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건 한족이 싹쓸이 우린 허드렛일만 해”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 기고가 ()
  • 승인 2013.03.2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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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왜 살인 사건 계속되나

“한족은 신장(新疆)에서 이등 민족이다. 각종 우대 정책이 소수민족만을 위해 시행된다. 이는 소수민족의 우월감만 키워주었을 뿐이다. 오랫동안 그들은 한족을 우습게 여겼다. 이제 정부는 소수민족에 대한 배려를 취소해야 한다.”

(3월8일 ‘자유아시아방송’의 한족 네티즌아이디 ‘blue1188’)

“이번 사건은 반세기 이래 중국 정부가 저지른 위구르족 차별 정책이 낳은 참극이다. 지금 신장 남부에는 계엄령이 내려져 있고 수십 명의 위구르족이 영장 없이 체포되고 있다.”

(3월9일 세계위구르회의(WUC) 딜사트 하시트 대변인)

 

중국 최대 정치 축제인 양회(兩會, 전인대와 정협)로 한창 떠들썩했던 3월7일, 신장·위구르 자치구 코를라(庫爾勒) 시 상업지구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흉기를 든 위구르족 3명이 행인을 습격해 5명이 숨지고 7명이 다친 것. 회족과 위구르족 각각 1명을 제외한 사상자 모두 한족이었다.

투르판 야시장에서 양고기 꼬치를 파는 한 위구르족. 한족에 밀려 고향을 떠난 위구르족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직업이다. ⓒ 모종혁 제공
한족 소득, 소수민족보다 17배 많아

3월9일에는 호탄(和田) 시에서 한 남성이 파출소를 습격하고 달아났다. 그 뒤 신장 남부 일부 도시에서는 야간 통행금지가 실시됐다. 중국 정부는 언론 통제에 나서 관련 보도를 철저히 막고 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게재된 글과 사진도 모두 삭제하고 있다.

현지 공안 당국은 코를라에서 발생한 범죄가, 도박 문제로 가족과 다툰 위구르인이 홧김에 저지른 범행이라고 뒤늦게 발표했다. 중국 네티즌 사이에는 “끊임없이 만행을 저지르는 위구르족을 응징하자”는 목소리가 드높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실크로드의 땅’으로 알려진 신장에서 분란이 끊이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신장의 민족 문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곳 현실을 알아야 한다. 신장의 면적은 166만㎢로 중국 전체의 6분의 1을 차지한다. 국경선이 중국에서 가장 길어 무려 8개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신장은 이처럼 거대하지만 인간이 살기에 쉽지 않은 자연 환경을 가졌다.

신장의 인구 밀도는 아주 낮다. 2010년 중국의 제6차 전국 인구 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신장 전체 인구는 2181만명을 넘어섰다. 이 중 한족이 874만명으로 40.1%를 차지했다. 터줏대감인 위구르족은 923만명(45.9%)으로 가장 많다. 통계상 드러난 인구에서는 한족이 적지만,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뒤 그 수가 급증했다.

1949년 전체 인구 433만명 중 한족은 6.7%에 불과했다. 1955년에도 그 비율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1962년 란신(蘭新) 철도의 개통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1973년 35.1%로 급등하더니 1982년에는 40%를 넘어섰다. 이에 반해 위구르족은 1955년 73.9%, 73년 51.1%, 82년 45.9%로 해마다 줄어들었다. 위구르족은 이런 변화를 가리켜 “한족은 기차가 낳고 위구르족은 사람이 낳는다”고 풍자했다.

지난 30년간 민족 구성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통계상 허점이 있다. 인구 센서스에 산출된 조사 대상자는 ‘상주’ 주민 수다. 임시거류증 없이 일하는 외지인이나 생산건설병단에 소속된 군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생산건설병단은 농장이나 기업을 운영하면서 생활하는 준군사 조직으로 오직 신장에만 있다.

모든 외지인과 병단원 90% 이상은 중국 내지에서 온 한족이다. 1982년 이전에는 개혁·개방 정책이 시행되지 않아 중국인의 거주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경제 성장이 가속화되면서 내지의 한족이 신장으로 급속히 이주해왔다. 그 수가 적게는 수십만 명에서 많게는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족이 신장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자리가 많고 직장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인 우루무치(烏魯木齊)를 비롯해 스허쯔(石河子), 카라마이(克拉瑪依) 등 북부 도시가 대표적이다. 이 중 카라마이는 우루무치에서 서북쪽으로 300㎞ 떨어진 곳으로 위구르어로 ‘검은 기름’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1955년 대규모 유전이 발견돼 1957년부터 채굴을 시작했다. 지금은 한 해 2000만톤의 원유가 생산된다. 도시 주변에는 줄지어 서 있는 석유 시추기를 흔히 볼 수 있다. 도심에서 2㎞ 떨어진 헤이요 산(黑油山)에서는 땅에서 솟아나온 검은 원유가 샘처럼 고여 있는 장관도 연출된다.

란신철도의 복선 공사는 신강 지역에 한족 유입을 가속화했다. ⓒ XINHUA 연합
지하자원 개발 이익은 모두 한족 차지

‘블랙 골드’인 석유 덕분에 카라마이는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부자 도시가 됐다. 2011년 1인당 GDP는 12만9000위안(약 2322만원)으로 내몽골 자치구 오르도스(鄂爾多斯)에 이어 전국 2위다. 우루무치보다도 2.45배 높은 수치다. 3월13일 <중국경제주간>이 발간한 <중국 도시화 품질 보고>는 조사 대상 286개 도시 중 카라마이를 경제 및 공간 환경이 좋은 네 번째 도시로 꼽았다.

흥미로운 점은 카라마이의 민족 구성이다. 2010년 현재 카라마이의 전체 인구는 39만명. 이 중 한족이 31만9000명으로 81.6%에 달한다. 소수민족이 주로 사는 농촌의 1인당 GDP는 1만 위안(약 180만원)에 불과하지만 이 도시는 무려 17만 위안이다.

경제 발달로 일자리가 풍부한 도시에 한족이 몰리는 현상은 신장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 유혈 사건이 일어난 코를라도 같다. 코를라는 타림 분지에 위치한 지하자원의 보고다. 중국에서 4대 천연가스, 6대 석유의 생산지다.

1979년에야 시로 승격돼 개발이 진행됐음에도 지금은 신장 남부에서 가장 크게 발달하고 사회간접자본이 잘 갖춰졌다. 2011년 1인당 GDP도 7만6000위안(약 1373만원)에 달한다. 2010년 현재 코를라의 전체 인구는 60만명. 이 중 한족이 71.6%로 가장 많고 몽골인과 위구르인이 나머지 절반씩을 차지한다.

코를라는 바인궈렁(巴音郭楞) 몽골 자치주의 주도다. 코를라의 원주민 중에는 몽골인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을 위구르인이 차지했다. 하지만 천연가스와 석유가 발견된 뒤 한족이 밀려들면서 지금은 ‘몽골 자치주’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다.

신장 내 기업과 상점은 직원을 채용할 때 의사소통이 용이한 한족을 선호한다. 위구르족은 표준어인 보통 말이 서투른 데다 무슬림이라 경계의 대상이 된다.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의 개발·관리·수출 등에 종사하는 인력은 모두 한족이다. 위구르족은 취직이 된다 하더라도 청소부나 식당 종업원 등 급여가 낮은 허드렛일을 주로 한다. 우루무치에서 만난 한 위구르족 대학생은 “지역 최고 명문인 신장 대학을 졸업해도 중견 기업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다. 차별이 없는 주변 중앙아시아 국가로 가서 무역업을 하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했다.

한족이 점유하는 곳은 신장 북부와 코를라뿐만이 아니다. 신장 남부의 주요 도시도 한족으로 채워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카슈가르(喀什)다. 중국이 지배하기 전 카슈가르에는 악수(阿克蘇), 호탄과 더불어 위구르인의 비율이 95% 이상이었다.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민족 구성비가 완전히 달라졌다. 2010년 현재 전체 인구가 50만명인 카슈가르에서 한족이 30%를 넘어섰고, 34만명인 악수에서는 한족이 43%를 차지한다. 적지 않은 유동 인구를 더할 경우 그 비중은 훨씬 높아진다.

한족이 중국 최서단 카슈가르를 찾는 배경에는 기차와 개발 붐이 있다. 1999년 우루무치에서 카슈가르까지 1446㎞의 남강(南疆)철도가 개통됐다. 남강철도는 코를라, 쿠차(庫車), 악수를 거쳐 카슈가르에 이른다. 철로가 부설되기 전 코를라를 제외한 모든 도시의 한족 점유율은 10% 안팎이었다.

2011년 10월 발표한 경제특구(SEZ) 계획은 광풍이 되어 한족을 유혹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카슈가르에 50㎢ 규모의 특구를 조성해, 물류·전자·섬유·건설 자재 등을 핵심 산업으로 키울 예정이다. 이를 위해 2015년까지 기반 시설을 설치하고 파키스탄 및 키르기스스탄을 잇는 철도도 건설할 계획이다. 진출하는 기업에게는 기술과 인력 지원, 세금 감면 등 각종 우대 정책을 제공한다. 특구 설립 발표 전부터 카슈가르에는 일확천금을 노리며 돈다발을 들고 온 동부 연해 지방의 투자자와 투기꾼들이 붐비고 있다. 이들로 인해 카슈가르의 부동산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뛰어오르고 있다.

터전 빼앗긴 위구르족, 극단적 불만 표출

하지만 위구르족의 반응은 차갑다. 전통 촌락에 사는 베린마르트 씨(40)는 “부동산값이 뛰어도 한족 거주지에 한정될 뿐이다. 외지 기업이 진출해봤자 한족만 고용할 뿐이기에 우리에겐 아무런 혜택도 없다”고 말했다. 카슈가르는 도심에 자리 잡은 위구르족 촌락과 전통 가옥을 허물고, 주민들을 외곽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한족이 밀려들어와 개발 이익을 독차지하는 현실에 위구르족은 극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지난해 2월28일 카슈가르 예청 현에서는 9명의 위구르족이 흉기를 휘둘러 한족 13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공안 당국은 “분리·독립단체 조직원이 저지른 테러”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틀 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한족이 급증하는 상황 아래 위구르족은 중무장한 공안과 군대에 맞서기 힘들어 한족 주민을 대상으로 분풀이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위구르족은 “태어나 18세가 될 때까지 한족을 거의 못 봤지만 지금은 예청 현 전역에 한족이 살고 있다. 한족은 우리의 빵을 먹고 우리의 일자리를 가져가며 우리의 집을 차지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최근에는 농촌에까지 한족이 스며들고 있다. 3월11일 RFA는 “지방 정부는 한족에게 종자와 비료를 공급해주고 농기구를 무료로 대여해준다. 각종 혜택 덕분에 한족이 농지를 넓혀가면서 위구르 농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신장 농민의 1인당 순수입은 6500위안(약 117만원)으로 전국 평균 6977위안보다 낮았다. 이 중 비농업 부문 수입은 35.6%로 전국 평균의 절반에 불과했다. 비농업 부문 수입의 대부분은 외지에 나가 농민공으로 일하는 가족이 보내주는 돈이다.

한족은 정부 지원으로 황무지를 농토로 개간하고 위구르족의 땅을 헐값에 매입하고 있다. 위구르족의 78%가 농민이다. 터전을 잃은 위구르족 농민은 신장 도시나 중국 내지를 유랑한다. 이들이 가장 손쉽게 선택하는 직업은 양고기 꼬치 장사다. 이마저도 도시에서는 경쟁이 심해 내지 농촌이나 오지까지 들어간다. 문제는 인종·종교·문화·풍습 등이 전혀 다른 위구르족이 각지의 한족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족은 위구르족에 대해 ‘사납고 거칠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발생하는 범죄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배척한다.

이처럼 신장에서 잇달아 일어나는 유혈 사건의 원인은 분리·독립 세력의 준동에 있지 않다. 한족의 급격한 유입과 지역 불균형, 한족과 위구르족 간의 심각한 경제 격차, 위구르족에 대한 편견과 배척 등 경제·사회적 갈등에서 비롯됐다. 분리·독립에 동조하는 위구르족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수는 모래 한줌에 불과하다.

지난 30년여 간 신장의 GDP는 매년 10% 이상 성장해 중국 평균보다 높았다. 그러나 같은 기간 1인당 GDP의 증가 속도는 8%로 중국 평균보다 낮았고, 위구르족은 그 성장의 혜택에서도 소외당했다.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는 한 신장은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로 중국 정부를 괴롭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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