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전략은 매번 적중했다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3.02.1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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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미사일 개발과 도발사가 말해주는 한반도 현주소

《북한은 소형 핵탄두를 수십 기 보유한다.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해 사거리 3백km의 중거리 미사일 등 다수의 미사일은 실전 배치되어 있다. 북한은 이를 발판으로 한국에 ‘대규모’ 지원을 요구한다. 요구액은 천문학적이다. 내부의 거센 논란 끝에 한국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한다.》

10년 이내에 가시화될 수도 있는 한반도 상황이다. 빠르면 2016년쯤에 나타날 수 있다.

한국 정부, 한국 국민으로서는 상상하기 싫은 장면이지만 미구에 닥칠 현실이다. ‘위협-도발-협상-보상’이라는 정석(定石)이 이번에도 예외가 될 수 없는 탓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도발 그리고 그 이후의 전개 과정을 반추하면 여지없이 들어맞게 되어 있다. 북핵 약사(43쪽 표 참조)가 말해주듯이 같은 패턴의 반복일 것이 틀림없다.

2월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군인과 주민들이 ‘군민연환대회’를 열어 제3차 핵실험의 성공을 자축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처럼 답답한 처지에 이른 것과 관련해 좌파 정권 10년의 탓만 할 것이 아니다. 그 10년간 북한의 ‘오만’이 극대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전, 이미 북핵의 첫 단추는 잘못 끼워졌다. 1991년 12월31일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래 북한을 ‘잘 다독거리면’ 된다는 오판이 오늘의 비극을 낳았다. 우리 식의 ‘낭만’에 도취한 어떤 대통령은 ‘머지않아 통일이 될 것 같다’는 환상에 빠질 정도였다. 3백만명이 넘는 주민을 굶어 죽게 만들면서도 버티는 북한의 특수한 체제를 서방 세계의 안목으로 재단하려 한 것이 패착의 커다란 요인이었다.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를 탓할 것도 없이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 자체를 일축한 DJ의 햇볕정책 등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자금 지원과 시간 벌기를 도운 꼴이 되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그들 참모진의 북핵 관련 언급은 북한을 두둔했다는 느낌마저 갖게 한다.

딱 한 차례, 북한의 핵 야욕 싹을 자를 기회가 있었으나 한국측의 주저와 저지로 사라졌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고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하자 미국은 F-117 스텔스 폭격기를 동원해 북한 핵시설이 밀집한 영변 일대에 대한 정밀 폭격을 계획했다. 그러나 작전 개시 직전, 확전을 우려한 한국측의 반대로 무위에 그쳤다. 결국은 한국이 빠진 채 북·미 제네바 협정이 체결되었고, 미국이 북한의 전력난 해소를 위해 경수로 2기를 건설해주는 것으로 낙착되었다. 건설비는 한국 몫이었다. 북한의 벼랑 끝 전략이 먹혀든 것이다. 위기를 고조시킬수록 얻는 게 커진다는 생생한 경험을 체득한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공식화하면서 한국을 뒷전에서 밑돈이나 대는 존재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위협-도발-협상-보상’이 비극 초래

한국과 미국의 카드 패를 확실히 읽은 북한의 몽니 전략은 이후 거듭되었고, 거의가 북한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1993년 당시는 천연 우라늄의 1차 가공품인 ‘엘로우 케이크’ 생산 정도가 확인되고 핵시설이라고 해봤자 빤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핵시설과 이미 생산되어 분산 배치된 상당수의 핵무기를 정밀 타격하기는 불가능하다. 전면전을 각오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도발을 통해 긴장을 고조시키고, 긴장 완화를 명분으로 한 협상을 통해 나름으로 국제적 위상을 ‘높이면서’ 한국과 미국의 대규모 무상 지원을 받아내는 수법은 매번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없다던 고농축 우라늄을 보란 듯이 공개하고, 밀봉했던 폐연료봉을 꺼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등의 사건을 만들고, 그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벌여 거액의 돈과 식량을 받아내는 패턴은 항상 마찬가지였다.

상대에게 받은 돈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시키고, 그를 발판으로 더 큰 도발을 감행해 지원 액수를 늘리면서 핵·미사일 개발 시간을 확보하는 등 이래저래 ‘남는 장사’를 해왔다. 한국과 미국은 이를 대북 지원이라고 말하지만 북한은 ‘원조받는 것’이 아닌 ‘상납받는 것’으로 포장하고 있다. 장기간의 협상이 진행될 때 ‘당신네가 아쉬워 불러냈으니 모든 비용을 당연히 당신네가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자세도 그러한 발상의 단면이다. 내부적으로는 장군님의 강성대국 건설 전략이 먹혀듦을 과시하면서 충성을 이끌어낸다.

테러 지원국 낙인 어쩌니 하는 것에 북한은 개의치 않는다. 국가 이미지 운운하는 것도 서방 세계의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되레 미국의 제국주의에 당당히 맞서 주체성을 지키는 존재로 자임하고, 그것이 일정 부분 먹혀든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 미국까지 희롱하면서 이처럼 항상 ‘남는 장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때문에 가능했음은 물론이다. 대다수 나라가 북한을 ‘불량 국가’라고 매도할지 몰라도 중국으로서는 아주 기특하고 요긴한 맹방이다. 그런 북한이 무너지는 것을 방관할 리 없고, 든든한 후견인이 있기 때문에라도 북한은 무너지지 않을 터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틀 뒤인 2월14일 국방부가 실전 배치했다며 공개한 해성-3 순항미사일. 214급 잠수함(1800t)에서 발사된 직후의 장면이다. ⓒ 국방부 사진자료
단호한 원칙과 대응 없이는 악순환 거듭

유엔 안보리의 규탄 결의가 나오고 미국의 제재가 본격화될 때 중국의 코멘트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냉정과 합의’이다. 냉정은 한국과 미국 등 서방 세계에 대해 참으라는 쐐기이고, 합의는 북한에 더 많은 지원을 해주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이번 핵실험과 관련해 중국은 자제 권고를 무시한 북한에 대해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뭔가 다르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없지는 않으나 ‘북한 감싸기’라는 대전제가 달라지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2000년대 중반 중국의 만류를 무릅쓰고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은 중국의 옹호 수준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도발 수위를 높이려 했고, 종국에는 원자바오 총리가 ‘김정일 장군님’을 달래려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유엔 안보리의 경고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에 대해 유엔과 미국 등 국제 사회가 정색하며 나서고 있기는 하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공을 다짐했고, 미국 하원은 북한을 테러국으로 재지정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부산하다.

한국은 새 순항미사일 ‘해성’을 공개하고 북핵 시설을 선제 타격할 수 있는 ‘킬 체인’의 조기 강화책을 내놓으며 북한을 압박하려고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코웃음을 친다. 오히려 적대적으로 나오면 제2, 제3의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한국과 미국, 유엔이 꺼내들 카드를 꿰고 있기에 자신만만하다. 결국에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실제 미국 일각에서는 ‘사실상’ 핵보유국이라는 전제에서 대응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북한 핵 수준에 대해 ‘아직은’ 운운하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다. 이미 북핵 기술 수준은 주변을 초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설령 부족하더라도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북핵 게임’은 일단 북한의 페이스로 움직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소련이 핵 없어 무너졌나”라는 지적처럼 ‘북한의 자멸(自滅)’이 유일한 기대이지만 난망이다. 수백만 명이 아사해도 권력 세습이 가능한 북한의 특수성과 함께 북한을 감싸고 체제를 존속시키려는 중국의 기본이 바뀔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개인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고 해서 달라질 북한도 아니다. 도발을 해도 이렇다 할 대응을 못 하면서 ‘단호한 응징’이라는 어정쩡한 구호로 일관한, 원칙을 잃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박당선인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기본을 원칙 준수에 둬야 하는 소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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