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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 피해자 상처, 돈으로 치유 안 된다”

‘萬事小年’ 별명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인터뷰

조현주 객원기자 ㅣ jhonju@naver.com | 승인 2013.03.06(Wed) 10: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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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꿇어앉아서 ‘우리가 잘못했다, 용서해라’를 열 번씩 크게 외쳐라. 그리고 너희가 괴롭힌 친구 어머니께 ‘감사합니다’를 열 번씩 외치거라.” 판사의 말이 떨어지자 소년들과 그들의 부모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 용서해라, 감사하다”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열 번의 외침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터졌고, 법정은 이내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항상 소년 생각뿐이라는 뜻에서 ‘만사소년(萬事小年)’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소년부 부장판사(48)가 지난 3년 동안의 창원지법 소년재판부 생활을 바탕으로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라는 책을 지난 2월18일에 펴냈다. 책에는 결국 울음바다가 되고 만 훈훈한 법정 풍경과 소년범을 교화하기 위한 천부장판사의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소년부 재판을 맡은 지난 3년 동안 7천6백여 건의 소년 사건을 통해 무려 6천여 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천부장은 창원지법에 재직할 때 갈 곳이 없는 비행 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내에서 최초로 사법형 그룹 홈인 ‘청소년 회복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또, 그가 동분서주한 끝에 비행 소년과 그의 부모를 함께 상담하기 위한 비행 소년 전문 상담 교육기관인 ‘경남 아동 청소년 상담 교육센터’와 정규 학교 과정인 ‘국제금융고등학교 창원분교’도 세워질 수 있었다. 지난 2월27일 “소년 재판은 내 운명”이라는 천부장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창원지법 소년부 천종호 판사(맨 왼쪽)가 지난 2월6일 창원지법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제금융고 창원분교’ 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에게 졸업장과 졸업 메달, 선물을 주고 있다. ⓒ 연합뉴스
‘가사·소년 사건 전문 법관’으로 불려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주로 가사 사건과 소년 재판을 담당했다. 꽤 독특한 이력이다.

그래서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1997년 부산지방법원에서 민사부 배석판사로 판사 생활을 시작한 이래 창원지방법원에 부임하기 전까지 가사 사건을 처리한 기간은 총 4년 6개월이다. 가사 사건은 판사들 대개가 꺼리기 때문에 꽤 드문 경력을 가진 셈이다. 창원지방법원으로 인사 발령을 받고 소년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에는 ‘이게 내 운명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자동적으로 가사와 소년 사건 쪽으로 관심이 쏠렸고, ‘가사·소년 전문 법관’으로 불리게 되었다. 소년 사건도 보통은 1년씩만 맡는데 자청해서 3년을 내리 맡았다. 지난 2월25일 부산가정법원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법원에 ‘소년부를 맡게 해달라’고 미리 요청했었다. 앞으로 사정이 허락되는 한 계속 소년 사건을 전담하고 싶다.

천부장판사는 소년 사건의 유형을 크게 일반 청소년 비행과 학교 폭력으로 나누고 있던데.

일반 청소년 비행과 학교 폭력으로 나누어야 접근이 용이해진다. 이는 비행이나 범죄가 이루어지는 장소와 아이들의 신분에 따른 구분이다. 쉽게 말해 학교 폭력은 학교에 아직 남아 있는 아이들이 저지르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가정이 유지되는 아이들이 학교 폭력을 저지른다. 그런데 결손 가정이 되어버리면 학교를 이탈해서 비행을 저지른다. 아이들의 비행도 절도·강도 등 일반 범죄의 영역이기 때문에 소년 사건이라 하더라도 형사 사건화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 폭력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앞서 말했듯 학교 폭력은 가정이 유지되는 아이들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부모와 학교의 보호하에서 훈방 조치로 끝난 사건이 많았다. 최근 학교 폭력이 심각해 보이는 것은 어느 순간 갑자기 불어나서가 아니라, 감추어진 것들이 점점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머물렀던 창원지방법원만 하더라도 2012년 봄부터 학교 폭력으로 소년부에 송치되는 사건이 급증했다. 이는 2011년 겨울에 발생한 대구 학생 자살 사건 이후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바뀌어 학교 폭력 사건들이 형사 사건화되었기 때문이다.

미래가 창창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판결을 내릴 때마다 딜레마에 빠지지 않나?

학교 폭력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피해자 마음의 상처’이다. 상처를 아물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일반 청소년 비행은 전부 절도·강도와 같은 금전적 피해에 해당되어 돈만 배상하면 쉽게 합의가 된다. 그런데 학교 폭력 피해자의 상처는 돈으로 합의가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 아이와 부모들이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가해 아이들의 삐뚤어진 과거로 그들의 미래까지 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는 반드시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벌할 수밖에 없다.

   
천종호 부장판사가 2012년 3월5일 창원지법 대회의실에서 열린 ‘부산국제금융고 창원분교’ 신입생 입학식에서 자신이 보호관찰 처분을 내린 입학생을 안아주고 있다. ⓒ 연합뉴스
“학교 폭력 해결 실마리 ‘과거 정리’에 있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 폭력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한 방침을 두고 몇몇 교육청들이 계속 반대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정립된 의견이 없다. 정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경남에서 한 아이가 선생님께 항의해 무단결석을 한 적이 있었는데 교사가 그것을 학적부에 ‘등교 거부’라고 기록했다. 이후 아이는 독일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 한 문구 때문에 대학에서 입학 거부를 당했다고 한다. 다만, 학교 폭력 기록 여부를 정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본다. 학교 폭력 사건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것은 그동안 학교가 묵인한 사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엄청나게 고통받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우선 과거의 학교 폭력 사건들부터 철저하게 밝히고 난 뒤에 학교를 폭력이 없는 청정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이후에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학교 폭력에 대한 접근 방식이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보는가?

아직 학교 폭력의 실상을 모르는 학교가 많다. 대구 학생 자살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이후에도 비슷한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2012년 6월경에도 창원 지역에서 꽤 유사한 사건이 벌어져 더욱 엄벌을 내린 적이 있다. 이제까지는 학교가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고 사건을 묵인해왔다. 아이들만 모든 책임을 지게 하는 것도 잘못이다.

우선 학교는 한 사건을 통해 과거의 사건까지 철저하게 밝히는 작업을 해야 한다. 교사들도 달라져야 한다. 교사들도 사태 전체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열성적인 부모들에게 휘둘려서 가해 학생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까지 써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학교를 떠난 아이들에 대해 선처를 호소한 경우는 없다. 사건의 맥락도 모르고 탄원서까지 써 오는 경우를 보면 화가 난다. 상처받은 피해 학생 그리고 학교 밖 아이들까지 아우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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