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도 새도 모르게 사생활 털어낸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3.1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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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장비로 무장한 심부름센터의 진화

의뢰인 대신 일을 처리해주는 심부름센터(흥신소)의 진화 속도가 놀랍다. 심부름 의뢰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대거 이동했다. 의뢰인은 더욱 비밀을 유지할 수 있고, 업체측은 쉽고 빠르게 의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심부름센터’를 검색하면 수십 개의 업체가 검색된다. 이 중 상위에 링크된 업체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전국을 네트워크화한 ‘기업형 업체’가 대다수였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상시 의뢰가 가능하고 여성 고객을 위해 여성 전문 상담원도 두고 있다.

지역 지부장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지방 의뢰가 쉽도록 했다. 지부장들의 사진을 게재해 신뢰성을 높이고 휴대전화 번호도 게시해놓았다. 심부름센터 업무 특성상 신뢰도를 높이고 다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서다.

취급 업무는 더욱 정교화·전문화하고 있다. 개인·기업 민원 업무 외에 연예인, 유명인사, 고위직 공무원이 주요 고객인 VVIP 서비스도 제공한다. 전직 경찰 출신들로 구성된 업체도 있다. 이런 심부름센터의 전문화·기업화·지능화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IT심부름센터까지 등장했다. ‘사생활 캐내기’에 주로 이용된다. 배우자나 애인의 불륜을 알아내거나 사생활을 훔쳐보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이용자들이 필수적으로 이용하는 카카오톡이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타깃이다. 메일을 해킹하기도 한다.

경쟁사 홈페이지를 해킹해 영업에 타격을 줄 목적으로 IT심부름센터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디도스 공격으로 사이트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심부름센터의 사회적인 폐단은 심각하다. 첨단 장비가 등장하면서 청부 살인, 불법 채권 추심, 개인정보 누출, 사생활 침해 등이 더욱 교묘하게 이루어진다.

심부름센터 직원이 의뢰인의 주문을 받고 상대방의 사생활을 불법 촬영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의뢰인 80% 이상은 배우자 불륜 의심한 주부

경찰청은 1~3월 두 달간 심부름센터를 집중 단속했는데, 특정인의 소재나 연락처 등 사생활을 불법으로 조사하는 행위가 67%로 가장 많았다. 피해자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위치 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하거나, 취득한 개인정보를 누설하는 일도 있었다. 채권자의 의뢰를 통해 불법 채권 추심에도 나섰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의뢰인 10명 중 8명이 여성이고 대부분이 주부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해 심부름센터에 뒷조사를 의뢰했다.

한 심부름센터의 개인 업무에는 ‘가정 내의 말 못할 고민이나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 ‘억울하게 의처증이나 의부증으로 오해받는 경우’ ‘이혼 소송 시 양육권·양육비·위자료·손해배상·재산 분할’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업무 개시(작업)는 착수금을 받는 대로 이뤄진다. 보통 3~4명의 직원이 한 조가 돼 맡은 일을 한다. 본격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 작업도 한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추가 기본 정보를 수집한 후 불법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신상정보를 빼내는 것이다.

배우자 뒷조사뿐 아니라 선거 때는 경쟁 후보의 금품 수수 현장 등 불법 선거 증거를 포착해 상대 후보에게 돈을 받고 넘기는 일도 한다. 기업체는 직원들의 기밀 유출 등의 혐의를 잡기 위해 심부름센터를 이용할 때도 있다.

기초 사전 작업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심부름센터 직원들은 첩보원도 놀랄 최첨단 장비를 가지고 다닌다. 의뢰인이 원하는 사람의 위치를 24시간 추적할 수 있는 ‘차량 위치추적기’는 필수품이다. 크기가 담뱃갑 정도여서 차량 안에 몰래 장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귀신도 몰라볼 기막힌 장비들

차량용 블랙박스는 차량 내부의 소리를 녹음하고 영상을 촬영하거나, 불륜 현장 증거물을 확보하는 데 쓰인다. 상대방의 음성을 녹음할 때는 자동 음성 인식 녹음기가 동원된다. 차량 등에 설치해 도청이나 동영상 촬영용으로 쓰는 소형 스파이캠(몰래카메라)도 있다.

심부름센터 직원들의 개인 장착품도 첨단을 달린다. 이들은 고성능 캠코더를 가지고 다니는데, 안경 모양이나 차량 리모컨 형태가 널리 쓰인다. 초소형 카메라의 경우 단추·볼펜·시계 모양이 있다.

기자가 일명 ‘파라치’들이 사용하는 특수 장비를 직접 확인해봤지만 ‘장비’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다. 배우자의 불륜 여부를 확인하는 데는 ‘불륜 시약’이 필수다. 불륜 행위를 한 후 일정 시간 안에 속옷 등에 뿌리면 정액이 묻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작업 난이도에 따라 망원경, 마취제, 전기 충격기, 가스총까지 소지한다. 이런 첨단 장비를 동원해 미행, 차량 위치 추적, 도청, 카메라 촬영 등이 이루어진다.

지난 3월27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50대 심부름센터 대표(여)를 구속했다. 그는 2011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의뢰인 130여 명으로부터 하루에 50만원씩 받고, 배우자의 불륜 등에 관한 뒷조사를 의뢰받았다.

심부름센터에서는 의뢰인 배우자의 차량에 위치추적기 등을 부착해 미행한 후 사진을 촬영해 전송하는 방법으로 약 3억원을 챙겼다.

심부름센터는 누구나 쉽게 설립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난립한다. 경찰은 전국에 1500~3000개가 영업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행법상 처벌 기준도 약해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심부름센터의 폐단을 막고 부족한 경찰력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탐정 제도’가 검토되고 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민간조사업(일명 탐정법)이 합법이다. 우리 국회에도 탐정 활동을 법으로 보장하는 ‘민간조사업법’이 상정됐지만 아직까지 통과되지 않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아서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강력팀장은 “심부름센터의 불법 행위는 절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오히려 기승을 부릴 게 뻔하다. 그렇다고 경찰력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탐정 활동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면 실종자 문제 등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불법을 일삼는 심부름센터도 관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부름센터 비용 ‘부르는 게 값’  

심부름센터 비용은 업체마다 다르다. 크게는 착수금과 성공 수당으로 나뉜다. ‘착수금’은 의뢰 비용으로 보면 된다. 성공하지 못해도 착수 비용은 돌려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보통 ‘50만~100만원(12시간 기준)+성공 수당’이다.

성공 수당은 작업의 난이도 등을 감안해 300만~수천만 원이다. 더러는 1억원을 넘는 경우도 있는데, 청부 살인 등이 여기에 속한다. 지난해 10월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에 대해 심부름센터를 통해 청부 살인을 의뢰한 한 남편은 착수금과 성공 보수로 1억3000여 만원을 건넸다.

기자가 한 심부름센터에 배우자 불륜 조사를 의뢰하는 척 전화해보니 40대로 추정되는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착수금과 성공 수당을 묻자 그는 “불륜이라고 다 작업 금액이 같은 것은 아니다. 의뢰인과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의뢰인이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일단 만나서 금액을 조정해야 한다”며 거래를 재촉했다.

의뢰인과의 계약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현금 거래가 원칙이다. 통장 거래를 할 경우 입출금은 대포통장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실명 통장을 이용하면 수사기관 등에 추적당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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