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를 얕봤나 고발당한 회장님
  • 엄민우 (mw@sisapress.com)
  • 승인 2013.03.1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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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코리아 회생 방해 관련 증인 채택했으나 불출석

병 치료를 위해 삼켜야 할 약이 있다. 그런데 그 약이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는다. 부작용까지 우려된다. 현재 사조그룹이 처한 현실이다. 최근 사조그룹은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계열사 실적이 급감하고 있는 데다 엔화 약세로 수출도 어렵다. 딱히 묘책이 없는 상황이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자신이 최대 채권자로 있는 화인코리아를 인수해 계열사와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인수 추진 과정이 험난하다. 화인코리아의 회생 절차를 방해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법적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불리한 자료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추가로 날아들었다. <시사저널>은 최근 사조그룹의 계열사 사조인티그레이션과 사조바이오피드가 화인코리아의 회생을 방해하고 있고, 사조그룹이 오너 일가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는 의견서가 공정위에 전달된 사실을 확인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실적 부진으로 고전하는 사조그룹

화인코리아는 1965년부터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축산물 가공판매업을 하고 있다. 국내 오리 시장 점유율 및 오리·삼계 수출 1위를 달리던 알짜배기 향토 기업이다. 화인코리아는 하림에게 특허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고 냉동 포장 삼계탕을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특허 신청은 하림이 먼저 했지만, 그 이전부터 냉동 삼계를 만들어 판매해왔기 때문이다.

화인코리아는 조류독감(AI) 사태로 부도를 맞고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2010년 94억원, 2011년 47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회생을 노리고 있지만 쉽지 않다. 현재 화인코리아는 파산 절차를 진행 중이며 매각 주관사 물색 단계에 있다. 현재 사조측에서 추천한 김현영씨와 화인코리아 추천 인사 김재철씨가 공동대표다. 화인코리아의 실제 대표인 최선 사장은 현재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화인코리아의 최선 전 대표,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 등은 사조그룹이 화인코리아 회생 절차를 방해했다고 주장한다. 계열사를 통해 이 회사 채권을 사들여 회생에 반대하는 방식으로 화인코리아를 파산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회생법에 따르면 담보 채권의 75% 이상 동의가 있어야 회생 인가가 가능하다. 사조그룹은 애드원플러스 등 계열사를 동원해 화인코리아의 채권을 사들여 최대 채권자가 됐다. 결국 화인코리아가 회생하기 위해서는 사조 계열사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화인코리아는 2010년 12월 회생 계획안을 냈으나 부결됐고, 이후에도 회생 절차를 진행하려 했지만 의결권 37% 이상을 보유한 사조대림, 사조바이오피드 등이 회생 절차 개시를 반대해 무산됐다.

최선 전 화인코리아 대표이사는 사조그룹이 회사 회생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 연합뉴스
경실련 등 사조그룹 공정위에 신고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사조그룹에게 화인코리아 인수는 절실하다.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사조오양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011년에 비해 14% 줄어들었고 사조해표는 무려 67%의 영업이익 감소세를 보였다. 사조오양은 축산물 사료업체 사조바이오피드와 양계·축산업체 사조인티그레이션의 대주주다. 이 두 계열사가 적자에 시달려 사조오양은 자금을 투입하고 지급 보증도 해줬다. 화인코리아를 인수하면 사조바이오피드의 사료 공급처가 생기고, 양계 사업 부문을 강화할 수 있다. 이는 수산업에 치우친 그룹 매출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경실련과 화인코리아측은 회사 회생 방해 건으로 사조그룹과 관련 계열사를 공정위에 신고한 상태다. 그런데 최근 해당 건에 대한 추가 의견서가 공정위로 전달됐다. 사조인티그레이션과 사조바이오피드가 화인코리아의 회생을 방해했고, 부당 내부 지원과 관련돼 있다는 내용이다.

최선 전 화인코리아대표측은 추가 의견서에서 ‘사조인티그레이션이 사조그룹으로부터 거액의 자금 지원을 받아 화인코리아 채권을 매입해 회생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또 ‘동종 업종인 축산업에서 화인코리아의 매출과 이익을 그대로 빼앗는 불공정 행위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사조바이오피드도 화인코리아 채권 매입을 방해해 회생을 방해한 곳으로 지목했다. 그 외에도 해당 의견서에는 주진우 회장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건은 공정위가 심사하고 있는데, 부정적인 결론이 나올 경우 사조그룹이 화인코리아를 인수하는 것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선 전 화인코리아 대표는 “공정위에서 시정 조치 결론이 나오면 회생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진우 회장에게 또 다른 악재가 겹쳤다. 국회 정무위원회(정무위)는 3월4일 국정감사(국감) 불출석자 7명을 고발하기로 했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회장, 손문영 전 현대건설 전무 등과 함께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도 끼어 있다. 이전에는 국감에 불출석할 경우 약식 기소 처분을 받고 벌금형 정도로 마무리되는 일이 잦았는데, 최근엔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미 약식 기소를 받아 벌금형을 받은 재벌 총수도 다시 정식 재판에 회부되고 있다. 최근 법원은 국감에 출석하지 않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을 모두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이런 추세를 보면 이번에 똑같은 사유로 정무위에 고발 조치된 주진우 회장도 비슷한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김승유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은 해외 출장을 들어 국감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들은 국감 불출석 사유서를 작성하고 해외 출장 비행기표까지 첨부하는 등 불출석 이유를 해명하는 데 힘썼다. 하지만 주진우 회장은 국감 불출석에 대한 사유서를 제출하지 않은 채 대리인 출석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무위 소속 관계자는 “주진우 회장으로부터 사유서를 받지 못했다. 당시 해외에 있지도 않았는데 일정이 있다며 대리 출석을 요구하다가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최근 정국은 기업들에겐 살얼음판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기업들은 사정기관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움직이며 눈치를 보고 있다. 골목상권 장악, 중소기업 팔 비틀기 등 ‘경제 민주화’와 관련된 부분에서 특히 더 조심하는 분위기다.

법원에서는 지난해부터 대기업 총수에 대해 사정을 봐주지 않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지난해 초 태광그룹 일가에 실형이 내려졌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도 법정 구속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는 “일감 몰아주기 기준을 명확히 만들것”이라며 벌써부터 칼을 갈고 있다. 공정위 또한 법원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에 대해 강경한 기류가 감지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그룹 총수가 고발당한 사조그룹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지 주목된다. 사조그룹 관계자는 화인코리아 인수 및 정무위 고발 등에 대해 “법무법인에서 진행하고 있는 건이고, 지금 시점에 딱히 뭐라고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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