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국주의 옷 입은 ‘전광석화 작전’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3.02.2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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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말리 이슬람 반군에 전격 공습 단행

1월11일 프랑스는 말리 북부에 거점을 두고 있는 이슬람 반군을 향해 공습을 개시했다. 북아프리카에 테러 국가의 등장을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프랑스의 군사적 행동에 세계는 놀랐다. 막대한 비용 부담이 따르는 해외 파병을 결정한 프랑스는 유로 위기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세르발(Serval: ‘아프리카 살쾡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이라는 작전명 아래 이루어진 공습은 이슬람 반군의 진격을 막았고, 말리 정부군이 곤나 지역을 탈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프랑스의 군사 개입은 국제법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1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 제2071호를 통과시켜 아프리카연합(AU)과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가 주도하는 ‘말리 지원군’ 구성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차드에 배치된 전투기는 말리 수도 바마코 인근 지역에 위치한 이슬람 반군의 거점을 공격했다. 이 세력은 알카에다와 연계된 조직으로 지난해 3월부터 말리의 북부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지난 2월2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말리를 방문해 국가 재건을 위한 원조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 EPA연합
“말리 사태, 프랑스 이해관계에 부합”

이번 군사 개입을 ‘신(新)제국주의’로 보는 시각을 의식한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는 제5 공화국 시절 그랬던 것처럼 아프리카에서 경찰 역할을 할 의도가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말리 내전에 개입하기 전만 해도 프랑스는 아프리카 지역 군에 병참 지원 이상의 조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변해왔다.

프랑스 정부는 말리 내전에 개입한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우선 말리 정부군이 자체 방어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을 꼽는다. 그리고 안보리 결정대로 지역 아프리카 연합군을 창설할 경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지적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는 말리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합법으로 유엔의 결의안을 행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랑 바비우스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슬람 세력이 말리 수도에 접근하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공습 작전을 위해서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정부도 프랑스 전투기의 영공 통과를 허용했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전임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아프리카에서 제국주의적인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약속을 지킨 프랑스 대통령은 드물다. 니콜라스 사르코지 전 대통령도 옛 아프리카 식민지였던 코트디부아르에 대해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서도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는 로랑 그바그보 전 대통령을 강제로 물러나게 하기 위해 프랑스군을 파병한 적이 있다.

약 3주간의 전투를 거쳐 이슬람 반군을 말리 북부 지역에서 몰아낸 프랑스군을 축하하기 위해 2월2일 올랑드 대통령이 말리를 방문했다. 국방장관과 외무장관, 개발장관 등이 수행했는데, 특히 파스칼 캉팽 개발장관이 수행한 것은 말리의 장기적인 재건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프랑스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말리 내전에 개입했다고 보기에는 의구심을 자아낼 만한 대목이었다.

세네갈의 소설가인 부마카르 보리스 디오프는 “말리 사태는 올랑드 대통령의 이미지를 상승시키고 프랑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기 위한 일”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올랑드 대통령의 말리 방문은 프랑스 국민들에게 군사적 개입은 리스크가 큰 조치였지만 결국 성공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리 국민들은 3천7백명의 병력이 동원된 프랑스의 군사적 개입을 환영했다. 지난해 말리 정부군이 이슬람 반군의 진격을 막지 못해 가오, 팀북투, 키달 등 세 도시를 알카에다의 수중에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참전이 종료될 때가 오면 불확실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게릴라 전투를 예상했을 때 이런 평화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흐르고 있다.

2월10일 말리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가오에서 이슬람 반군은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이틀에 걸친 전투 끝에 프랑스와 말리 정부군은 가오를 다시 장악했다. 일시적으로 되찾았지만, 가오의 상황이 불안정하다고 말리 정부는 보고 있다. 가오에서 벌어진 시가전은 프랑스 공군이 공습을 가해 이슬람 반군을 북 사하라 지역으로 쫓아냈다는 보도와는 달랐고, 군사적 충돌의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가디언은 ‘가오 현지의 말리 국민들이 이슬람 반군에 대해서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프가니스탄과는 사뭇 다르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의 군사 개입에 대해 현지인들이 보내는 지지는 거꾸로 이슬람 테러 단체들이 북부 말리에서 활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관망’하던 영국·독일, ‘지원’ 선회

1월 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말리에 대한 지상군 파견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C-17 수송기 두 대를 지원하며 “그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말리에서 프랑스의 승전 소식이 전해지면서 캐머런의 입장에도 다소 변화가 생겼다. 그는 “말리 사태에 영국이 병력을 보내게 된다면 수십 명 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90여 명의 영국군이 병참·정보·정찰 임무를 위해 말리에 투입되어 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2월3일 BBC와 가진 인터뷰에서 “서방 세계가 알카에다와 싸우는 것은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것과 같다. 이 싸움은 한 세대에 걸친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레어는 “말리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테러리스트와 싸우고 있는 프랑스를 지원하기 위해 영국도 병력을 보내는 것이 옳다. 캐머런 총리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지만 피할 경우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경고했다.

독일은 리비아 사태에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은 탓에 신뢰할 만한 동맹임을 프랑스에 증명해 보이려 애쓰는 중이다. 독일은 말리 사태에 군대를 파병하는 대신 병력 이동용 수송기 두 대를 제공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올해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지지도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는 ‘군사적 개입’이라는 리스크가 달갑지 않다. 하지만 EU(유럽연합)의 중요한 파트너 국가인 프랑스와의 관계를 감안해 네 대의 수송기, 두 대의 최신식 의료 비행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문제는 프랑스군이 말리에 얼마나 주둔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제대로 준비된 아프리카 연합군이 언제 작동할지이다. 군사 개입 기간에 대해서 파비우스 프랑스 외무장관은 “수 주 동안 주둔하겠지만 우선 공군력에 집중하고 지상 병력은 특수 부대 수백 명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의 군사 개입은 필요한 만큼 지속될 것”이라고 말해 장기 주둔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초기의 아프리카 연합군은 세네갈·니제르·부르키나파소·나이지리아·토고의 병력으로 이루어지는데, 적정한 병력 수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가 주도하고 영국과 독일이 지원하는 말리 사태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에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말리로 인해 얻는 것은 자원 확보와 정치인들의 국내 인기 상승이다. 어찌 되었든 과거 식민지를 팽창시키던 그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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