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에선 365일 활극이 펼쳐진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03.1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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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시장과 새누리당 의회 간 정쟁으로 날 새

인구 100만명에 육박하는 거대 도시 성남시가 또 시끄럽다. 이재명 시장과 성남시의회 간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3월11일 민주당 소속인 이 시장측이 시의회 다수당(새누리당)의 집단 등원 거부를 막기 위해 새누리당 대표단을 상대로 ‘보이콧 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수원지법에 제출하면서 법정 공방으로까지 비화됐다. 지방자치 23년 역사상 초유의 일로,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 공천제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지목되면서 학계와 시민단체 사이에 “정당 공천제 폐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남시의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은 지난 2월28일 열린 제193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집단 퇴장했고, 이에 따라 1730억원 규모의 추경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은 지난해 말 제191회 임시회의에도 등원 거부를 하면서 2013년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해 준예산 사태가 발생했다. 성남시 관계자는 “다수당의 보이콧에 따른 행정 마비 사태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어쩔 수 없이 (보이콧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3월11일 성남시 대리인(오른쪽)이 시정 마비 사태를 막겠다며 시의회 새누리당 대표단 5명을 상대로 ‘의회 보이콧 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수원지법에 제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의장 선거 ‘야합’으로 감정싸움 치달아

이번 사태의 빌미가 된 것은 ‘도시개발공사(도개공) 설립 조례안’이다. 새누리당은 재정 부담이 가중된다는 이유를 들어 당론으로 도개공 설립에 반대해왔다. 이를 민주당과 성남시가 밀어붙이자 새누리당이 표결을 거부한 것이다. 이영희 새누리당 대표의원은 “등원 거부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의정 활동의 일환이다. 이를 두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까지 내는 것은 이 시장의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성남시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성남 참여자치시민연대 관계자는 “도개공 설립과 관련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청회는 한두 번밖에 열리지 않았다. 의회와 성남시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노력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사태는 (성남 시민의) 민생과 관련되어 있기보다 정당 간의 패거리 싸움으로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성남시 의회는 지난 2006년 도입된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 공천제에 근거해 9인 이상의 의원을 가진 정당의 경우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성남시와 의회는 국회처럼 민선 시장의 소속 당에 따라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첨예한 갈등을 빚어왔다. 한 시의원은 “(성남)시와 의회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당은 시의 의견에 무조건 찬성하고, 야당은 덮어놓고 반대한다. 여야 모두 다음 선거를 대비해 단기적인 성과 쌓기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2010년 7월 출범한 민선 5기 이재명 시장 체제도 예외는 아니다. 이 시장은 취임하자마자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소속 이대엽 전 시장의 방만한 예산 운용을 문제 삼으며 모라토리엄(지불 유예)을 선언했다. 새누리당을 상대로 한 정쟁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시와 의회는 사사건건 충돌했다. 새누리당은 시가 추진한 시립의료원 건립 사업, 성남문화재단 대표·청소년육성재단 상임이사 선임 등에 반대했다. 2012년 예산안을 처리할 때는 이 시장의 시책추진업무비 1억3400만원, 기관운영업무추진비 1억9030만원 등 총 3억2400만원의 예산을 전액 삭감해 시장의 업무추진비가 0원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갈등은 갈수록 심해졌다. 특히 지난해 7월 하반기 원 구성 과정에서 불거진 의장 선출 문제로 시와 의회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당시 성남시의회는 전체 34석 가운데 새누리당 19석, 민주당 15석이었다. 새누리당이 ‘미는’ 의원이 의장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고, 새누리당은 자체 의원총회를 통해 박권종 의원을 후보로 내정했다. 그런데 박 의원은 14표를 얻는 데 그쳤고, 새누리당 소속 최윤길 의원이 19표를 얻어 의장에 선출됐다. 민주당이 최 의원에게 몰표를 주고, 새누리당에서도 4~5명의 이탈 표가 생긴 탓이다. 새누리당은 의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최 의원과 민주당이 ‘밀실 야합’을 했다며 즉각 사퇴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최 의원은 당을 떠나면서까지 의장직을 포기하지 않았고 새누리당은 집단 등원 거부로 맞대응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 시사저널 최준필
“기초단체장·의원, 정당 공천제 폐지해야”

시의회의 파행은 이때부터 감정싸움으로 치달았다. 이영희 의원은 “(의장 선출 때) 원칙과 상식을 무시한 야합으로 의회 질서가 교란됐다. 새누리당을 균열시키려는 목적이 아니겠는가. 이 시장은 취임할 때부터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시의회를 인정하지 않았다. 최 의장 역시 임명된 후 암암리에 이 시장 편만 들고 있다. 의회가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꼴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이재명 시장에 대한 비판 여론도 고조되고 있다. “의회 다수당인 새누리당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함에도 그런 정치력이나 행정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상대방을 자극하기만 한다”는 지적이다.

의장 선거 이후부터는 진흙탕 싸움이었다. 문제는 ‘묻지 마’ 식 행태가 자행되면서 시의원 개인의 소신보다 당론이 무조건 우선시된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은 도개공 설립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고 투표에 앞서 집단 퇴장했다. 투표를 할 경우 또 이탈 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의장과 민주당 의원 16명만으로는 의결 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소속 강한구 의원과 권락용 의원이 당론을 거부하고 투표에 참여했고, 도개공 설립안은 통과됐다. 강 의원과 권 의원에게 돌아온 것은 ‘제명’과 ‘조건부 경고’라는 새누리당의 중징계였다. 강 의원은 “당론에 앞서 소신으로 투표에 참여했다. 집행부(성남시)가 올린 안건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것이 의원의 의무다.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안건이기 때문에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새누리당은 내가 도개공 설립에 찬성하는 것을 알면서도 상임위에 넣었다. 상임위에서 지난해 11월 (도개공 설립) 안건이 통과되고 난 2~3일 후 ‘당론’이라며 반대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는 다수당의 횡포이며 공연한 발목 잡기다”라고 비판했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는 기초단체장 및 의원 정당 공천제 폐지를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후 여야 모두 유보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3월13일 민주당이 발표한 혁신안에는 기초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에 대한 정당 공천 폐지 의견이 빠져 있다. 새누리당 4·24 재·보선 공천심사위원회 역시 3월11일 회의에서 정당 공천 폐지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김민전 경희대 정외과 교수는 “여야 모두의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정당 공천제 폐지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정당 공천제 때문에) 지자체가 중앙당에 복속되고, 기초단체장 및 의원들이 국회의원들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목을 매고 있는 현실에서 주민 자치·생활 자치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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