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이식 여행’ 뒤 불편한 진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3.0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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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비윤리적 ‘강제 적출’에 이스라엘 등 제동

얼마 전 중국에서 장기 이식 수술을 받고 온 한 한국인 환자는 “중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장기 이식 수술에 관한 한 천국 같은 곳이었다. 한국에서는 5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적합한 장기 제공자가 나타났고,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 장기가 사형수나 양심수에게서 강제 적출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오싹해졌다”라고 말했다. 이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운이 없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수술 후유증으로 시달리다가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내에서 운이 좋기를 바랄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거액을 마련해 브로커를 따라 중국 등지로 간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장기 기증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도 않다.

지난 2월20일 방한한 제이콥 랍비 박사가 중국 내 강제 장기 적출 시스템을 조사해 그 해결책을 제시한 의 영문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장기이식센터 급증이 의미하는 것

중국 내 강제 장기 적출 사안의 심각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는 이스라엘 이식학회장이자 세계적인 흉부외과 의사인 제이콥 랍비(Jacob Lavee) 박사가 최근 방한해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강연했다. 2월22일 만난 그는 “2005년 심부전으로 1년 이상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가 심상치 않은 소식을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그는 심장 이식 수술 대기 명단 1순위였지만, 자신에게 맞는 심장 기증자를 찾는 데 지쳐 있었다. 그런 그가 의료보험 회사로부터 ‘심장 이식 수술 날짜가 잡혔으니 2주 이내에 중국에 들어가라’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 환자는 중국으로 건너가 예정된 날짜에 수술을 받았다. 그 환자 이야기를 듣고 놀란 나는 중국 장기 이식 실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스라엘 환자들이 신장 이식을 받기 위해 중국으로 간다는 사실은 동료 의사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고, 신장의 출처가 중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자신의 한쪽 신장을 파는 것으로 생각해 별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던 터였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사이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도 각지에 가서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궁핍한 인도인들에게서 신장 한쪽을 얻는 장기 매매 조직이 극성을 부렸고, 1993년 인도 정부는 외국인에 대한 장기 이식을 금지하는 법률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장기 매매 조직은 중국의 난닝·광저우·푸저우·쿤밍 등 도시를 중심으로 더욱 큰 판을 벌였다. 아마도 중국은 그들에게 기회의 땅이었을 것이다.

미국으로 망명한 전 톈진 무장경찰병원의 의사 왕궈치가 2001년 6월 미국 하원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증언한 내용 등을 통해 중국에서는 사형수를 비롯해 산 사람에게서 장기를 적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드러났다. 중국에서 사형수를 처형한 뒤에 장기를 적출하는 관행은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때부터 시형수들이 이식 장기의 주요 공급원이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이다. 처형된 사형수의 숫자는 완만하게 증가했다. 그런데 장기 이식 사례는 1999년부터 급속하게 증가했다. <차이나 데일리>의 보도에 따르면 2005년 중국 내에서 이루어진 장기 이식 건수가 2만건에 달했다. 1999년 약 1백50개였던 중국 내 장기이식센터는 2006년 약 6백개로 늘어났다. 장기이식센터가 급속히 증가했다는 것은 이식 가능한 장기가 엄청난 수량이었음을 뜻한다.

중국에는 공식적인 장기 기증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중국 내에 장기이식센터가 늘어나고 이식 의학이 발달하고 있는 것은 그 주인이 누구인지, 어떤 경로로 조달되었는지 모르는 장기들이 계속 늘어난다는 얘기이다. 사형수를 늘리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에서 탈출한 망명자들 사이에서 영화 <공모자들>의 내용과 같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중국 노동교양소에서 탄압받는 양심수들이 장기 공급원으로 쓰인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있었다. 사형수들만으로는 연 2만개라는 장기 공급량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내용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중국 정부가 불법 장기 이식 수술을 적발하겠다고 하면서 눈감아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은밀한 장기 거래 시스템은 살인 행위”

이런 실태를 알게 된 랍비 박사는 조사 결과를 2006년 10월 이스라엘 의학협회 저널에 발표하며 “중국 원정 장기 이식 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은 강제 장기 적출이 윤리적이라고 인정하는 셈이다”라며 법 개정을 촉구했다. 그의 주장은 전문가와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중국대사관이 이스라엘 외교부와 보건부에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국회 보건위원회는 공청회를 열어 “중국은 끔찍한 장기 이식 수술을 행하고 있다. 환자를 장기 이식 목적으로 중국에 보내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라고 결의했다. 2008년 3월 새로운 장기 이식법을 통과시켰는데, 법안의 내용은 ‘불법 장기 획득 또는 불법 장기 매매에 연루된 경우에는 해외에서 수행된 장기 이식에 대한 어떠한 치료비 보상도 금지한다’라는 것. 그 결과 이스라엘의 해외 원정 장기 이식은 2006년 1백55명에서 2011년 26명으로 급감했고, 오히려 자국 내 장기 기증이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랍비 박사는 “지난해 중국 당국은 5년 이내에 사형수의 장기 적출 문제를 종식하겠다고 발표했고, DAFOH(Doctors Against Forced Organ Harvesting: 강제된 장기 적출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모임)는 왜 지금 하지 못하느냐고 맞받아쳤다. 중국에 가서 장기 이식을 하고 오는 것을 우리는 ‘이식 여행’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장기 이식 여행은 결국 장기 이식이 필요한 중국 자국민의 기회를 다른 나라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래저래 불법 원정 장기 이식은 중국 국민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DAFOH는 12개국 의료인들로 구성된 국제 NGO(비정부 기구) 단체로 소속 회원국 정부와 함께 불법 원정 장기 이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투명하고 안전한 장기 이식 시스템 구축을 위해 소속 회원 국가 정부의 관련 법안 개정 촉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아일랜드, 노르웨이, 호주, 이스라엘, 타이완, 인도 등은 2007년부터 DAFOH를 통해 강제 장기 적출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쳐왔다.

한국에서는 중국 내 불분명한 장기 출처에 대해 언론 보도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고, 불법 원정 장기 이식 행위를 막을 제도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에 국제장기이식윤리협회(IAEOT·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Ethical Organ Transplants)가 지난 2월12일 한국에서 정식 출범했다. IAEOT는 비윤리적인 장기 거래 시스템에 우리 국민이 연루되는 것을 막고, 장기 이식 윤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법안 개정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다. IAEOT를 출범시킨 이승원 회장(의학박사)은 “은밀한 장기 거래 시스템을 원하는 환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한국도 이 끔찍한 일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우리 손으로 끊어버리고, 건강한 장기 기증 풍토를 정착시키는 것이 목표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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