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 초 교실은 으르렁대는 ‘정글’
  • 이규대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3.2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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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 내 권력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다툼

최근 학교폭력 문제를 둘러싸고 ‘서열 정하기’ 문화가 이슈로 떠올랐다. 요즘과 같은 학년 초 무렵, 새로 한 반이 된 중·고등학생들이 위계를 정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문화를 가리킨다. 싸움에 이긴 학생은 패한 학생보다 학급 내 권력 관계에서 우위에 선다. 폭력을 매개로 학급 내에서 학생들이 피라미드식 서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번 경북 경산 고교생 자살 사건에서도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힘의 위계 관계가 있었다.

교실 내 서열 정하기 문화는 얼마나 심각한 것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일선 교사, 학생, 청소년 상담 전문가 등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에 따르면 앞서 지적한 형태로 폭력과 서열이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은 다소 극단적인 사례라고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이 있다. 지금 교실에는 학생들 사이에 불평등한 위계질서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그 질서는 대부분 학년 초에 형성된다는 점이다.

학급 내 권력으로부터 소외받는 학생은 정신적 고립 상태에 처하기 쉽다. ⓒ 시사저널 전영기
남학생은 ‘위계 서열’, , 여학생은 ‘집단 대립’

김승혜 청소년폭력예방재단 부장은 “어떤 집단 안에서 서열을 의식하는 모습은 어른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이것이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진다고 해서 ‘서열 정하기’로 낙인찍어 비난하는 것은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학생들 사이의 위계질서 문화가 일반적인 경우와 어떻게 다른지, 그것이 왜 심각한 문제로 이어지는지를 좀 더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매년 3월, 학년 초에는 배나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거나 조퇴를 요구하는 학생이 많다. 새로운 대인관계에서 겪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이현숙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연구지원팀 상담원은 “상담 내용을 월별로 분석해보면 학기 초에는 친구 사귀기 및 대인관계 문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때 어떤 친구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짧게는 1년, 길게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신의 권력적 위상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수직적인 서열 정하기는 주로 남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나타난다. 일종의 파워게임 양상을 띤다. 특히 상급학교로 진학하며 인간관계가 전면 개편되는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초가 가장 심하다. 각자 서로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른바 ‘센 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서열이 불분명한 상황은 곧잘 싸움으로 이어진다. “쟤가 와서 시비를 거는데 쫄 수는 없으니, 맞서 대거리하다 한판 붙는 식”이다. 학기 초 이런 싸움이 거듭되면서 위계가 정리된다. 꼭 물리적인 다툼이 아니더라도 힘이 있는 학생들이 주도권을 잡는 과정에서 서열이 암묵적으로 정해지는 경우도 많다.

반면, 여학생의 경우에는 ‘집단 대립형’이라는 점에서 남학생과 차이를 보인다. 한 반에서 주도권을 가진 학생들이 각자의 무리를 만든다. 그러면 그 무리에 구성원이 출입을 반복하며 힘겨루기를 한다. 무리와 무리가 대립하는 경우도 있고, 무리 내 학생들끼리 갈등을 보일 때도 많다. 바로 어제까지 어울려 놀던 친구들이라 해도 어떤 계기가 발생하면 곧 ‘뒷담화’를 시작하며 따돌리는 식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교실 풍경 급속 변화

물론, 과거 교실에서 이러한 모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선 교사들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 이후 질적으로 달라졌다고 한다. 과거에는 교실 내 권력이 약한 학생이라도 인간관계 전반이 파괴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권력적으로 소외받는 학생은 완전한 고립 상태에 놓인다고 한다. 한 반에서 ‘만만한 인물’이 되면 단순히 힘 있는 학생들로부터 억압받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 그 아래 계층의 학생, 심지어는 같은 약자 그룹 내부에서조차 배제당한다. 그 모든 비극의 씨앗이 학년 초 약 한 달여의 짧은 시간에 잉태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반의 권력자들이 만드는 주류적 분위기에서 이탈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한다. 속된 말로 ‘찌질이’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재미없는 애로 찍히는 것, 무슨 말을 하면 바로 무시당하는 애가 되는 것을 피하려 몸부림친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장 아무개군(17)의 얘기다.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공부만 좀 하고 다른 것들은 잘 못하는 캐릭터’가 된 적이 있다. 이대로 계속 반에서 소외되는 것이 두려웠다.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을 열심히 하고, 게임에도 일부러 관심을 가지면서 겨우 극복했다. 반면, 예전의 나처럼 반 공통의 관심사를 따라잡지 못하는 애들은 학교생활을 힘들게 했다.”

전문가들은 교실 속의 일상적 관계가 매우 불평등한 형태로 왜곡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일반적인 집단과 달리 권력적으로 소외된 학생의 인간관계를 완전히 파괴한다는 점에서 문제라는 것이다. 그 위계질서는 대부분 학년 초에 처음 대인관계를 맺을 때 형성된다. 이 시기에 ‘평등 교실’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경기 부천시 소사고등학교에 근무하는 박종철 교사는 “교사의 권위와 역량을 바탕으로 교실 분위기를 평등하게 바꾸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일단 학기 초에 학생들 사이의 관계가, 평등한 교실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평소 가해 성향을 보이는 학생도 다른 친구들을 못 괴롭힌다. 피해자였던 학생도 파괴된 대인관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천 소사고의 박종철 교사(사진)는 학교폭력 문제를 고민하는 여러 교사들과 함께 ‘따돌림사회연구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처하는 교사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실천적인 방안을 모색해왔다. 그런 박 교사가 제안하는 학년 초 ‘교실 평화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핵심은 학생이 주체가 되어 민주적 합의를 통해 교실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다.


■ 권위적 ‘급훈’ 대신 공동의 ‘학급 목표’를 세워라

대부분 급훈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정하고 있다. 이보다는 학년 초에 학생들과 함께 학급 목표를 만들어보는 것이 좋다. 학생들에게 직접 ‘우리 반이 어떤 반이 되었으면 좋겠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러면 ‘따돌림 없는 반’ ‘학교폭력 없는 반’ ‘단합 잘 되는 반’ 같은 대답이 절반 이상 나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학급 목표가 그런 방향으로 정해진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 반의 학급 목표는 ‘학습 분위기 좋은 반’ ‘화목한 반’이다.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욕구들이 목표로 만들어지면 거기에 상당한 힘이 실리게 된다.

■ 학생들과 함께 평화 규칙을 만들어라

평화로운 학급을 만들기 위해 지켜야 할 규칙을 내부적으로 합의하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는 조용히 수업에 집중하자’ ‘서로 욕하지 말자’ ‘친구에게 심부름을 시키지 말자’ 같은 식이다. 그것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직접 참여해서 만든 규칙은 힘이 세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반 공동체의 눈치를 자연스럽게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규칙을 만들고 나면 일정 기간을 두고 학급 전체가 점검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져야 한다. 설문조사 방식이 좋다. 잘 지킨다는 평가가 많은 학생에겐 칭찬을 하고, 어겼다는 지적이 많은 학생에겐 친구들을 대상으로 “미안하다, 앞으로는 잘 지키겠다”라며 공식 사과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라.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학생들 사이에서 부끄러운 일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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