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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업신여기는 자가 무슨 짓을 못하랴”

연산군 ④ / 갑자사화 후 사면 교서 반포

심경호│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ㅣ 승인 2013.02.27(Wed) 11: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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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이 신하와 백성들에게 명령하거나 그들을 타이르기 위해 반포하는 글을 교서(敎書)라고 한다. 중국의 진시황이 천자의 명령을 조칙이라 한 이후에, 그 글을 조서·칙서라 하고, 제후 왕은 교서라 하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역대 국왕들이 교서를 내린 기록이 무척 많다.

그런데 연산군은 즉위년(1494년) 12월29일에 부왕(성종)을 위해 성복하고 의례를 마친 후 중외에 사령을 반포할 때 교서를 내린 이후로, 교서를 거의 내리지 않았다.

   
ⓒ 일러스트 유환영
<연산군일기>에 교서 내린 기록 고작 두 번

이듬해(1495년) 2월2일에 호조판서 홍귀달이 대간의 말을 따르고 언로를 열라고 청했는데, 그 서계에 이러한 대목이 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상께서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널리 살피시어 첫 정사가 소중하다는 것을 익히 생각하시고 특별히 대간의 청을 허락하여 위로해서 돌려보내시어 그들로 하여금 물러가서 더욱 자기 직무에 충실하게 하시고, 아울러 교서를 사방에 내리시어 유생의 죄받은 연유를 모두 알 수 있게 하신다면, 성상의 관용하시는 도량이 거의 이 한 가지 조치로써 여러 선행이 아울러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국왕이 교서를 사방에 내리는 것은 자신의 조처가 정당함을 선포하고 신민들의 양해를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연산군일기>에는 연산군의 교서가 실려 있지 않다.

물론 연산군이 교서를 아예 선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연산군은 즉위 원년 5월16일에 유서지보(諭書之寶)의 크기를 시명지보(施命之寶)에 의해 새로 제조하되, 은 바탕에 금을 올리라고 했다. 유서지보 글자는 유서에 사용했고, 시명지보 글자는 교명·교서·교지에 사용했다.

실제로 연산군 3년(1497년) 10월14일에 의정부는 능침 참배의 일과 사형수에 대한 속한 처결을 아뢰면서, “전번 교서에 보경당 수리가 끝나면 바로 처결하겠다고 하셨습니다”라고 환기시켰다. 이해 11월9일에도 판중추부사 이극균 등이 찰방의 피폐한 정황에 대해 논의할 때, “전일 받자온 교서 내에 ‘조잔한 각 역에 조역하는 정병을 두라’ 하셨다”라는 언급이 있다. 11월의 동지에는 낙뢰가 치는 기상 변고가 있자 교서를 내려 좋은 말을 구하였다. 이때 단성의 훈도 송헌동이 17조목을 상소했고, 그 하나에 “중국의 예를 따라 내시들에게 처첩 두는 것을 허락하지 마시옵소서”라고 하였다. 그달 24일에 연산군은 송헌동을 불러들여 힐문했다.

하지만 <연산군일기>를 보면 연산군의 재위 기간인 1494년부터 1506년 11월6일까지 8년 동안 교서를 내린 기록이 무척 적다. 연산군은 1476년 11월7일생이라 즉위할 때 19세였으니, 어려서 국정을 관장할 수 없었다고 할 수도 없다. 연산군은 구두로 승정원이나 환관에게 명령했으므로 전지(傳旨)와 전교(傳敎)의 사실만 <연산군일기>에 빈번하게 나온다.

교서 중에는 국왕이 직접 작성한 것이 드물다. 하지만 조선 국왕들의 시문을 모아둔 <열성어제>를 보면 국왕이 교서를 직접 짓기도 했다. <열성어제>는 연산군의 시문을 하나도 싣지 않았다. 따라서 연산군이 위의 교서들을 직접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글 잘하는 사람에게 짓게 했을 것이다.

연산군은 재위 10년(1504년) 7월18일에 행행(行幸; 임금이 대궐 밖으로 거동하는 것) 때 유생에게 반포할 교서를, 대제학 김감과 직제학 강혼 및 그 밖의 글 잘하는 자로 하여금 짓게 했다. 또, 재위 11년(1505년) 9월에 생모 윤씨를 제헌왕후로 존숭하면서 교서를 반포할 때 임사홍에게 교서를 짓게 하고 신은윤에게 쓰게 했다.

교서 대신 구두로 시시콜콜한 명령

그런데 <연산군일기>에 국왕이 반포한 교서라고 하여 그 내용이 전재되어 있는 것은 고작 두 개뿐이다. 연산군 6년(1500년) 10월10일, 선정을 베풀었다고 보고가 올라온 부령 부사 양윤원을 포상하게 하고, 다음과 같은 교서를 함경도 관찰사에게 내렸다.

 

도내의 부령 지방이 해마다 실농(失農)했고 금년이 더욱 심한데, 듣건대 부사 양윤원이 마음을 다해 구제하여 백성들이 소생하게 하였다기에 특별히 품계를 한 등급 올려주어 그 임무에 그대로 있게 하였노라. 경도 또한 곡진하게 조치하여 백성들이 유리하게 되는 한탄을 면하도록 하고 함경도 전역이 또한 흉년을 만났으니 아울러 구제하라.

 

매우 짧은 교서이다. 재위 11년(1505년) 1월21일에 연산군은 이른바 갑자사화 이후 ‘간흉’을 제거한 사실을 종묘와 사직 그리고 혜안전(생모 윤씨의 효사묘)에 아뢰고 인정전에서 백관의 하례를 받았다. 이때 반포한 사면 교서가 <연산군일기>에 온전하게 남아 있다. 앞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가 덕이 없이 큰 기업을 이어받아 오직 잘 감당하지 못할 것이 두려우매 밤낮으로 삼가 부지런하여 지극한 다스림에 이르기를 기약하였더니, 뜻밖에 방자한 간흉들이 조정에 늘어서서 앙화의 마음을 품어 널리 사사로운 당을 심고 임금을 업신여겨 억제하고자 하니, 이런 짓을 해내거늘 무슨 짓인들 해내지 못하랴!

다행히 하늘의 도움과 종묘사직의 신령에 힘입어, 간흉이 죄를 받고 조야가 생각을 고치매, 화란이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고, 국가가 위험해지려다가 다시 편안하여 종묘가 더욱 굳고 경명(대명) 다시 새로우니, 제사를 거행하여 종묘사직에 고하여야 하기에, 이달 21일 정미에 몸소 종친과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종묘사직·혜안전에 제사하고, 이에 대례가 끝남에 비상한 은택을 펴노라.

 

이 교서도 사면을 알리는 후반의 내용이 더 길다. 만년에 연산군은 채홍준사(採紅駿使)를 각 도에 보내어 아름다운 여자와 좋은 말을 찾아오게 했는데, 특히 나이 어린 여자를 찾아내는 자를 채청사(採靑使)라 하였다. 악공은 광희(廣熙)라 하고, 기녀는 운평(運平)이라 했다가 승격시켜 가흥청(假興淸)이라 하고 또 승격시켜 흥청이라 했으며, 운평의 뒤에 들어온 자는 속홍(續紅)이라 하였다. 원각사(圓覺寺)를 그 국(局)으로 삼았다. 늙은 나인이 자는 곳은 두탕호청사(杜蕩護淸司)라 하였다.

국왕이 각 도에 명령을 내리려면 교서를 반포해야 했을 터인데, 연산군이 채홍준사와 채청사를 파견하면서 교서를 반포했다는 기록이 없다. 명분이 없었으니 교서를 반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연산군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시는 잘 지었는지 몰라도, 국가의 장대한 계책은 세우지 못했다. 재위 10년(1504년) 3월9일에는 내관 임세무 등이 대내(궐내)의 고양이를 풀어 사옹원에서 쥐를 잡다가 고양이를 놓쳤다고 하여, 의금부에서 형장을 가해 심문하도록 전교했다. 우스운 일이다.

정치 강령과 구상을 교서로 반포하지 못하고 시시콜콜한 명령을 측근에게 구두로 지시한 국왕이 연산군이었던 것이다.  

참고 : 심경호 <국왕의 선물>, 책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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