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점령군으로 착각하는가
  • 경기 동두천·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3.2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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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사건 잦은 미군 부대 주둔지에서는 지금

동두천은 평택과 더불어 대표적인 주한미군 주둔지다. 3월16일 오전 6시20분쯤 동두천시 보산동 관광특구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다. 외국인 전용 클럽을 운영하는 한국 상인과 그의 지인인 한국계 주한미군 등이 미군들과 칼부림을 했다. 최근 들어 미군들의 범죄가 심상치 않다. 서울을 비롯한 도심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3월19일 저녁 <시사저널> 취재진은 칼부림 난동이 일어난 동두천을 찾아갔다. 기지촌이야말로 주한미군과 가장 긴밀하게 호흡하는 공간이자, 그들이 일으킨 사건·사고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알파벳으로 이름을 새긴 간판들, 그 앞을희거나 검은 피부를 지닌 훤칠한 키의 외국인 남성들이 지나간다. 그들의 머리털은 짧다. 체격은 다부지다. 이곳이 미군 부대 인근의 ‘기지촌’이라는 사실이 실감난다. 하지만 인적은 몹시 드물다. 약 10분간 거리를 돌아다니면 고작 2~3명 정도 마주치는 식이다. 번쩍거리는 네온사인이 무색할 정도다. 거리 전반에는 저물어가는 유흥가 특유의, 한껏 곰삭은 퇴폐적 분위기가 번져 있다.

이곳은 동두천 외국인관광특구. 지난 60여 년 동안 미군기지 주변의 유흥 문화를 이끌어온 ‘기지촌 1번지’다. 기지촌이 이렇듯 한산한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 수도권 각지에서 미군들의 난동이 잇따르면서 장병들의 음주 금지령과 주말 휴가 금지령이 내려진 탓이다.

3월19일 동두천시 보산동 관광특구 거리를 외국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전과자·갱 전력자 등 유입

미군 범죄 문제의 일차적인 원인은 당사자인 미군 병사 자신들에게 있다. 수십 년간 미군 병사들을 상대해온 기지촌 상인들은 최근 미군들이 과거에 비해 교육 수준이나 폭력성 면에서 부정적인 모습이 많다고 전했다.

기지촌 인근에서 수십여 년간 식당을 운영해온 이 아무개씨(66·여)는 “요즘 미군 병사들이 과거에 비해 좀 더 무지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옆에서 술집을 하는 아저씨의 말을 들어보니 이라크(전쟁)에 갔다 온 병사들이 상당히 많다고 하더라. 그런 병사들 중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클럽을 운영하는 한 50대 남성은 “국내 여론이 만만치 않다 보니 미군 범죄가 발생했을 때 이를 처리하는 절차는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병사들의 의식 자체는 과거보다 좋지 않다. 예전엔 좀 배운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지금은 자기 이름도 제대로 못 쓸 정도로 교육받지 못한 군인이 상당수다. 전쟁터에 있었던 병사도 많다”고 말했다.

미군 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동두천경찰서 관계자는 “한국 경찰은 범죄를 저지른 미군의 (미국에서의) 범죄 이력 등 신원을 조회할 수 없다. 그런데 잡혀온 미군들끼리 서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국에 있을 당시 ‘전과가 있었다’ ‘갱 생활을 했다’ 등의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고 밝혔다.

술집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요즘 도심 지역 상가에는 대부분 ‘셔터’가 없지 않나. 하지만 여기서는 필수다. 밤에 술을 먹고 자기 분을 못 이겨 가게 유리를 깨거나 문을 부수는  미군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현장의 말을 종합해보면, 과거에 비해 미군들의 교육 및 인성 수준이 더 낮아졌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군 당국이 좀 더 철저히 병사들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질타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이 지역 토박이로 현재 클럽을 운영하는 유기선씨(40)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미군들의 외출·외박 시 위수지역 제한이 없어졌다. 아무리 군부대가 주변 지역 순찰을 강화한다 해도 병사들의 이동이 자유스러우니 행동을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 위수지역 제도를 다시 도입하고 인근 부대의 관리·감독만 강화해도 미군 범죄는 절반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3월19일 오후 동두천시 미군 부대 주변에 옷을 사러 나온 미군들. ⓒ 시사저널 임준선
잊힐 만하면 반복되는 미군 범죄

그런데 주민들의 반응 중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수십 년간 미군과 부대끼며 살아온 이들 사이에는, 미군기지가 있는 한 미군 범죄 또한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지난 수십 년 경험의 결과다. 사건 직후 아무리 강경한 대책이 나온다 해도 곧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곧 부대의 통제로부터 일탈한 미군에 의해 범죄가 또다시 거듭될 것이라는 얘기다.

과거 13년간 미군 부대에서 군무원으로 근무했던 주민 원 아무개씨(72)는 “아무리 범죄를 막으려 해도 사회 구조상 범죄는 끊임없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미군 범죄는 과거에도 많았고, 앞으로도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60대 주민 또한 “수십 년간 장사를 해온 우리들은 미군 범죄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안다. 그래서 미군 범죄로 세상이 떠들썩해도 놀라거나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군 당국은 미군 범죄가 불거질 때마다 병력의 행동 통제, 합동 순찰 강화 등 예방책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미군 범죄는 잊힐 만하면 끊임없이 반복된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곧 수습책이 마련되는 패턴이 쳇바퀴 돌듯 계속될 뿐이다. 그 과정에서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에 불리한 형태인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고려하면 미군 범죄 피해자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위험성 또한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박정경수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인권오름>에 기고한 글에서 ‘미군 범죄의 모든 원인을 병사 개인의 폭력성에만 돌리는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경우 가해자에 대한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주한미군 범죄가 발생하는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로 한반도에 미군기지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안보 현실 자체다.

한국이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전제조건은 북한과의 대치 상황이다. 결국 반복되는 미군 범죄는 대북 안보를 위해 ‘미군기지 유지’라는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한국의 국방 현실을 보여주는 셈이다. 한반도에 평화 체제가 정착되지 않고서는 미군 범죄 문제 또한 궁극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북한에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남북한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도심으로 진출하는 미군들   

미군 범죄를 둘러싸고 눈길을 끄는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또 있다. 취재진이 접촉한 기지촌 상인들은 하나같이 “요즘 미군들은 여기를 잘 찾지 않는다”고 했다. 6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기지촌 상권이 사실상 죽은 상태라는 것이다. 현재 미군들 사이에는 부대 인근의 기지촌보다는 신시가지나 서울 중심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교통의 발달 때문이다. 수도권 전체에 깔린 광역 전철은 동두천·평택 등지의 미군들을 서울 시내 중심가로 유인하고 있다. 과거 미군들을 제약했던 위수지역 규정도 없어졌다.

지금 기지촌은 급속히 경계를 잃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군 범죄의 잠재적 위험 지역 또한 크게 확대됐다. 실제로 2011년 동두천에서 10대 여성이 성폭행당한 사건은 전통적 의미의 기지촌이 아닌 신시가지에서 발생했다.

최근 이어진 미군 범죄 역시 서울의 주요 번화가인 홍대 앞과 이태원 등지에서 발생했다. 사실상 전시 체제인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어쩌면 모두가 ‘기지촌’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정경수 사무국장은 “미군 범죄를 이야기할 때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지친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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