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향한 손흥민의 질주
  • 서호정│스포츠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2.1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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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폭풍 몰고 한국 축구 희망봉 될까

1992년 7월8일생. 아직 만 20세에 불과한 한국 청년의 활약에 유럽 3대 리그 중 하나인 독일 분데스리가가 들썩이고 있다. 주인공은 함부르크 SV의 공격수 손흥민. 호들갑과는 거리가 먼 독일 언론이 ‘손세이션(손+센세이션)’ ‘슈퍼탤런트’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례적으로 이 어린 선수의 활약을 눈여겨보고 있다. 명실상부하게 함부르크의 에이스로 올라선 손흥민은 이제 유럽 전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 AP 연합
무명 소년에서 ‘200억원 가치’ 유망주로

지난 2월10일, 손흥민은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챔피언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홀로 2골을 터뜨리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도르트문트는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었을 정도로 유럽에서 가장 잘나가는 클럽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미 전반기에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2골을 넣으며 챔피언의 정신을 빼놓았던 손흥민은 눈부신 활약상을 보이며 확실한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독일 최고 권위의 축구 전문지인 <키커(Kicker)>는 손흥민을 26라운드 최고의 선수로 선정했다. 세계적인 통신사인 AP는 손흥민의 도르트문트전 활약을 지난 한 주간 벌어진 축구계 최고의 장면 10선으로 꼽았다. 손흥민을 중심으로 공격진을 재편하며 올 시즌을 맞은 함부르크는 후반기를 시작할 때 12위였던 성적을 7위까지 끌어올렸다.

손흥민은 불과 4년 전만 해도 그 성장 과정이나 기량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베일에 싸인 선수였다. 2009년 나이지리아 U-17 월드컵에서 3골을 넣으며 주목받기 전까지 그의 이름을 아는 축구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독특한 성장 배경 때문이다.

손흥민은 만 15세까지 단 한 번도 선수로 등록된 적이 없었다. 고향인 춘천에서 형과 함께 아버지로부터 개인 훈련을 받으며 성장했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씨는 1980년대 말 프로축구 현대에 몸담았던 선수 출신이다. 하지만 독특한 성격으로 인해 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며 무단이탈했고, 그대로 축구계를 떠났다. 그런 그가 십수 년 동안 자기만의 방식으로 키워낸 선수가 바로 아들 손흥민이다. 어설픈 팀 훈련보다는 확실한 1 대 1 훈련이 낫다는 지론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손흥민은 한국 선수가 갖기 힘든 기술과 슈팅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만 15세가 되던 해 원주 육관중학교 축구부에 입단했고, 이어 곧바로 두각을 나타내며 동북고로 진학했다. U-17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유럽 스카우터의 눈길을 사로잡은 손흥민은 함부르크 유스팀에 입단했고, 1년 만에 성인팀으로 올라갔다. 2010년 여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성인팀 훈련에 합류한 손흥민은 연습 경기에서 연일 골 행진을 이어갔고, 첼시와의 친선전에서도 골을 터뜨리며 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당시 함부르크 소속이던 네덜란드 출신의 명골잡이 뤼트 판 니스텔로이는 손흥민의 재능을 극찬하며 멘토를 자처했다. 성인팀에서 맞은 첫 시즌에는 부상으로, 두 번째 시즌에는 슬럼프로 각각 3골과 5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함부르크는 손흥민의 재능을 인정했고, 올 시즌을 앞두고 기존 공격수를 정리하며 20세에 불과한 아시아 공격수에게 팀의 최전방을 맡겼다.

팀의 전폭적 신뢰 속에 기회를 얻은 손흥민은 전반기 17경기에서 6골을 기록하며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후반기 들어 4경기를 치르는 동안 3골을 추가해, 분데스리가 득점 순위 9위에 올라 있다. 올 시즌 손흥민의 꾸준한 활약은 독일을 넘어 유럽 명문 클럽의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잉글랜드의 첼시·리버풀·토트넘이 경쟁적으로 손흥민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8백만 유로가량에서 시작된 이적료는 손흥민의 활약이 지속되자 현재 1천3백만 유로(약 2백억원)까지 오른 상태이다. 역대 한국인 선수 중 1천만 유로의 벽을 넘은 선수는 없다. 지난여름 스완지시티로 이적한 기성용이 8백만 유로를 기록한 것이 최고액이다. 손흥민에 대해 다른 클럽들의 러브콜이 계속되자 함부르크는 기존 계약이 1년 6개월이나 남았음에도 일찌감치 재계약을 추진 중이다.

세계적인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연상시키는 빠른 돌파와 호쾌한 슈팅이 무기인 손흥민은 한국 선수로는 역대 네 번째로 유럽 1부 리그에서 10골 이상을 기록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손흥민에 앞서 차범근, 설기현, 박주영이 유럽 무대에서 10골 이상을 기록한 바 있다.

특히 관심을 모으는 것은 분데스리가에서 전설로 남아 있는 대선배 차범근 현 SBS 축구해설위원을 넘어서느냐 여부이다. 1978년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10년간 유럽 무대를 호령했던 차범근 위원은 1985-1986시즌에 17골을 넣으며 리그 득점 4위까지 올랐었다. 분데스리가 통산 98골은 당시 외국인 선수 최다 골 기록이었고, 현재에도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일찌감치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손흥민에 대해 차범근 위원은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손흥민은 나를 뛰어넘을지도 모른다”라며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대표팀 최전방도 손흥민 중심으로?

현재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손흥민이지만, 대표팀에서는 확고부동한 주전이 아니다. 지난 2월6일 영국 런던에서 벌어진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은 손흥민이 최강희 감독으로부터 부여받은 A매치 두 번째 선발 출전이었다.

전반 초반 특유의 날카로운 중거리슛을 날렸지만 손흥민의 전반적인 플레이는 뛰어나지 못했다. 함부르크의 손흥민과 대표팀의 손흥민이 다른 전술적 역할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함부르크에서 손흥민은 투톱 중 아래에 배치되어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공격에 가담한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좌우 측면에 선다. 크로아티아전처럼 상대가 전력에서 우리보다 앞서는 팀을 만나면 측면 공격수는 수비 부담이 커지고 고립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소속팀과 달리 대표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는 탓에 손흥민의 활약은 아직 돋보이지 않는다.

최강희 감독은 대표팀 최전방에 이동국, 박주영, 김신욱을 중용해왔다. 손흥민의 기량은 인정하지만 상대 선수와 경합할 수 있는 전형적인 원톱을 선호하는 탓에 손흥민은 측면으로 밀려난 상태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현재 나타나는 성과와 컨디션에서 최고인 손흥민을 위한 기회도 주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3월에 열리는 카타르와의 월드컵 최종 예선 5차전을 앞둔 최강희 감독이 대대적인 변화를 줄 가능성은 작다. 그러나 현 상황이라면 대표팀 내에서 손흥민의 비중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한국 축구는 세계적인 수준의 공격수를 보유한 채 월드컵에 도전한 적이 없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 차범근이 합류했지만, 당시 그는 전성기를 지난 시점이었다. 황선홍, 안정환, 박주영이 월드컵 본선에서 골을 터뜨리며 결정력을 증명했지만 상대 수비를 휘젓고 다닐 정도로 위협적이지 않았다. 때문에 상대보다 강한 체력, 전방에서 시작되는 강한 압박, 세트피스 전술 등으로 승부를 내야 했다. 유럽에서 성공한 선수의 대부분이 미드필더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손흥민의 등장은 드디어 한국 축구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공격수를 갖고 전방에서부터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축구를 펼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브라질월드컵까지 1년 4개월, 손흥민은 한국 축구의 새로운 희망봉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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