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간’ 한국 문학, 밥은 먹고 살런지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3.2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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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진출 작가 늘었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

황석영·이문열·김훈·김영하 등 일부 유명 작가들의 작품에 국한됐던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에 희망적인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프랑스의 아시아 문학 전문 출판사 필리프 피키에는 곧 한국의 젊은 작가 네 명의 작품을 번역해 출간한다. 최제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시작으로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김이설의 <환영>, 구병모의 <아가미>가 곧 프랑스 독자와 만날 예정이다.

얼마 전 시집 <Celle qui mangeait le riz froid(찬밥을 먹는 사람)>을 프랑스 서점에 선보인 문정희 시인은 프랑스 문단과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3월22일부터 4월 초까지 열리는 프랑스 대표 시 축제인 ‘시인들의 봄’ 행사에 초청받았다.

공지영 작가도 미국에서 두 권의 영문판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공 작가는 신경숙 작가의 미국 진출을 도운 미국 에이전트와 지난해 초 계약을 맺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도가니> 영문판을 준비하고 있다.

2011년 8월2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신경숙 작가가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된 를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경숙의 성공, 번역 출판에 희망 줘

폴란드에서 출간된 황선미 작가의 장편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은 현지 문학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 그라니차에서 주관하는 ‘2012년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돼 폴란드 서점가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한국 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은 일본에서도 희소식이 들렸다. 이승우 소설가의 <한낮의 시선>을 출간한 일본 출판사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에서 3월 말 ‘이승우의 문학을 읽다’ 심포지엄을 비롯해 다양한 출판 기념행사를 열기로 했다. 이승우 작가의 경우 이전에 번역 출판한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에 대해 일본 유명 작가 에쿠니 가오리와 평론가 가와무라 미나토 등이 주요 잡지에서 호평한 것을 계기로 이번 책이 출간돼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해외에 진출해 호평을 받았던 작가는 황석영, 이문열, 신경숙 등이다. 이 중 신경숙 작가는 <엄마를 부탁해>를 14개국에 진출시키며 ‘문학 한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신 작가는 세계 최대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닷컴’에서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높은 평점을 받으며 ‘이달의 소설(주목할 만한 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신 작가는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맨아시아 문학상’을 받으며 한국 문학 해외 진출의 모범 사례로 꼽혔다.

출판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 소개되는 일본 문학은 연간 900여 종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 문학의 경우 연간 20여 종이 채 되지 않는 실정이다. 한국인으로서 일본 쿠온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는 김승복 대표는 “한류 덕에 많은 일본인이 ‘한국’을 하나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문학을 포함한 한국 출판물이 일본에 소개된 것은 가요 등에 비해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쿠온 출판사는 지난해 한강의 <채식주의자>,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 구효서의 <나가사키 파파> 등을 소개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 문학의 번역 출판이 저조했던 이유는 한국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많은 작가가 일본 독자로부터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작가를 알리고 작품을 제대로 번역해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문 에이전트가 한국 문학을 소개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예는 많지 않다. 신경숙·이문열 등 유명 작가 작품을 에이전트가 해외에 소개한 경우를 빼고는 주로 한국문학번역원이나 대산문화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해외에 소개되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최근 3년 동안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쳤다. 한국 작가들이 해외에 안정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번역 지원뿐 아니라 국제도서전 등에 작가들을 알리고, 작가들이 해외에서 다양한 한국 문학 알리기 행사에 참여하도록 도왔다. 그런 노력의 결실로 올해에는 해외 독자들의 관심이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문학번역원 정진권 교류홍보팀 팀장은 “한국 문학이 해외로 수출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번역이다. 이 작업을 최대한 잘 하도록 해마다 예산을 늘려 지원하고 있다. 한국 작가들이 각 나라 문단이 벌이는 행사나 독자 대상 낭독회 등에 나가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게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작품만 덜렁 서점에 출시하는 식의 옛 방식으로는 한국 문학의 우수성을 알리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물론, 작가의 작품이 뛰어나고 외국 독자로부터 공감을 얻어야 하는 것이 문학의 해외 진출에 첫 번째 전제 조건이다.

3월7일 이문열 작가가 미국 시카고 인근 레이크포리스트 아카데미에서 학생들과 만나 토론 수업을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교재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어 번역본을 미리 읽은 뒤였다. 학생들은 소설의 배경이 1960년대 한국이지만 현재 미국 학교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며 공감했다고 한다. 한국문학번역원과 세종문화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2013년도 미주 지역 한국 문학 독후감대회’ 대상 작품도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독후감대회에는 미국과 캐나다 지역을 통틀어 1000여 명이 참가했다.

ⓒ 연합뉴스
최근의 ‘반짝 호황’은 착시일 수도

번역가와 평론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지금이야말로 한국 문학이 해외에 널리 소개될 호기다. 1990년대 초에 한국 중견 작가들의 작품이 프랑스, 일본 등지에 소개됐지만 상업적으로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승우 소설을 일본에 소개한 번역가 김순희씨는 “일본 독자들은 한국 문학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 황석영 같은 선배 작가들이 분단 소설 등을 냈던 터라 일본에서 한국 문학 하면 한국전쟁·분단 같은 것을 연상한다. 한국문학번역원과 민간 단체의 지원에 힘입어 많은 작가가 일본에 소개됐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결국 이전 선배 작가들이 만들어놓은 선입견을 깨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승우 작가가 호평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근의 반짝 ‘호황’이 착시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오랜만에 두 가지 평론집을 낸 남진우 시인은 세계 문학 속에서 한국 문학의 위상은 ‘아직 존재가 없다’고 표현했다. 중국·일본 문학과 벌어진 격차를 줄이기에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 시인은 해외 독자들의 시선에 들어올 정도가 되는 작가들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이라고 빗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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