과 함께 교양으로 중무장했다. 압구정동 오렌지족 시절만 해도 돈만 많았을 뿐이지 화려하게 꾸미고 “야, 타!” 하고 다니는 스타일은 천박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이들은 ‘우아미’를 갖추고, 선진 문화를 향유하는 귀족이 되었다. 서민이 절대로 넘볼 수 없는 성채를 완성한 것이다. 그래서 <청담동 앨리스>이다. 청담동에 진입하는 것이 젊은이들에게 절체절명의 목표가 되어버린 세상. 그 수단이 오직 ‘돈 많은 남자 물어 결혼하는 것’밖에 없는 세상.

청담동 며느리를 염원하는 사람들에게 업계는 ‘청담동 며느리룩’이라는 스타일을 팔았다. 와이스타는 청담동 며느리의 조건으로 출중한 외모와 지적 조건을 꼽았다. 지적 조건이야 어쩔 수 없지만 출중한 외모만이라도 갖추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청담동 일대에는 외모 관리 산업이 번창했다. 외모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잊게 해주는 약물이 프로포폴이었는데, 이것이 마약류로 지정됨에 따라 최근에는 강남발 프로포폴 단속 광풍이 예고되고 있다.

청담동은 한국의 자본주의가 이제 귀족의 등장, 즉 ‘신(新)신분 사회’의 단계까지 발전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고 했다. 가난이 죄, 즉 서민은 죄인이라는 얘기이다. 그래서 서민은 청담동을 넘볼 수 없다. 이제 청담은 천당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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