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는 깡패나 경찰이나 한통속” 지역감정 긁는 ‘사이버 망령’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3.1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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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아이디 추적 결과 불순 세력이 조장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지역감정’에 휘둘렸다. 특정 지역이나 출신들을 맹목적으로 비하하며 편을 가르고 감정싸움을 벌여왔다. 정치인들이 정치적인 목적과 이익을 위해 ‘지역감정’을 이용하고 부추기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국론은 분열되고, 국민은 사사건건 반목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국민들도 ‘지역감정 망령’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지역감정=망국병’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전국적인 추방 움직임도 일었다. 지금도 선거 때만 되면 해묵은 ‘지역감정 논란’이 재현되고 있지만, 예전처럼 노골적이지는 않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되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온라인과 모바일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안을 들여다보면 가슴이 뜨끔거리고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다. 입에 담기 어려운 섬뜩한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오프라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과격하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 기사 댓글 등에서 주기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특정 지역은 물론 정치인, 특정 사건 피해자와 피의자 등도 공격 대상이다.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신종’ 용어까지 계속 생성되는 등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온라인에서의 지역감정은 ‘싸움’이 아니라 ‘전쟁’에 가깝다. 섬뜩하고 선동적인 용어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상대방을 누가 더 자극하는지 각축전을 벌인다.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말로 선제공격을 하면 더 자극적인 용어로 반격하고 있다. 이렇게 쌓인 골은 파일 대로 파여 ‘정서적인 분열증’으로 폭발한다. 지금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역감정 전쟁 양상이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주 연령대가 10~30대의 젊은 층이라는 데서 심각성은 더하다. 익명성이 보장되다 보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재미 삼아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용어를 남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누가 어떤 목적으로 지역감정 부추기나

도대체 누가, 왜, 어떤 목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거나 조장하는 것일까. <시사저널>은 온라인에서 얼굴을 감춘 채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불순 세력’이 누구인지 추적했다.

포털 사이트에는 하루에도 1천만명 이상의 불특정 다수가 방문한다. 어린이에서 노년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다음(Daum)의 경우 댓글을 단 닉네임과 해당 닉네임이 남긴 댓글 기록이 표시된다. 때문에 특정 닉네임을 가진 네티즌이 어디에 어떤 내용으로 몇 개의 댓글을 남겼는지 알 수 있다.

닉네임 ‘ㄷㄷㄱㄱ’은 3월8일 오전까지 다음에 송고된 언론사 기사에 총 4천5백31개의 댓글을 달았다. 하루 평균 20개 이상의 댓글을 단 셈이다. 3월6일 17개, 3월7일 22개, 3월8일은 오전에만 18개의 댓글을 달았다. 기사도 정치, 경제, 사회, 스포츠 등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댓글이 판박이다. 기사 내용이 전혀 다른데도 댓글은 비슷하다는 얘기다. ‘전라도’나 ‘전라도 출신’이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하나같이 섬뜩한 내용이다. ‘홍어들부터 조지자’ ‘전라도 놈들 모조리 씨를 말려야 한다’ ‘전라도 것들 다 때려잡아야 한국이 산다’ 등 적개심이 가득하다.

댓글의 내용·형태·횟수 등을 볼 때 개인의 정상적인 활동으로 보기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 많다. 특정 목적을 가진 사람이나 세력이 조직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3월7일 ‘지난해 살인 사건을 분석한 결과 사흘에 한 명꼴로 남편·애인에게 여성이 살해됐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한 통신사가 이를 인용 보도했고, 당일 1백3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기사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인을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댓글이 5개나 달렸다. 이 중 닉네임 ‘조오까’는 상습적으로 지역감정을 담은 댓글을 쏟아냈다. 그는 “절라디언 쪽에서 90% 이상 살인 사건 일어낫지 ㅋ”라며 기사에서 언급한 살인 사건이 마치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것처럼 왜곡했다. ‘조오까’는 7일 하루에만 ‘다음’에 송고된 언론 기사에 30여 개의 댓글을 달았다. 대부분 호남이나 야당 정치인들을 원색적이고 악의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북한 핵 위협이 이슈가 되자 관련 기사에 “눌러봐 ㅋㅋㅋ 절라도 광주에 떨어지게끔 ㅋㅋㅋ” “5·16은 혁명, 5·18은 폭동” 식의 글이다.

다음(Daum)과는 달리 네이버는 댓글을 남긴 네티즌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해당 기사의 댓글 총 개수를 나타내고 있지만, 검색 기능이 없어 해당 네티즌이 어디에 어떤 글을 얼마나 남겼는지 알 수 없다. 또 아이디(ID)도 뒤에서 네 자리는 모자이크 처리해서 앞자리 ID가 중복될 경우 동일인인지 분간이 안 된다. 수사기관에서 해당 네티즌을 수사하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실체를 숨기고 악성 댓글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월7일 설날을 앞두고 ‘전주 롯데백화점 폭파 협박’이 있었다. 당일 네이버에 ‘폭파 위협, 백화점 고객들 다리가 후들거렸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총 84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이 중 14개가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내용이었다.

아이디 ‘snu1****’ “아셔야 할 것은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사건 사고의 1/3이 전라도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폭동의 도시’라고 불릴 만하죠. 명불허전 전라도 홍어!” 아이디 ‘park****’ “요즘 사건 사고만 터지면 전라도네, 전라도는 깡패나 경찰이나 한통속이라더니 무서운 동네다” 아이디 ‘mark****’ “전라도에는 가정 필수품이 두 가지가 있다. 슨상님의 사진과 총 한 자루” 등이다. 모두 사실을 왜곡한 악의적인 글이다. 법적으로 따지면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내용이다.

대표적인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디갤)는 어떨까. ‘게시판 갤러리’에서 호남 지역 비하 용어인 ‘전라디언’과 ‘홍어’를 검색했다. 총 34만4천여 개의 글 중 전라디언은 28개, 홍어는 1백48개가 검색됐다. 이번에는 경상도 비하 용어인 ‘경상디언’과 ‘흉노’를 검색했더니 지역감정으로 볼 만한 글은 없었다.

지역 색깔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스포츠갤러리-KIA타이거즈’에서 ‘전라디언’으로 검색했더니 9백1개의 게시글이 나왔다. ‘홍어’는 무려 2만9천3백5개가 검색됐다. ‘슨상(님)’의 경우 1만3백72개였다. 여기에 게시된 내용들은 논리가 없고, 앞뒤가 맞지 않는 ‘배설’에 가까웠다.

닉네임 ‘全羅人共’ , 1천여 개 지역감정 글 올려

기자는 글쓴이의 ‘닉네임’을 추적해 주기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악성 네티즌’을 찾았다. 그러다 한 네티즌을 알아냈는데, 그는 닉네임 ‘全羅人共’을 쓰고 있었다. 2013년 1월21일부터 2013년 3월5일까지 호남 지역을 비하하는 글 4백14개를 올렸다. 2월27일에는 6개, 3월1일 9개, 3월2일 4개 등 하루 평균 9.4개를 올린 셈이다.

‘全羅人共’은 주기적으로 닉네임도 바꿨다. 2011년 12월31일부터 2013년 1월11일까지는 ‘전라人共’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했다. 이 기간 동안 5백48개의 지역감정 댓글을 쏟아냈다. 합치면 9백62개에 달한다.

대구 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는 ‘삼성라이온즈’ 갤러리에서 ‘흉노’를 검색했더니 총 64개가 나왔다. KIA타이거즈 갤러리와 달리 상습적으로 글을 올리는 네티즌은 없었다. 닉네임 ‘흉노생체실험’이 영남 지역을 비하하는 내용으로 6개를 올렸을 뿐이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는 보수 성향 네티즌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다. 여기에서는 자유로운 의견과 표현 등이 보장돼 있다. 일베측은 공지사항을 통해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만 허용하고 있다. ‘명예훼손·모욕죄 고소 대상이 될 만한 글은 자제해 달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또 ‘제3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되고 법정 다툼이 일어날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곳에서는 지역감정을 유발하거나 부추기는 용어들이 일상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특히, 호남이나 호남 출신 인사들이 단골 공격 대상이었다. 7일을 기준으로 일베 메인 화면에서 호남 비하 용어인 ‘전라디언’ ‘홍어’ ‘슨상(님)’으로 검색했더니 문서는 1만1천5백92개, 댓글은 83만6천9백7개가 나왔다.

반면 경상도 비하 용어인 ‘경상디언’과 ‘흉노’는 문서 1천8개, 댓글 6천7백14개였다. 문서나 댓글 내용도 대부분 자극적인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 정도면 일베가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온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법하다.

일베의 경쟁 사이트이자 진보 성향 네티즌이 모이는 것으로 알려진 오늘의유머(오유)는 어떨까. 이곳은 국정원 여직원이 종북 사이트로 규정하며 ‘댓글 활동’을 한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오유’에서 전라도와 경상도를 비하하거나 지역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을 찾아봤다. 총 1백50여 개가 있었으나 대부분 일베에서 난무하고 있는 지역감정 용어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온라인에서의 ‘지역감정’ 유발이 도를 넘어서자 전라남도는 상습적이고 의도적인 호남 지역 비하 표현과 행위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 온라인상에서의 표현을 법과 제도로 제약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자칫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신용태 한국인터넷윤리학회 회장(숭실대 교수)은 “인터넷은 자기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욕을 해도 죄의식이 없다. 법적·제도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이버상에서의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공정하게 집행해야 한다. 포털 사이트의 경우 불법 행위에 대한 적극적 제재에 참여해야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도 불량 회원에 대해서는 활동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은 ‘신조어’ 생산 공장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새로운 용어들이 만들어지거나 사라진다. 익명성이 보장되다 보니 누가 만들었는지 진원지를 알기가 쉽지 않다.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용어들도 이런 탄생 과정을 거쳤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에다 ‘출신’을 나타내는 영어 접미사 ‘ian’을 붙인 ‘지역+디언’이다. 이는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말로, 예를 들어 호남 사람들은 ‘전라디언’, 영남 사람들은 ‘경상디언’으로 표현한다. 사이버상에서는 호남 지역을 비하하는 ‘전라디언’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한 네티즌은 “전라도 사람들을 따로 구분 짓는 말이다. ‘보통 한국인들과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의미인데, 여기엔 전라도를 배척하는 뜻이 담겼다”고 말했다.

호남 사람들을 ‘홍어’로 비하하기도 한다. 홍어는 전남 서남해안 지방에서 잡히는 대표적인 생선이다. 이 지역에서는 잔칫상에 삭힌 홍어를 단골 메뉴로 올린다. 이런 지역적인 특성을 이용해 삭힌 홍어가 풍기는 ‘냄새’를 호남 사람들의 ‘인격’과 동일시해서 비하하는 데 쓴다.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전사자의 시신 썩는 냄새를 진압군이 ‘홍어 삭힌 냄새’에 비유한 데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호남 출신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때 ‘선생님’으로 불렸다. 독재 정권 시절 김 전 대통령의 이름을 제대로 언급하지 못했기에 대신 ‘선생님’이라는 단어로 지칭한 것이다. 사투리로는 ‘선상님’으로 발음되기도 하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반감과 호남에 대한 적개심이 합쳐져 ‘슨상님’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이 밖에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5·18 폭동’으로 묘사하거나, ‘전라좌빨’ ‘전라인공’ 등의 용어가 무차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남 지역을 비하하는 대표적 용어는 ‘흉노’ 또는 ‘경상 흉노’다. 이는 경주 김씨와 김해 김씨의 조상이 중국의 ‘흉노족’이라는 설에 기인한 것이다. 경상도가 일본에 가깝고 발음도 비슷하다고 해서 나온 말이 ‘경상도 쪽바리’다. 경상도 사람들을 ‘개’에 비유한 ‘개상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 당시 불에 탄 희생자들을 빗댄 ‘경상도 통구이’ 등도 경상도를 비하하는 말로 사용된다. 다른 지역을 비하하는 말로 충청도를 지칭하는 ‘멍청도’, 강원도를 가리키는 ‘감자도’가 있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용어들은 지금도 온라인상에서 생산되고 있다. 특정 지역에 대한 ‘집단 린치’가 이루어지고 갈수록 자극적이고 흉포화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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