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입만 바라보는 한심한 집권당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3.03.1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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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여당 새누리당이 무기력증에 빠졌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다. 그래서일까. 최근 당내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엿보인다. 친박 핵심 인사들이 포함된 10여 명의 재선급 이상 의원들이 최근 모임을 통해 당 지도부를 강도 높게 비난하는가 하면, ‘십상시’로 표현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비서진들에 대한 비토성 목소리도 부쩍 잦아지고 있다. 오는 4월24일 재·보선을 통해 김무성 전 의원과 안철수 전 교수가 여의도에 입성할 경우, 새누리당이 격랑에 휘말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리네 정치는 정당보다 인물이 우선한다. 지금껏 정치 지도자들은 자기 필요에 따라서 툭하면 당을 해체하고 새로 만들기를 반복해왔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정당사는 참으로 군색하다. 새누리당 만 1년 1개월. 민주통합당 만 2년 3개월. 통합진보당 만 2년 3개월, 진보정의당 만 5개월. 현재 국회에 등록된 의석 정당들의 한두 살에 불과한 나이가 바로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역대 대통령들의 경우만 봐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1987년 민정당 후보로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0년 민자당을 새로 만들었고, 1992년 민자당 후보로 당선된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신한국당을 만들었다. 1997년 국민회의 후보로 당선된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민주당을, 2002년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여소야대 국면 타개를 위한 3당 합당으로 탄생했던 민자당 창당을 제외하고는 모두 청와대가 집권 여당과 밀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실시한 ‘자기 정당 만들기’의 일환이었다. 그나마 이명박 전 대통령만 한나라당을 그대로 유지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한나라당도 지난해 2월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에 의해 새누리당으로 바뀌는 운명을 맞았다.

집권 여당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에 의해 탄생됐고, 또 박 대통령을 당선시킨 만큼 양측은 그야말로 ‘바늘과 실’처럼 한 몸, 한마음이 되어야 할 운명이다. 더구나 지금이 새 정부 출범 직후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현재 여권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월15일 오후 청와대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이한구 원내대표 등 여당 대표단과의 회동에서 ‘정부조직법 문제’에 대한 입장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우여·이한구 체제에 비난 표출  

최근 새누리당 내부 움직임에서 눈에 띄는 장면들이 엿보인다. 얼마 전 새누리당의 재선급 이상 의원 10여 명이 회동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들은 모임에서 현재의 여야 대치 정국을 전혀 풀지 못하는 새누리당의 ‘무기력증’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황우여 대표와 이한구 원내대표 체제를 향한 비난도 강하게 표출됐다. 앞으로 새누리당이 정국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이들은 앞으로 모임을 정례화하기로 했다. 이 정도라면 지금의 정국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발언 수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면면을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친박 의원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ㅇ의원과 ㅈ의원 등은 현 정부에서 중용이 예상될 정도로 언론의 하마평에 자주 오르내렸던 친박 핵심 의원이다. 여전히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이들이어서 청와대를 직접 겨냥한 목소리는 자제하는 분위기였지만, 향후 재·보선 이후 상황에 따라 황우여 대표 체제에 대한 비난이 박 대통령에게로 옮겨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새누리당의 핵심 당직자는 “지금 당의 주류라고 하는 이른바 친박 구조는 상당히 불안하다. 수적으로만 보면 100여 명이 훨씬 넘는 대규모이지만 사실상 모래알에 불과하다. 특히 근간이 되어야 할 초선급들이 하나같이 비정치인 일색이어서 정치력이 없다.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는 몰라도 새누리당에 대한 충성도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지난 18대 국회 때 김성식·정태근·홍정욱·권영진 전 의원 등 초선들이 쇄신 그룹을 형성해 당내에서 상당한 목소리를 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그런 역할을 할 그룹이 전무한 게 사실이다. 이를 두고 한 전직 의원은 “(지난해 19대 총선) 공천 때 전문성을 우선한다고 정치력 없는 사람들만 죄다 뽑은 결과가 아니냐”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도 사실 폭발 직전이다. 수도권의 한 친박 의원은 최근 의정 보고서 표지를 제작하면서 아예 박 대통령 사진을 뺐다. 지난해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 조직을 관리했던 핵심 인사는 “맑은 물에는 오히려 고기가 살 수 없는 법이다”라는 말로 ‘주군’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지난 2007년 경선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만을 목표로 뛰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당선 환호성도 지르기 전에 “여의도에 있지 마라”라는 박 대통령의 차가운 지시가 떨어졌다. 그 서슬에 놀란 그는 인수위 시절 여행을 핑계 삼아 해외와 지방을 전전했다. 하지만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얼마 전 여의도에 조그만 사무실을 냈다.

“박 대통령, 갑을 관계 바뀐 것 모르는 듯”

박 대통령의 ‘불통’ 독주가 계속될 경우 새누리당이 ‘도로 한나라당’으로 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실의 한 중진 보좌관은 “박 대통령이 갑을 관계가 바뀐 점을 아직 모르시는 것 같다. 이제 그는 당 대표가 아니고, 국회의 견제를 받는 행정부 수장”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의 협조를 구해야 할 처지로 바뀌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는 “지금 박 대통령은 야당을 설득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야당은커녕 여당도 설득하지 못하는 상황 아닌가”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앞서 언급한 캠프 핵심 인사처럼 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완전히 접지는 못하지만, 속앓이를 하고 있는 인사들은 원로와 중진·신진 가릴 것 없이 상당하다.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된 김행 전 위키트리 부회장과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서 전 대표 추천 케이스라는 등의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여전히 그의 영향력이 살아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로 들리지만, 막상 서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나를 포함한 서 전 대표 최측근 인사 중 새 정부에 들어간 사람이 누가 있나? 한 명도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서 전 대표도 그런 오해를 안 사려고 대선이 끝나자마자 필리핀에 나가서 한 달 넘게 있었고, 설에 잠깐 들어왔다가 하도 사람들이 찾아오고 하니까 다시 또 (해외에) 나갔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내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나타낼 때 항상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이들이 이른바 ‘비서진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다. 이들은 이번에 보란 듯이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것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비서관 자리를 장악했다. 이들을 가리켜 새누리당 내에서는 “3선 의원급 보좌관들”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웬만한 초·재선 의원들보다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뜻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보좌관·비서관급 10여 명을 가리켜 ‘십상시(十常侍)’라는 말도 회자되곤 한다.

지난해 대선 캠프에서 활약한 한 핵심 관계자는 “지난 2007년 경선 때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이라며 에피소드 한 가지를 들려줬다. 당시 친박계 좌장 격이었던 김무성 의원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앞서 언급한 비서진 중 한 명이 입구에서 “○○○ 의원하고 ○○○ 의원은 왜 안 오느냐”는 등 참석자들을 체크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김 의원이 “니 뭐꼬? 나가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 비서진은 얼굴이 벌개져서 그냥 나갔다. 이 일이 있은 후 지난 MB 정부 시절 김 의원과 박 대통령 관계가 급속히 악화됐는데 아마 그날 있었던 일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경북 지역의 한 중진 언론인은 “참 묘하게도 박 대통령 측근 비서진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정치인들은 새 정부에 발탁된 반면, 이들과 각을 세우고 힐난한 정치인은 지금 박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인사가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과 유정복 안전행정부장관 등이고, 후자의 대표적 인사가 유승민 의원과 이혜훈 최고위원 등이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친박 핵심 인사로 한때 좌장 노릇을 하려다가 주변의 견제와 박 대통령의 지적으로 주춤했던 모 의원의 경우 노골적으로 박 대통령의 비서진과 밀착했다. 주변에서 중진 의원의 경력이 아깝다고 욕하는 이들이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첫 해외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김무성 전 의원(오른쪽) 등 특사단이 1월24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왼쪽 사진). 3월11일 안철수 전 교수가 입국하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 시사저널 이종현
4월 재·보선, 김무성과 안철수 등장이 ‘태풍의 눈’

오는 4월24일 재·보선 결과가 민주당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신율 명지대 교수는 “오히려 새누리당이 재·보선 후폭풍으로 더 큰 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진원지는 역시 김무성 전 의원과 안철수 전 교수다. 두 사람은 부산 영도와 서울 노원 병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데, 현재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여론조사에서 점쳐지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김 전 의원의 경우 과연 부산 영도 공천을 무난히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와대와 당 지도부에서 껄끄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가 국회에 입성하면 뉴스의 초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래알 같은 지금의 새누리당 의원 구조로 볼 때 김 전 의원이 원내에 있으면 그를 중심으로 어떤 변화의 바람이 일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향후 정국 구도와 관련해 안철수 전 교수를 주목하는 시선도 상당하다. 새누리당 친박계 전략가로 통하는 한 인사는 “안 전 교수가 국회의원이 되면 그는 ‘여의도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지난 18대 국회 때 세종시 문제 등 무슨 이슈만 터지면 (언론 등이) 박 대표(박 대통령)가 집중 조명을 받았듯이 19대 국회에서는 그 역할을 안 전 교수가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아마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안 전 교수의 한마디가 될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여러 면에서 최근 정국 분위기가 심상찮다고 판단했음인지 청와대 내에서 달라진 움직임도 포착된다. 캠프 출신인 한 핵심 인사는 “지금 청와대 민정·정무 라인에서 캠프 관계자를 포함한 각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박통(박 대통령) 역시 주변 인사들의 불만이 높다는 것을 인지하고 단속 작업에 들어간 느낌이다”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관계가 회복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영남 지역의 한 재선 의원은 “박 대통령이 정치인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데는 지난 대선에서의 학습 효과가 컸다. 대선 당시 야권이 후보 단일화만 하면 박 대통령은 무조건 진다는 얘기들이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나돌았다”며 “아마도 그런 말을 듣는 박 대통령은 피가 거꾸로 솟았을 것이다. 그래도 결국 이기지 않았나. 오기가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朴心 통할까 
장악력 시험대는 5월 원내대표 경선

청와대의 여당 장악력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는 당 대표와 원내대표 경선이다. 지난 이명박(MB) 정부 출범 이후 첫 경선은 2008년 7월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전대)였다. 여기서 박희태 전 의장이 당시 원외였음에도 대표에 선출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청와대의 힘이 작용한 때문이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한 전직 고위 인사는 “원래 시나리오대로라면 2008년 전대에서 당 대표 몫은 당연히 이재오 의원이었다.

MB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재오 당 대표 체제를 굳건히 해서 정국 주도권을 잡아간다는 구상이 확고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의원이 그해 4월 총선에서 낙선하고, ‘친박 공천 학살’의 비난 속에 미국으로 쫓기듯 나가면서 구상이 완전히 헝클어졌다. 할 수 없이 대안으로 박(희태) 전 의장을 선택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박 전 의장의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이 불거졌을 때 배후에 이 의원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파다했다. 아무튼 원내도 아니고 뚜렷한 지지 기반도 없고 여론조사에서는 정몽준 의원에게 밀렸던 박 전 의장은, 청와대의 지원으로 당 대표에 무난히 선출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경선은 오는 5월 원내대표 경선이다. 현재 이주영 의원과 최경환 의원, 남경필 의원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서병수 사무총장과 정희수 의원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남 의원을 제외하면 온통 친박 일색이다. 남 의원의 경우 출마하면 ‘비박(非朴)’의 지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 의원이나 최 의원 등이 ‘박심(朴心)’을 두고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

박심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박 대통령 캠프 출신의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상 누구를 노골적으로 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튀는 것보다는 관리형 지도부를 선호하는 평소 스타일을 감안할 때 이 의원을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대구·경북 지역의 한 중견 언론인은 “박 대통령은 최 의원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최 의원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하지만 만약 남 의원이 당선되거나 거의 박빙 양상으로 치달을 경우,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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