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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도 돈이 정치 주무른다

전인대·정협 대표 중 10억 달러 이상 자산가 83명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 기고가 ㅣ | 승인 2013.03.19(Tue) 14: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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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1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 앞 인민대회당. 전체회의 투표를 마치고 출입문을 나서는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위원들 가운데 유달리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미국 프로농구(NBA) 스타 야오밍(姚明·33)이었다. 신장 229㎝의 거구는 2237명의 정협 위원 중 단연 돋보였다.

야오밍에 이어 문을 나선 얼굴들을 살펴보니 중화권 유명 스타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듯했다. 세계적인 인기 영화배우 청룽(成龍), 중국 최고의 희극 배우 자오번산(趙本山),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영화감독 천카이거(陳凱歌)와 펑샤오강(馮小剛), 중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모옌(莫言) 등 내로라하는 문화예술계의 거장이 모였다.

이날 정협에서 통과된 안건은 중국의 미래를 좌우할 최고 지도자 중 한 명을 뽑는 일이었다. 위정성(兪正聲)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중국 국가 서열 4위이자 앞으로 5년간 정협을 이끌어갈 주석으로 공식 선출됐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주석 선출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난해 11월 공산당 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위정성은 당 정치국 상무위원 중 유일하게 2월 초 발표된 12기 정협 위원 명단에 포함됐다. 이는 위정성이 정협 주석에 내정됐음을 의미했다. 실제 투표 결과에서도 찬성 2188표, 반대 4표, 기권 1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2013년 3월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인민정치협상회의에 참석한 농구 스타 야오밍(왼쪽)이 다른 참석자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 ⓒ Xinhua 연합
중국 갑부들, 정협으로 ‘헤쳐 모여’

정협은 사회주의 중국이 건국될 때 의회 역할을 했다. 1949년 9월 만들어진 뒤 임시 헌법 성격을 지닌 정협 공동강령과 정부 조직법을 제정했다. 수도를 베이징(北京)으로, 국기를 오성홍기로, 의용군행진곡을 국가로 정한 것도 정협이었다. 1기 정협 주석에 뽑힌 마오쩌둥은 국가주석이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1954년 9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출범한 뒤 위상은 다소 축소됐지만 여전히 정책자문기관으로 기능하고 있고 통일전선 업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임기 5년의 정협 위원은 공산당원뿐만 아니라 민주당파 8개, 무당파 및 사회 각계 인사, 소수민족, 홍콩·마카오·타이완 및 화교 대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협 지도부는 실질적인 권력은 없지만 부주석은 부총리, 상무위원은 부장과 동급 대우를 받는다. 이번에 선출된 23명의 부주석을 보면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는데, 개국 원로인 천윈(陳雲)의 아들 천위안(陳元)을 비롯해 링지화(令計劃) 통일전선공작부장, 왕자루이(王家瑞) 대외연락부장 등이 부주석으로 뽑혔다.

299명의 상무위원은 더 화려하다. 개혁·개방의 설계자인 덩샤오핑의 딸 덩난(鄧楠), 리셴녠(李先念) 전 국가주석의 딸 리샤오린(李小琳) 등 태자당 다수가 포진해 있다. 천더밍(陳德銘) 상무부장, 장웨이신(姜偉新) 주택건설부장 등 각 부서 부장도 상무위원에 선출됐다. 이 중 가장 주목받은 사람은 리저쥐(李澤鉅·빅터 리)다. 리저쥐는 홍콩 최대의 재벌 청쿵(長江)실업 부회장이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리카싱(李嘉誠)이다.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은 지난해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100대 부호 중 9위에 오른 인물이다. 추정 재산만 255억 달러(약 28조원)에 달한다. ‘홍콩에서 1달러를 쓰면 5센트가 리카싱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자산(약 83억 달러)과 비교해보면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리저쥐는 리카싱의 장남으로 청쿵그룹의 실질적인 오너다. 지난해 7월 리카싱은 둘째 아들 리저카이(李澤楷·리처드 리)가 갖고 있던 청쿵그룹 지주회사의 지분 3분의 1을 리저쥐에게 이전했다. 이를 통해 리저쥐는 기존에 보유하던 지분 3분의 1을 포함해 전체 지분의 3분의 2를 확보했다. 지난해 말 그의 재산 규모는 2900억 홍콩달러(약 41조원)로 늘어나 아버지의 재산을 뛰어넘었다. 이런 리저쥐가 정협 상무위원으로 선출되면서 권력까지 거머쥐게 된 것이다.

부와 권력을 한 손에 움켜쥔 정협 위원은 리저쥐 외에도 수두룩하다. 인밍산(尹明善) 리판(力帆)그룹 회장도 그중 하나다. 중국 부자 연구 기관인 후룬(胡潤)연구소에 따르면 인 회장의 재산은 12억 달러(약 1조3200억원)에 달한다. 인 회장은 중국 100대 부자 중 한 명이지만, 충칭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은 엄청나다. 2003년 충칭 시 정협 부주석으로 뽑혀 개혁·개방 이래 성급 정치 지도자가 된 첫 민영 기업가다. 여기에 충칭 시 공상업연합회 회장과 중국 민영기업연합회 부회장도 맡고 있어 대표적인 ‘붉은 자본가’로 통한다. 인 회장은 과거 이력이 특이한 인물이다. 1958년 ‘반혁명 우파분자’로 몰려 무려 22년간 강제수용소와 교도소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출소 후 55세에 창업했는데 오늘날 충칭 최대의 자동차·오토바이 제조회사인 리판을 일궜다.

이들을 포함해 전인대와 정협에서 활동하는 자산 10억 달러 이상 갑부는 83명에 달한다. 3월8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들 갑부 집단을 분석해 ‘전인대에 31명, 정협에 52명이 참석 중이다’라고 보도했다. 1년 전 전인대에 28명, 정협에 43명 등 모두 71명이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17%나 증가한 숫자다. 이번 양회에 참석한 갑부 83명의 재산은 평균 33억5000만 달러로 추산되는데, 미국의 경우 상·하원 의원 535명 중 자산을 10억 달러 이상 가진 의원은 한 명도 없다. 최고 갑부인 마이클 맥콜(공화당) 하원의원의 재산도 3억 달러에 불과하다.

“류샹은 들러리” 비판도

문화예술계 유명인이나 부자들이 양회 대표가 되는 현상이 반드시 나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펑샤오강 감독의 경우 수차례에 걸쳐 “중국 당국의 터무니없는 검열이 창의성을 해치고 있다”고 비판한 인물이다. 3월6일 정협 문화예술분과에 참석한 그는 “그동안 금기시됐던 문화대혁명을 소재로 한 영화 촬영을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 자산 12억 달러인 쭤중선(左宗申) 중선그룹 회장은 환경분과에 참석해 “토양의 질은 국가 기밀도 아닌데 정부가 당연히 공개해야 할 내용을 비밀로 만들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일부 인사가 중국 정부를 향해 내뱉는 쓴소리는 찻잔 속 회오리에 불과하다. 지난 1월 홍콩 대표로 정협 위원에 뽑혀 논란을 일으킨 유명 영화배우 겸 감독인 저우싱츠(周星馳)는 이번에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스포츠 스타 류샹(劉翔)도 2007년부터 정협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회의 참석을 거의 하지 않는다. 중국 남방도시보는 이런 류샹을 “정협의 들러리 위원”이라고 비꼬았다.

짧은 시일 내에 부를 축적한 중국 부자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정치적 특권까지 거머쥔 부자들의 영향력을 살피며 상속세 시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중이다. 중국 정부가 민중들과 소통하는 유일한 정치 마당이라고 주장하는 양회가 부자들의 입김에 흔들린다면, 부정부패 척결에 나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개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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