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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황석영, “지식인 열의 아홉은 새 정부에 등 돌려”

침묵 끝내고 말문 연 소설가 황석영

조철 기자·정리│이규대 기자 ㅣ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4.09(Tue) 14: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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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씨는 경기도 일산 자택에 머무르고 있었다. 1월 초 한 방송사 라디오 프로그램과 인터뷰한 이후 그는 어느 매체와도 만나지 않았다. 그 방송사가 두 원로 작가를 보수와 진보로 나눠 잇따라 인터뷰하며 싸움 붙이듯 한 행태에 화가 났던 것이다.

기자는 대통령 선거 이후 황 작가에게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고사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서 다시 인터뷰하자고 했더니, 이번에는 흔쾌히 응해줬다.

4월2일 오후 4시 황 작가가 즐겨 찾는 카페 ‘be’에서 만났다. 그는 망설이기라도 한 것처럼 약속 시간을 조금 넘겨 카페에 들어섰다. 자택에서 출판사와 진행하고 있는 작업을 잠깐 멈추고 왔다고 했다. 입던 옷 그대로 입고 왔으니 양해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소설 이야기부터 풀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유럽에 간다고 들었다. 무슨 일로 가나?

레지던스 프로그램 같은 것이 있는데, 계속 초청이 들어왔다. 답답해서 가볼까 하는데 아내가 안 가겠다고 해서 보류하고 있었다. 아내는 여기서 그냥 은거하듯 살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그 일이 아니라 프랑스에 출판사 계약 등 볼일이 있어 가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야권이 지면 독일에 가서 밥집이나 내겠다고 했는데.

농담 삼아 한 말인데, 한 기자가 그걸 보도해서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걸 본 지인들 중에 ‘프로방스 가서 가정식 백반집 연다며, 왜 안 가느냐’고 농을 걸어온다.(웃음)

지난해 가을 펴낸 <여울물소리> 반응은 어땠나?

늘 그때 시류에 맞아떨어지더라. 막상 대선에 패배한 다음에 젊은 사람들 말로 ‘멘붕’이 왔다. 공교롭게 소설과 비슷한 상황이 되었다고 할까. 이 소설에 좌절한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 이신통이 동학 패거리들과 어울려 결국은 동학 경전이나 최시형 말을 옆에서 기록하다 죽는데, 백성들도 많이 잡혀 죽는다. 동학농민혁명 때 전국에서 50만명 가까이 죽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일어난 엄청난 일이었다. 어쨌든 근대의 분수령인데 당시 멘붕은 세월이 흘러 힐링이 된다. ‘역사는 흘러가고 시련을 넘어서는구나’ 그런 것을 말하는 소설인데, 그렇게 읽혀지기를 바란다.

주인공을 아바타로 해서 소설 50년 인생을 통찰하려 했다는 말도 있다.

작가는 누구나 소설을 쓰면서 자기 분신이나 비슷한 인물을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다. 내가 등단 50주년을 맞아 자서전을 쓰면 민폐 끼치는 일이라서 싫었다. 그래서 조선 시대의 이야기꾼을 데려다 그의 일생을 하나 그려보는 것으로 넘어가려 했다. 처음엔 역사도 사실도 지워진 허황된 이야기를 하려 했다. 19세기 때 이야기꾼 언저리를 뒤지다 보니 그 세계 자체의 현실적인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50주년에 황 아무개가 그냥 놀고 갈 수 있나, 또 근대의 이야기를 해봐야지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처음에 포스트모던하고 황당하고 상징적인 이야기를 쓰려던 것이 결국 또 리얼리스트로서 쓰게 된 것이다.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앞으로는 중·단편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황당무계한 얘기도 많이 써야지 한다. 방북하고 망명하기 전까지 <객지> <한씨연대기> 같은 중·단편 쓰고 <장길산> 쓰고 <무기의 그늘> 썼던 것이 내 문학의 전반부라면, 감옥에서 나온 이후 <손님> <오래된 정원> <바리데기> <여울물소리>까지 해서 후반부로 정리했다. 이제는 만년 문학으로 넘어가겠다. 늙으면 오히려 전위적이거나 실험적인 것에 정력을 기울이게 된다더라. 그래서 중·단편을 거론한 것이다.

현실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품에 담을 것인가?

10년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한 100살까지 살아야지.(웃음) 그러려면 담배를 끊어야 하는데 어제도 두 갑은 피운 것 같다. 이제 정치적 사회봉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 끝이다, 끝. 모옌(莫言)이라는 중국 작가는 자기 이름을 ‘막언(모옌의 한국식 독음)’으로 지었다. 작품으로만 말하지, 입으로는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작가가 출발부터 전략이 우수했던 것 같다. 나도 이제 ‘막언’처럼 살까 한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정력 소비가 막대하다.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고…. 소설 열심히 써야지. 기운도 점점 떨어지는데.

그렇게 말하니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계속 괴롭혔던 것 같다.

<시사저널>은 그래도 짠한 우리 식구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다른 데는 이제 그만하려고 작정했고 <시사저널>에는 숙제를 늦게 하는 것이다.

근대의 상처가 지금까지 내려오는 게 있다고 했는데, 어떤 것들이 있나?

대선 때 보지 않았나. 한쪽에는 일본 군복 입은 청년 장교의 얼굴이 있고, 한쪽에는 함몰된 두개골이 있는 것. 그 두 가지만 봐도 근대의 잔재가 얼마나 우리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느냐, 그런 생각이 든다. 사회 겉모습은 포스트모던한데, 속은 그렇지 않다. 몇 년 전에 일본 작가하고 얘기하는 중에 자기네는 근대가 다 끝났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되물었지. 천황은 어떡할래? 천황은 개인이 아니라 제도다. 사회 시스템이 그렇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그래서 정치나 사회나 과거의 제국주의적 잔재 또는 군국주의적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경우에는 통일된 근대 민족국가도 못 이루고 있고, 중국은 첨단 자본주의를 하면서 실상은 개발 독재 아닌가. 동아시아 3국이 기나긴 근대 속에 있다고 본다.

북한 핵 위기로 시끄럽다. 방북 뒤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쓴 작가로서 지금의 북한을 어떻게 보나?

버스 기사가 오른쪽으로 핸들을 확 틀면, 몸이 왼쪽으로 기운다. 모든 사물은 균형을 지향한다. 그때 너무 극우 상태라서 그 형평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다. 가령 국가보안법의 고무·찬양 조항은 웃기는 것 아닌가. 북한에 대해서는 욕만 해야지 조금이라도 좋게 얘기하면 걸린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넘어서려는 시대적 편향을 시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뒤에 여러 가지 겪으면서 <손님> <바리데기> 등 작품을 통해 북한을 아주 본질적으로 비판했다고 본다.

핵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핵에 발목 잡히면 모든 것이 발목 잡힌다. 저쪽에 핵이 있고 없고는 이미 의미가 없는 일이다. 동아시아 평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핵 가지고 치킨게임 하는 것을 미국과 중국 양강이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북한은 정말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도 핵무장 명분이 생긴다. 남에도 핵이 생길 수 있고. 한 줌도 안 되는 한반도에서 무슨 꼴인가. 물론 북한은 협상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한 술 더 떠서 핵 보유 선언을 했다.

아주 미친 짓이다. 나는 북한이 현재 핵을 가지고 민족의 운명을 담보 잡아서 협상하는 저런 비도덕적인 태도를 아주 신랄하게 비판한다. 현 정부가 핵 문제를 책상머리에다 정면으로 놓고 골똘한 화제로 삼지 말고, 옆에 밀쳐둔 채 다시 남북 협상을 하면서 풀어가야 한다. 상생하고 서로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박근혜 정부가 잘할 수 있다고 보는가?

미국과 북한의 오랜 줄다리기가 문제다. 그러면 우리가 옆에서 조정을 하고, 싸움을 말리면서 동아시아에 새로운 평화나 질서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몇 년 동안 못 하지 않았나 싶다. 현 정부는 어떻게 나갈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못 가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마도 주변국들에게 끌려다니지 않을까. 

대선 후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란다면서도 “품질 낮은 B급 인사들로는 공약을 지키기 힘들어 출범 1년 반이면 국민적 저항이 생겨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광주에서 후배들하고 밥 먹으면서 한 말인데, 그중에 기자가 있었나 보다.(웃음) 지금 4월 청문회 정국인데. 다 가시화된 것 아닌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참 안타깝다. 걱정되는 것은 지식인 사회에서 열이면 아홉이 돌아서서 팔짱을 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이명박 정부 때보다도 심한 것 같다. 그러니 무슨 국가 정책이나 탁월한 정책 등이 나오겠나. 정책이 있어도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갈까 걱정이다.

이명박 정부와 진행하려 했던 북방 정책, 즉 유라시아 프로젝트 ‘알타이문화연합’은 어떻게 되나?

남북과 몽골, 중앙아시아 5개국이 유라시아 연합이든 알타이아 연합이든 엮어서 잘살아보자는 것이다. 동몽골은 고조선·부여·고구려의 발상지다. 우리가 거기로 가야 한다. 칭기즈 칸도 거기서 시작했다. 통일 문제도 거기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북 문제는 이제 민족주의적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이런 큰 틀에다가 분단 문제를 퐁당 빠뜨려서 지역 문제로 풀어야 하는 것이다. 남북이 대치해서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이나 다 안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몽골과 두만강으로 가야 한다. 동몰골과 두만강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을 거점으로 극동 시베리아를 개발해야 한다. 동시 진행도 좋고 앞뒤로 해도 좋다. 분단을 극복하는 길은 동북아시아 전체에다 놓고 사고하는 것이다. 그게 북방 정책의 기본 내용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이재오가 그랬고, 류우익도 그랬다. 야당 쪽에는 유인태라든가 손학규가 그랬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도 해볼까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못했고, 그러다가 제안서가 이명박 정부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 정책은 꽃도 피우지 못하고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사건 이런 일들이 터졌다. 그 와중에 내게도 온갖 억측만 난무하고, 오랫동안 그 일로 시달렸던 것이다.

과거 ‘MB 중도 실용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지켜보자고 했지, 내가 중도 실용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네티즌들이 계속 재생산하더라. 유라시아 특임대사를 맡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그런 소리를 제안받은 적 없다. 소설가가 할 일을 기자가 하고 있더라. 우리 같은 나이가 되면 좌우 넘나들면서 공동체의 이익에 무엇이 도움이 될까를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자유주의자다. 유럽에 가면 나처럼 자유주의 지식인이 많다. 그쪽에서는 나를 보수적 시민이라고 볼 것이다. 

‘문화 권력’의 중심에 있다는 비판에 대한 입장은?

누구는 살아서도 문학관 만들고, 지방에 집필실도 가지고 그러는데, 나는 그런 것을 해본 적도 없고 생각도 없다. 지방 군 네 곳에서 제의가 들어왔지만 일언지하 거절했다. 아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이문구는 죽을 때 ‘완전히 소멸하고 싶다, 죽으면 고향 관촌에다 뿌려라’라고 말했다. 그래서 숲에 뿌렸다. 문학상이나 문학관 같은 것 안 하는 사람한테 무슨 권력 이야기를 하나. 나는 프로 작가로 글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다. 나는 조직이나 개인으로부터 신세진 적이 없다. 어디에서 돈 받아본 적도 없고. 문학단체장이나 감투를 써본 적도 없다.  

김지하 시인의 ‘쑥부쟁이’ 발언에 대해 크게 반발했는데, 갈등을 아직 풀지 못했나?

그건 집안 내부 일인데, 동네에서 친구끼리도 삐치는 게 있지 않나. 김 시인은 아픈 사람이다. 정신병원 다니고, 전기 치료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기자들이 참 나쁘다. 건드리면 불뚝 하고 성질을 내는 것이 있는데, 기자들이 그걸 이용하더라. 반대로 이야기하는 것도 그대로 보도하고. 과거에 좌 황석영-우 이문열 식으로 장사를 해먹었다.

그런데 지난 1월 초에 한 방송사에서 또 이런 식으로 접근한 것을 알고 내가 성질을 부렸다. 그쪽에서 당황하고 책임 프로듀서가 전화해서 사과하고 해서 넘어갔다. 작가도 시민의 한 사람이다. 누구를 지지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일본이나 유럽 사회 같은 경우 이런 것이 코미디다.

김 시인 말이 좀 심했던 것일 뿐이다. 그 사람은 건드리면 막 나가는 사람인데, 내막은 생략하고 보도하니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다. 아픈 사람이니 걱정해주는 것이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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