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캠코의 ‘쌍용건설 딜레마’
  • 김진령 기자ㆍ정일환│뉴시스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3.0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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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준 회장 유임은 해외 사업에 이득, 매각 작업엔 계륵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의 거취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쌍용건설이 경영 실적 악화로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대주주(38.75%)인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퇴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회장은 쌍용그룹 창업주 고 김성곤 회장의 차남으로, 1983년부터 30년간 쌍용건설을 이끌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쌍용그룹이 해체되고 1998년 11월 쌍용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김석준 회장은 퇴진했다.

이후 채권단의 요청에 따라 경영 일선에 복귀해 2004년 10월 워크아웃에서 벗어나게 했다. 이때부터 그는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계속 쌍용건설의 경영을 맡아왔다. 이런 ‘지분 따로, 경영 따로’의 과도 체제는 국내 기업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모델이다. 대주주인 캠코는 그동안 꾸준히 매각 작업을 추진해왔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를 지속하다가 최근 건설 불황으로 쌍용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김석준 퇴진 문제가 다시 한번 도드라지게 되었다. 매각 작업 때마다 ‘김석준의 존재감’이 불거지곤 했다. 하지만 김석준 회장은 쌍용건설을 사들일 돈이 없었다. 그러다 결국 이번 워크아웃 사태가 발생하면서 캠코가 김석준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사태는 캠코의 바람과는 달리 역시나 김석준 유임 쪽으로 정리되고 있다. 쌍용건설의 수익원인 해외 사업에서 김회장의 인적 네트워크와 경영 실적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캠코의 입장은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형국이다. 부실 책임을 놓고 여론의 뭇매를 맞은 캠코는 일단 워크아웃만 결정되면 기존 지분을 채권단에 넘긴 뒤 손을 털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채권은행단의 입장이 생각보다 강경한 데다, 금융 당국까지 ‘기존 대주주의 역할’을 거론하며 은행 편을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우리·신한·하나·국민·산업 은행 등 5개 주요 채권은행장과 여신 담당 임원 등은 지난 2월26일 금융감독원에 모여 쌍용건설 처리 문제를 논의했다. 이날 회동은 금감원이 중재를 자처하며 마련된 자리였다.

2009년 7월8일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상량식에 참석한 쌍용건설 김석준 회장(오른쪽 두 번째). ⓒ 연합뉴스
채권단은 김석준 회장 인정

채권은행단은 이날 쌍용건설에 대한 워크아웃을 받아들이기로 전격 결정했다. 당장 2월28일 100억원이 넘는 전자어음 만기가 돌아오는 만큼 시간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들은 일단 구두 합의로 워크아웃 개시를 수용한 뒤, 추후 다른 채권자까지 서면 동의를 받아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뜻을 모았다.

다음 날인 27일 오전, 금융감독원은 긴급 브리핑을 열고 쌍용건설 워크아웃 개시를 전격 발표했다. 금감원은 브리핑에서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채권금융기관협의회가 3월4일 열리기로 되어 있다. 이후 채권단은 실사를 통해 추가 부실을 찾아내고 매각 절차를 진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쌍용건설은 워크아웃과 함께 매각이 추진되어 새로운 주인을 찾게 될 예정이다. 이로써 쌍용건설 처리 문제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

반면, 캠코는 이날 금감원의 발표가 나오자 ‘멘붕’에 빠졌다. 금감원 발표 내용 중에 ‘기존 대주주인 캠코의 역할’을 언급한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감원 김진수 기업금융개선국장은 이날 “캠코가 기존 대주주 자격으로 자구 노력을 하고 채무 재조정에 참여하는 안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한국자산관리공사. ⓒ 연합뉴스
금감원은 캠코의 책임 요구

캠코 내부는 이 발표가 나오자 발칵 뒤집혔다. 캠코 관계자는 “사전에 전혀 논의된 바 없는 내용”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캠코는 워크아웃이 개시되어 보유 중인 쌍용건설 주식을 채권단에 넘기면 손을 털고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자구 노력과 채무 재조정에 참여하게 되면 악몽 같았던 ‘쌍용건설의 늪’에 다시 발을 밀어넣는 셈이 된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캠코의 유일한 탈출구는 매각”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캠코가 수차례 시도했다가 실패한 제3자 매각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계속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캠코는 최근 말레이시아계 자본과 홍콩 펀드 등과 매각 협상을 벌였지만, 금감원은 2월27일 브리핑에서 이를 ‘실패’로 규정했다. 금감원은 “현재는 완전 자본 잠식 상태라 인수자가 나타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대신 추후 정상화 기틀을 만들어 기업 가치를 높이면 인수자가 나타날 것으로 보았다.

결국 캠코는 채권단의 쌍용건설 정상화 작업과 채무 재조정, 김석준 회장 신임 등에 협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분수령은 3월8일 열리는 쌍용건설 이사회가 될 전망이다. 이날 쌍용건설은 김석준 등 현 경영진의 거취를 결정하게 된다. 캠코는 김회장에 대한 해임을 요구한 상태인 반면, 채권단은 유임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채권단으로부터 유임 의사를 전달받은 김석준 회장은 “지금은 개인의 거취 문제보다, 회사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임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환위기 직후의 상황으로 도돌이표를 찍고 있는 것이다. 김회장의 임기 만료는 3월18일이다.

 

쌍용 오너 일가, 어떻게 사나 

쌍용그룹의 김석원 전 회장은 최근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2세 명의로 알려진 재산이 지난 몇 년간 명의가 정리되고 매각되는 등 전체적으로 보면 김 전 회장 일가의 재산이 다시 한번 정리되는 듯한 수순을 밟고 있다.

2007년 무렵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 사건에 연루되었던 것도 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 올 초 이와 관련된 명예훼손 소송에서 김 전 회장이 승소한 것이다. 그는 쌍용 해체 이후 거의 대외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고, 부인이 성곡미술관을 운영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그의 2세들은 사업을 하고 있다. 2세들이 관여했던 사업을 보면 크게는 올리브플래닝이라는 건설업체, 태아산업이라는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업체, 골프연습장인 남유산업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매출이 가장 큰 업체는 태아산업이다. 쌍용그룹이 해체될 무렵 경영권 이전 시비에 휘말렸던 태아산업은 그의 장남인 지용씨(34%)와 삼남인 지명씨(24.9%), 사남인 지태씨(24.9%)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둘째 아들은 2011년 세상을 떠났다. 태아산업은 고속도로 휴게소 3곳을 운영하는 업체로 2011년 4백4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08년 이전에는 2세 중 김지용씨만 주주였다가 2008년 지명씨와 지태씨도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올리브플래닝은 용평리조트 인근 횡계 읍내에 올리브부띠끄라는 펜션을 건설했었다. 이 회사의 주요 주주는 각기 지분 40%를 갖고 있는 김지용씨와 김씨의 손위 처남인 주현 현대IHL 대표이사이다. 지용씨는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장남인 고 정몽필씨의 차녀인 유희씨와 결혼했다. 장녀 은희씨의 남편이 주현 현대IHL 대표이사이다. 올리브플래닝은 최근 용평 사업과 관련된 권리를 제3의 회사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구 회장이 자동차 조명을 만드는 현대IHL의 지분을 은희씨 쪽에 넘긴 것은 먼저 세상을 떠난 형에 대한 배려로 알려졌다.

김석원 전 회장의 회사로 알려진 또 다른 회사는 서울 서빙고동에서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는 남유산업이다. 이 회사는 김지용씨가 28.6%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가 이 지분을 포함한 지분 전체를 지난 2011년 초 온누리선교재단으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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