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명 웃어도, 웃지 않는 1명을 생각한다
  • 정덕현│문화평론가 ()
  • 승인 2013.03.0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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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프로그램의 지존’ <개그콘서트>의 눈물

지난해 10월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연습실에 사랑의 모금함(?)이 급하게 만들어졌다. “한 후배의 어머니가 아프셔서 모금을 하기로 했었다.” 개그맨 김준호씨에 따르면 개그맨답게 그 모금은 개그의 한 코너처럼 구성되었다고 한다. 고참 개그맨인 박성호씨는 흰 장갑까지 끼고 가슴 한쪽에는 ‘사랑의 열매’를 달고 음악을 깔면서 “귀하는 그간 <개그콘서트>에서의 노고를…”이라고 말하며 모은 근로 장학금(?)을 후배에게 수여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금액이었다. 그저 한 바퀴 모금함을 돌린 것뿐인데, 모인 돈이 무려 1천만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김씨는 “개그맨의 위상이 올라간 만큼 돈도 잘 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죠. 옛날 같았으면 5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가 전부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의 ‘네 가지’ 코너. ⓒ KBS 제공
확 달라진 개그맨의 위상

김씨가 들려준 이 에피소드는 지금 <개콘>의 달라진 위상을 말해주는 단적인 일화이다. <개콘> 서수민 PD는 지금의 <개콘> 위상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있다며, “예전 <개콘>이 아니다. 이미 최고의 위치로 성장했고, 기대치도 높아졌다. 게다가 이제 개그는 그냥 개그로서 즐기고 넘어가는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라고 설명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개그맨에게 가장 큰 고민이라면 ‘어떻게 하면 개그만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1년 사이 이 고민은 거의 해결된 상태라는 것. CF나 행사, 강연, 애니메이션 성우, 가수, 배우 등 성공 모델도 다양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그동안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던 개그맨의 처지에서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콘> 개그맨의 위상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광고 시장이다. 광고 시장에 개그맨이 대거 들어온 것은 단순히 인기를 반영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광고의 특성상 어떤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물군으로서 개그맨이 주목받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서수민 PD는 지난해 개그맨이 광고에서 주목받게 된 이유로 다음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지난 한 해가 불황이었기에 광고 시장에서 고급 마케팅이 먹히지 않고 오히려 서민 친화적인 마케팅이 먹혔다는 것. 따라서 저가라고 하더라도 개그맨을 활용하는 것이 그만큼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개그맨이 이제 인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신뢰도까지 갖추게 되었다는 것. 개그에 담긴 사회 풍자 등을 통해 현실에 대한 영향력이 생기면서 동시에 개그맨에 대한 신뢰도 역시 높아졌다는 이야기이다. 서수민 PD의 말대로 <개콘>이 그냥 웃기기 위해 웃기는 개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같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인식을 불러온 것이 사실이다.

개그맨의 위상 변화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은 좋기만 한 일일까. 서수민 PD는 바로 이 달라진 위상이 지금 <개콘>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높아진 기대감은 그것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고, 높아진 위상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기 시작한 것이다.

개그맨의 위상이 높아지자 먼저 생겨난 어려움은 관리 감독이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과거에 비해 일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김준호씨의 경우만 봐도 KBS에서만 무려 5개의 프로그램(<남자의 자격> <개그콘서트> <해피투게더> <인간의 조건> <퀴즈쇼 사총사>)을 하고 있다.

“3년 전만 해도 <개콘> 개그맨을 써봐야 영양가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위상도 높아지고 존재감도 있으니까 여기저기서 개그맨을 쓰려고 난리이다.” <개콘>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개그맨의 달라진 상황을 서수민 PD는 그래도 이해하는 편이다. “아직까지는 다행히 이걸 하니까 다른 것도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김준호씨는 과거와 달라진 개그맨의 입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에는 <개콘>에서 뜨면 버라이어티쇼로 가려 했고, 또 그렇게 떠나는 개그맨이 많았다. 그래야 먹고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개콘> 안에서도 다 해결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최근에는 <개콘>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다양한 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를 병행하는 개그맨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인간의 조건>은 아예 개그맨에게 최적화된 버라이어티 예능을 만들어보라는 서수민 PD의 제안에 따라 신미진 PD가 만든 프로그램이다. <개콘> 개그맨이 굳이 다른 버라이어티쇼에 눈길을 주지 않아도 되고, 또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는 MC 흉내를 내지 않아도 되는 이 프로그램은 그래서 개그맨에게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개콘>이라는 베이스캠프에 집중할 수 없는 구조적 요인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들어서 <개콘>이 예전만 못하다는 비판을 받곤 하는 데는 그런 요인도 작용한다. <개콘>은 구조상 적절한 시기에 새로운 개그맨으로 세대교체를 해줘야 계속 굴러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이 세대교체의 다리 역할을 해주어야 할 <개콘> 22기 개그맨이 급부상하면서 부가적인 일이 갑자기 많아졌다. 예전 개그맨은 이른바 뜨게 되면 그 힘을 다시 <개콘> 안에 온전히 쏟아부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그 에너지가 분산되었다는 것이다.

<개콘>이 ‘예전만 못하다’는 소리 듣는 이유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위상 상승과 함께 사회적 책임이 커지면서 생기는 ‘소재의 제한’이다. 몇 회 해보지도 못하고 코너를 내리게 된 ‘체포왕’의 경우가 단적인 사례이다. 이 코너에는 바보 형사가 동네 애들한테 놀림을 당하는 것이 개그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어느 날 <개콘>에 시청자로부터 편지가 왔다. ‘우리 아이가 정신지체인데 동네 아이들한테 저런 놀림을 당한다’라는 내용이었다. 부모의 가슴이 찢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편지를 받고 결국 코너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교무회의’라는 코너도 비슷한 이유로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전언이다. 선생님의 권위를 풍자하는 코너였는데, 실제 선생님이 전화를 해서 “요즘 우리가 너무 힘들다”라고 말했다는 것. 결국 100명 중 99명이 웃어도 웃지 못하는 그 한 명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위치와 입장이 되면서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개그맨은 늘 서민들의 대변자 역할을 자처한다. 실제로 <개콘>의 개그맨이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개콘>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서민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냈기 때문이다. 힘겨운 현실 속에서 생존 경쟁을 해야 하는 서민들처럼 개그맨들은 살아남기 위해 <개콘>의 무대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대중의 호응이 만들어낸 개그맨의 새로운 위상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개그맨 당사자에게 고스란히 도전으로 되돌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낮은 위치에 있을 때는 뭐든 그 눈높이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이제 그 개그의 힘이 현실에까지 맞닿아 있는 지금은 여러모로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한계점을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개콘>이 거의 1년 넘게 유지해온 ‘전체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 1위’ ‘광고 완판’의 기록은 새로운 도전과 숙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달라진 기대감과 위상은 <개콘>에게도 거기에 걸맞은 모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개그맨의 성공이 서민에게도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으려면 이제 좀 더 치열해진 자기 관리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요구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은 필수적이다.

서수민 PD는 “때론 2등이었으면 할 때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개그가 갖는 2인자적이고 서민적인 위치를 대변하는 속성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개콘>의 성공과 새로운 도전의 이야기는 그래서 단순한 일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성패가 아니라, 서민의 성공담과 성공한 후에도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아야 그 성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우화처럼 들린다. <개콘>은 과연 새로운 도전을 넘어서 이 우화를 완성시킬 수 있을까.


ⓒ KBS 제공
요즘 하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고민은 늘 많았지만 올 들어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예전의 <개콘>이 아니다 보니 기대감이 너무 높아졌다. 뭘 해도 봤던 것 같다고 한다. ‘비대위’ ‘애정남’ ‘사마귀유치원’ 등등 2012년 초반에 너무 센 것들을 한꺼번에 했다. 그 이후에는 어떤 이야기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어느 정도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넘어설 수 있으리라 본다. 가장 큰 고민은, 책임감이 생기면서 소재가 제한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코미디니까 용인된 부분도 있었는데, 지금은 사회적인 책임까지 따진다. 즉 외모 지상주의나 뚱뚱한 사람 이야기, 못사는 사람 이야기, 정치 이야기 뭐든 다 할 수 있어야 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어떤 한 사람의 상처까지 아울러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다. 그렇다 보니 개그맨 스스로도 이제 뭘 건드릴까 그런 고민을 한다. 요즘은 그냥 콩트하자, 기본으로 가자고 말한다. 사실 시청률 전체 1위가 주는 압박감도 있다. 때로는 1위를 내려놓고 싶다. 그래야 다시 1위를 할 수 있으니까. 역시 코미디는 2인자 자리에서 올려다보며 해야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높아진 개그맨들의 위상이 부담되지는 않나?

대견하지만 부담도 된다. 이제 다른 방송에서 버라이어티를 굳이 하지 않고 개그만 해도 수입이 되는 상황이다. 캐릭터 사업도 하고 음원 사업도 하는데 그런 것도 관리가 필요하다. 사실 예전에는 개그맨이 이런 걸 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했다. 행사도 마음껏 할 수 없었다. 개그맨이 숨통이 트여 살기는 편해졌는데, <개콘> 내에서는 관리 감독이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또 요즘은 위상이 높아지다 보니 여러 프로그램에서 개그맨을 서로 쓰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다 <개콘>을 등한시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하는데, 다행히도 우리 개그맨들이 <개콘>을 제일 우선시하며, 이게 있어야 다른 것도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개그맨들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하던데.

내가 개그에 대한 감이 없어서다. 자꾸 개그맨에게 물어보고 말을 많이 시켜본다. 정태호씨는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는 데 익숙한데 자꾸 물어보니까 힘들다”라고. 그런데 그것이 개그맨에게는 도움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렇게 토론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 버라이어티에서는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허경환씨는 언젠가 술자리에서 툭 치며 “이게 다 감독님 덕분”이라고 하더라.(웃음)

차세대 개그맨 중 유망주가 있다면.

25기 김기리씨는 이미 자리를 잘 잡고 있다. 메인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이문재씨도 꽤 연기가 잘 되는 친구이다. 송영길씨는 사실 얼굴에 묻혀 있었는데 의외로 아이디어가 많고 연기력도 좋아지고 있다. 25기, 26기가 좀 더 전면에 나와야 한다. 기존에 중심을 맡았던 22기, 23기와 잘 연결해서 하면 될 것 같다. ‘네 가지’나 ‘용감한 녀석들’에 묶여 있던 22기를 풀어서 그 힘을 새로운 차세대 주자와 엮어서 새 코너를 키우려고 한다.

새로운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고민이 많지만 그래도 결국은 웃기자는 것이다. 물론 차 떼고 포 떼야 할 것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런 고민은 내가 하면 되고, 개그맨들은 가질 필요가 없다. 그들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면 안 되니까. 다행스러운 것은 개그맨이 그런 고민에 과하게 빠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시청률 1위는 욕도 많이 먹지만 관심도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너무 심각하기보다는 웃기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그것이 초심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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