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드라마 간접광고 ‘뻔뻔한 동거’
  • 엄민우 (mw@sisapress.com)
  • 승인 2013.03.0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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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에 PPL ‘바글바글’… 시청자만 ‘봉’

조인성과 송혜교가 파티에 가기 전 ‘파크랜드’에 가서 옷을 사고 ‘라네즈’ 화장품으로 메이크업을 한다. 성인 남녀의 파티 장소는 다름 아닌 ‘디 초콜릿’ 커피숍. 이들은 이곳에 모여 수다를 떨고 소시지를 구우며 노래방 기기를 끌어와 노래를 한다. 커피숍에서 소시지를 구워 먹고 노래방 기기라니, 납득하기 힘든 설정이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나오는 장면이다. 파크랜드와 라네즈, 디 초콜릿은 모두 해당 드라마에 간접광고(PPL) 제작 지원을 하는 곳이다.

TV 프로그램 속 PPL이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거에도 PPL은 있었지만, 이제는 드라마 몰입을 방해할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PPL은 ‘Product Placement’의 약자로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 안에서 상품 및 브랜드 로고 등을 노출시키는 형태의 광고를 말한다. 똑똑해진 소비자들은 억지스럽게 성능을 주장하는 광고보다는 자연스레 접한 제품이나 객관적인 제3자가 ‘좋다’고 얘기해주는 것을 신뢰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자연스럽게 소비자에게 노출되는 PPL은 가장 진화된 방송 광고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국내 PPL은 2010년 1월 방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PPL의 단가는 천차만별이다. 구체적으로 노출 수준에 따라 크게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제품의 단순 배치이다. 휴대전화를 예로 들면 단순히 드라마에 노출이 되는 정도를 의미한다. 2단계는 인물이 사용하는 것이다. 주인공이 휴대전화의 기능을 구현하는 것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 3단계는 스토리텔링이 들어가는 것으로 주인공이 휴대전화의 특정 기능을 직접 언급하는 수준을 의미한다. 각 단계에 따라 가격 책정도 달라진다.

PPL 가격은 각 건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인 가격 산정 공식은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드라마에 1회 PPL 광고를 할 경우, 해당 드라마의 15초 프로그램 광고 요금과 시청률을 곱하고 여기에 노출 단계 수준을 곱해서 산정된다. 이렇다 보니 PPL 시장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한다. 시청률에 따라 프로그램의 희비가 갈리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인기 많은 작가나 배우의 작품에는 서로 PPL을 하기 위해 달려들지만 시청률이 떨어지는 케이블TV나 종편의 경우에는 작가가 직접 PPL을 섭외하려 뛰는 경우도 있다”라고 귀띔했다.

SBS 드라마 에서 PPL 광고의 일환으로 ‘디 초콜릿 커피’ 브랜드가 노출된 장면. ⓒ SBS제공
아침 프로그램에까지 PPL  성행

인기 드라마의 경우 대부분 시청률이 채 나오기 이전부터 계약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스토리가 나오고 출연자가 결정되기 전에 이뤄지기도 하고, 사전 계약을 했다가 주인공이 바뀌는 경우에 변경되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가 히트한 이후 시청률을 보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는 그만큼 추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한 마케팅업체 대표는 “드라마가 방영하기 전에는 1억원이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 시청률을 보고 들어가면 2억원을 부르기도 한다. 뚜껑이 열리고 나면 돈이 더 들어가는 것이 부동산과 비슷하다”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런닝맨>의 경우 처음에는 옷에만 PPL 스폰서가 붙었으나, 이제는 향후 1년간 모든 PPL 요소가 완판되다시피 했다.

PPL은 최근 예능이나 코미디 프로그램에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최초의 코미디 프로그램 PPL로는 <개그콘서트>가 꼽힌다. 특히 ‘생활의 발견’이나 ‘거지의 품격’에서 배경 PPL로 쓰였던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당시 한 코너 배경으로 1회 노출 시 비용은 4천만원이었고 두 코너를 묶어서 PPL을 공급하면 6천만원으로 할인가가 적용되었다. 이에 대한 비용 배분을 통해 방송국이 86%를 가져가고 대행사가 11%,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수수료로 3%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KBS <1박2일>의 경우도 PPL로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1박2일>에서 라면 먹는 장면 등이 나오는 것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PPL은 심지어 방송 3사의 아침 프로그램들에서도 등장한다. 한때 외주제작사의 PD로 일하며 아침 방송을 제작했던 한 관계자는 “가끔 아침 프로그램에 연예인 가족이 해외로 놀러가는 경우가 나오는데, 많은 경우가 여행사를 끼고 한다고 보면 된다. 여행 중간에 건강식품을 먹는 장면 또한 PPL로 등장시키는 것이다. 또 아침 프로그램에서 연예인 집 공개를 흔히 ‘집 털기’라고 하는데 이 집 털기를 하기 전에 미리 가구들을 협찬으로 바꿔놓기도 한다”라고 귀뜸했다. 

심지어 비공식적인 루트로 펼쳐지는 PPL도 존재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감독과 배우에게 무료로 상품을 증정하고 착용하게 해 의도적으로 노출시키는 경우도 있다. 업체들이 이처럼 PPL을 선호하는 이유는 광고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지원한 망고식스의 경우 약 8억원을 제작 지원했고 이후 2차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

이처럼 PPL은 중소 업체에게 ‘대박’을 칠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항상 돈이 부족한 제작사와 중소 업체가 ‘윈윈’할 수 있게 해주는 셈이다. 하지만 지나칠 경우 전체 스토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콘텐츠의 질 등을 고려했을 때 시정되어야 할 부분이다. PPL 에이전시는 제품을 사용하는 인물과 횟수 등을 구체적으로 정해주기 때문에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등장인물의 직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 PPL 에이전시업체 관계자는 “미니시리즈의 16부작을 예로 들면, 메인 주인공이 특정 직업군에 해당하도록 하면 5억원, 주변 인물이 하면 3억원 정도로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A커피숍에서 일을 하면 5억원, 주인공 아버지가 A커피숍 주인으로 나오면 3억원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나오는 드라마의 조연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죽집에서 일하거나 캐주얼 브랜드 의류 대리점에서 일하고 있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열악한 제작 현실을 감안하면 PPL이 필요악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고 말한다. 방송국에서 나오는 제작비로는 드라마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이다. 한 브랜드 마케팅업체 대표는 “아예 프로그램사에서 제작사에게 스폰서를 갖고 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제작 지원이 안 붙어 아예 작품을 접는 경우도 생긴다. 배우 몸값이 올라가면서 제작비도 크게 올라 제작사가 더 힘들어졌다”라고 전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올해만 10건 이상의 PPL 광고를 적발해 심의 중이다. 한 PPL 에이전시 관계자는 “비슷한 PPL인데도 어떤 경우에는 법에 걸리고 어떤 경우에는 걸리지 않는데, 좀 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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