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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의 시대’, 회사도 아내도 못 믿는다

기술 진화로 주체·대상 달라져

엄민우 기자·김미림 인턴기자 ㅣ mw@sisapress.com | 승인 2013.02.19(Tue) 09: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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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 아무개씨는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회사로부터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계정을 모두 써서 제출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김씨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SNS 계정을 왜 써내라는 것이냐”라고 따지자, 상사는 “회사 일에 협조 안 할 거면 앞으로 회사 MT나 워크숍도 따라가지 마라”라며 되레 큰소리를 쳤다. 감시의 형태가 점차 진화하면서 이제는 그 누구도 그 대상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기술의 발달이 감시의 진화를 촉진했다. SNS는 소통의 창임과 동시에 감시의 창이 된다. 우리는 인터넷에 무심코 올린 글이 나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감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차량용 블랙박스는 사고 현장의 ‘목격자’임과 동시에 불특정 다수의 모습을 기록하는 ‘감시자’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SNS에 올린 글 탓에 회사 쫓겨난 사례도

눈에 띄는 변화는 감시의 주체와 그 대상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감시의 주체는 국가 권력이었다. 그 대상 역시 정치적 활동을 하는 일부 사회적 인물에 국한되어 있었다. 평범하게 내 할 일만 하면서 직장에 다니며 살면 감시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평범한 직장인도 회사로부터 감시의 대상이 된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이마트 직원 사찰 논란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당시 이마트의 직원 사찰 관련 자료를 보면 신입직원이 인터넷 취업 카페에 올린 글의 화면을 그대로 캡처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직원들이 올린 글은 주로 ‘앞으로 여기서 힘든 점들을 공유하자’ ‘부서를 옮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 등 평범한 수준의 글들이었다. 해당 글을 올린 직원 중 한 명은 글을 올린 지 4개월이 지나 퇴사하게 되었다. 이 직원이 퇴사를 하며 올린 글에는 ‘실장에게 욕을 먹고 인격 모독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글 역시 캡처되어 보고 대상으로 삼아졌다.

대기업에 다니는 4년차 직장인 최지은씨(가명)는 회사 사람들과는 페이스북 친구를 맺지 않는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로 털어놓는데, 그중에는 회사에서의 애로사항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큰 불편함은 없지만 친한 동기들과도 이야기를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회사의 감시 대상이 되느니 차라리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최씨가 이토록 몸을 사리는 것이 기우는 아니다. 실제로 SNS에 올린 글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난 사례도 있다. 지난해 오 아무개씨는 회사측으로부터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그 결과 권고사직 결정이 내려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놀라운 것은 그 이유였다.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회사 동료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며 조직 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아예 대놓고 인터넷에 회사 관련 내용을 올리지 말 것을 주문한 기업도 있다. 최근 신입사원들을 뽑은 한 기업은 합격자들에게 “취업 커뮤니티에 회사와 관련한 내용을 올리지 마라. 올리더라도 사측에서 검색이 가능하게끔 개인 블로그에 올려라”라고 엄포를 놓았다.

한 기업은 직원들에게 희한한 주문을 했다. 회사 경영 진단을 한다는 명목으로 직원들의 정보를 수집하려 하니 협조하라는 것이었다. 그 내용에는 가족들의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신용 정보 등 사생활을 침해할 만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직원들이 법적 근거를 들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자 회사측은 수집한 정보를 자체적으로 삭제했다고 통보했다.

기업들은 기술 진보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많아져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이 가장 신경 쓰는 문제가 보안인데, SNS나 스마트폰으로 회사 정보가 쉽게 새나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SNS는 그 파급력이 커서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문제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서 SNS를 아예 하지 않는다. 자꾸 문제가 되니까 한때 열심히 활동하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이제는 활동이 뜸하지 않나”라고 전했다.

일반인들은 이제 감시의 객체를 넘어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감시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현상은 차량에 설치하는 ‘블랙박스’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점이다. 차량용 블랙박스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2012년 10대 히트 상품 중 4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지난해 팔린 블랙박스는 100만대로 전년에 비해 50%가량 증가했다. 현재 누적 판매량은 약 2백만대로, 자동차 전체 등록 대수의 약 10% 수준이다. 자동차 10대를 지나치면 한 번은 영상에 자신의 모습이 찍힐 수 있는 것이다.

블랙박스 시장이 호황이다 보니 블랙박스 영상 거래도 활발하다. 기자는 직접 국내 최대 블랙박스 영상 거래 업체 사이트에 접속해보았다. 각 지역별로 수많은 블랙박스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가격도 5만원에서 100만원 이상까지 다양했다. 사고 목격자를 찾는 이들과 글과 영상을 팔려는 자들이 얽혀 하나의 시장이 이루어져 있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욕설 유도해 녹음까지

블랙박스는 각종 사고와 범죄 현장의 목격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골목에 서 있는 자동차 한 대 한 대가 모두 CCTV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말은 차량 소유자가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하면 나의 동선과 애인과의 은밀한 행동도 마음대로 보고 인터넷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인터넷에는 이러한 영상이 여과 없이 그대로 올라오고 있다. 차량용 블랙박스 커뮤니티에는 ‘젊은 것들의 애정 행각’이라는 제목과 함께 블랙박스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한 커플이 길을 걷다 서로 끌어안고 애정 표현을 하다가 다시 길을 가는 모습이 세워져 있던 자동차 블랙박스에 그대로 찍혔고, 이를 차 주인이 인터넷에 올렸다. 해당 영상을 올린 글쓴이는 “주차 감시 중에 기록된 영상인데 보면서 웃기더군요. 이 영상 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블랙박스로도 에로물 제작이 가능하겠군요”라는 영상 설명을 달았다. 해당 영상에는 ‘여자의 하체가 튼실하다’ ‘다음부터는 블랙박스의 각도를 조금 더 높여주세요’와 같은 댓글들이 달렸다.

블랙박스 외에도 녹음기, 몰래카메라 등 감시 설비들이 일반인들에게 팔려나간다. 취재진은 서울 용산전자상가를 찾아 개인이 구매할 수 있는 녹음기 및 몰래카메라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볼펜 모양의 카메라부터 USB처럼 생긴 녹음기까지 다양했다. 일반 사람들도 이러한 장비를 구입하는지 채 묻기도 전에 한 손님이 들어왔다.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아내가 자꾸 내가 때리지도 않았는데 때렸다고 하거나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우기는 등 자꾸 거짓말을 한다. 지금 이혼 신청을 해놓은 상태인데 증거를 모으기 좋은 녹음기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점원은 익숙한 솜씨로 “이혼 사유 증거 제출용으로는 요즘 특수 카메라를 많이 찾는다”며 특정 제품을 권했다.

개인 간 감시는 이처럼 가까운 사이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무촌’이라는 부부조차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상황이다. 법무법인에서 증거 수집을 담당하는 유규진 사무장은 “녹음 자료가 법정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요즘에는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도 녹음이 생활화되었다. 심지어 이혼을 하고 싶어 일부러 시어머니나 남편에게 욕설을 유도해 녹음을 해오는 황당한 일도 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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