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 “몽니 한번 제대로 부려봐?”
  • 김성곤│이데일리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2.27 09:5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계파 의원 13명 개헌 모임으로 ‘똘똘’…박근혜 흔들기 나서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친이계’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인가. 결론부터 성급하게 말하자면, ‘아니오’가 정답이다. 지난 18대 대선 이후 친이계의 향후 행보는 늘 여야 정치권의 뜨거운 관심거리였다. 여의도 호사가들은 MB 정부 당시 ‘친박계’가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하면서 MB의 국정 수행에 브레이크를 걸었던 것처럼, 친이계 역시 향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사사건건 몽니를 부리지 않겠느냐는 성급한 관측까지 내놓고 있다.

지난해 4월 총선 때부터 박대통령이 여당을 장악하면서, 총선과 대선의 연이은 승리에 따른 친이계의 존재감 부각은 사실 쉽지 않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막강한 세를 과시했던 친이계의 흥망성쇠는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 힘입어 이른바 ‘탄돌이’로 불렸던 열린우리당 내 ‘친노’ 세력들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거치며 폐족(廢族)으로 몰락한 것과 묘하게 닮아 있다.

하지만 MB 정부 출범 초만 하더라도 폐족으로 불렸던 친노 세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6·2 지방선거를 거치며 부활의 기지개를 켰고, 지난해 총선·대선에서는 야권의 주류 세력으로 다시 우뚝 섰다. 친이계 역시 MB의 퇴임 이후 행보,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첫해 국정 운영 성적표, 내년 지방선거 등을 전후해서 여야의 정치 지형 변화 여부 등에 따라 부활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문제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접점 찾기이다.

친이계 좌장 격인 이재오 의원(왼쪽)과 박근혜 대통령은 서로에 대한 불신의 폭이 매우 깊다. 사진은 지난 2006년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당 대표 시절 모습. ⓒ 시사저널 이종현
‘분권형 개헌 추진모임’,  친이계 새 둥지로

이 역할에 친이계의 좌장 격인 이재오 의원이 나섰다. 명분은 ‘분권형’ 개헌이다. 이의원은 MB 정부 시절 개헌 전도사를 자처했다. 특히 지난해 6월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 대통령 임기 단축 등을 골자로 한 파격적인 분권형 개헌안을 들고 나왔다. 대선 이후에는 분권형 개헌 추진모임을 주도하면서 전국을 돌며 바람몰이에 나서고 있다. 이의원은 지난 2월7일 자신의 트위터에도 글을 올려 조속한 개헌 논의를 촉구했다. 그는 “여야 대선 후보들이 당선되면 개헌에 대한 논의를 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19대 국회에서 개헌을 꼭 해야 한다”며 “새 정부의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임기 초반에 논의와 개헌을 끝내는 것이 옳다. 2월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해 금년 상반기에 개헌을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현재 의석수는 1백53석이다. 이 가운데 친이계 또는 친이계에 가까운 의원 수는 20명이 채 안 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15명 정도로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명단을 정확히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런 고민은 지난 2월19일 말끔히 해결되었다. 이날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개헌 추진 여야 국회의원 모임’에 참석한 37명의 현역 의원 중 여당 의원으로 참가한 14명이 대부분 친이계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서 발기인으로 참여한 의원들을 보면 여당 간사인 이의원을 비롯해 정몽준·정의화·정갑윤·정병국·김정훈·이군현·주호영·권성동·김영우·김용태·안효대·신성범·조해진 의원 등 14명이다. 정갑윤 의원만 친박 성향으로 분류될 뿐 나머지 13명은 모두 친이계 일색이다.

개헌은 한국 정치권의 해묵은 과제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산물인 현행 헌법은 이미 그 수명을 다했다는 판단을 받은 지 오래다. 개헌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공감대는 작지 않다. 모노리서치가 지난 2월13일 실시한 개헌 관련 국민 여론조사에서 82.3%라는 압도적 다수가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기도 했다. 박대통령 역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전제로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검토를 밝혔다. 다만 박대통령으로서는 임기 첫해부터 개헌 논의가 본격화되는 것은 부담이다. 개헌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하면 박대통령은 자칫 국정 주도권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1년 2월6일 이재오 당시 특임장관이 친이계 모임인 ‘함께 내일로’의 개헌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친박 했던대로”…‘박근혜 정부 비주류’ 선언

친이계의 구심점으로 여겨지는 이의원과 박대통령의 악연은 끈질기다. 이의원은 지난 2004년 17대 총선 이후 박대통령을 향해 “독재자의 딸”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역대 경선 사상 가장 치열했던 지난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당시 이의원이 친박계의 대선 비협조에 “좌시하지 않겠다”며 반발하자 박대통령은 그 유명한 “오만의 극치”라는 어록을 남겼다. 이의원은 5년 뒤인 지난해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미온적인 박대통령을 겨냥해 “오만의 극치”라는 말을 되갚아주었다. 대선 전후로도 양측의 갈등은 지속되었다. 이의원은 지난해 8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박대통령이 과거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유신 정권의 장본인”이라며 맹공을 가하기도 했다. 이의원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야당과 함께 개헌 모임을 주도하고 나선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의원이 사실상 당내 비주류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향후 5년은 험난해 보인다. 경제 민주화 추진과 보편적 복지 확대, 가계 부채·부동산 문제 해결 등 대선 과정에서 약속했던 공약은 국내외적인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난제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친이계가 개헌을 명분으로 ‘박근혜 흔들기’를 지속한다면 박대통령으로서는 악몽이 될 수밖에 없다. 친이계가 똘똘 뭉쳐서 몽니를 부리면 새누리당은 과반수 확보도 장담하기 어렵게 된다. 실제 친이계는 박대통령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과 서운함을 가지고 있다. MB 정부 시절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도 국정 장악에 실패한 이유가 당시 ‘여의도 대통령’으로 불렸던 박대통령의 반발 때문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친이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이런 관측에 대해 조심스러운 분위기이다. 한 의원은 “역대 사례를 보면 개헌을 임기 초반에 하지 않으면 결국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국민은 물론 여야 정치권이 개헌에 공감하는 만큼 서둘러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순수한 의도”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친이계의 한 재선 의원은 “어차피 우리는 당내 비주류이다. 지난 MB 정부에서 친박계가 갔던 길을 똑같이 걸을 수밖에 없다”라며 ‘여당 속의 야당’ 역할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래저래 ‘박근혜호’ 앞에는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