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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필립 떠난 자리 ‘박정희 장학생’ 들어왔다

박근혜 그림자 김삼천 이사장 선임한 정수장학회

정락인 기자 ㅣ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4.09(Tue) 14: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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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학회가 시끄럽다. 2월에 사임한 최필립 전 이사장 후임으로 박근혜 대통령 측근 인물이 왔다.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허사가 됐다. 당초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의 최대 걸림돌로 최필립 전 이사장을 꼽았다. 그래서 그의 퇴진을 촉구해왔다. 그가 사임하면서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당연히 신임 이사장이 누가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런데 그 자리에 ‘박근혜 사람’이 다시 왔다. 3월28일 정수장학회 이사회는 신임 이사장에 김삼천 코리아 JSN 대표(64)를 선임했다. 대구 출신인 김 이사장은 영남대 화학공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 석사 과정을 거쳤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 인사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지냈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을 지낸 한국문화재단 감사를 맡았다. 2011년과 2012년에는 국회의원 신분이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개인 후원금 최고 한도인 500만원씩을 냈다. 김 이사장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그는 항상 박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있었던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 김삼천 신임 이사장(왼쪽부터).
최필립 전 이사장, 최성홍 이사 추천

4월4일 서울시교육청이 김삼천 이사장을 ‘결격 사유가 없다’며 승인함으로써 정수장학회는 ‘김삼천 체제’로 들어섰다. 그런데 사회적인 지위나 경력 등으로 봤을 때 김 이사장은 의외의 인물이다. 행정이나 교육계 종사 경험도 없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인으로서 상청회 회장을 역임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이력이 없다.

이런 김삼천 이사장을 누가 추천했을까. 정수장학회의 정관에 따르면 이사장은 이사들의 호선으로 선출하며, 이사회 의결안은 과반 이상의 이사가 찬성해야 통과된다. 이사진 임기는 4년이며, 연임 제한이 없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무제한으로 중임할 수 있다.

현재 정수장학회에는 상임이사인 이사장 외에 4명의 비상임 이사가 있다. 최성홍 전 외교통상부장관, 송광용 전 서울교대 총장, 김덕순 전 경기경찰청장, 신성오 전 필리핀 대사다. 이들이 김삼천 이사장을 추천한 것으로 되어 있다. 모두 박정희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최필립 전 이사장과 관련 있는 인물이다.

기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최필립 전 이사장은 자신의 후임으로 최성홍 전 외교통상부장관을 추천했다. 하지만 그가 극구 사양하는 바람에 이사장으로 앉히지 못했다. 최필립 전 이사장의 한 측근은 4월2일 기자와 만나 “최 이사장과 최 전 장관은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다. 두 사람은 친분도 두텁다. 최 이사장은 최 전 장관이 (이사장을) 맡아주기를 바랐으나 완강하게 고사해서 성사가 안 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필립 전 이사장은 1974~79년 청와대에서 의전·섭외·공보비서관으로 근무했다. 1978년부터 이듬해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오기까지 1년 동안 최 전 이사장은 ‘박근혜 전담 공보비서관’으로 일했다. 여러 정황을 보면 최필립 전 이사장이 김삼천 이사장을 추천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최 전 이사장의 측근은 “(김 이사장이) 상청회 회장을 했으니 얼굴은 서로 알겠지만 친한 사이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삼천 이사장을 직접 추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사는 “정수장학회는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손안에 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미 꼬리표가 됐다. 정수장학회가 태동해서 지금까지 운영돼온 것을 보면 안다. 이사장을 선임하는 데 이사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직접 추천하지 않았다면 복수의 후보자 중 한 명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건 누가 봐도 상식에 속한다”고 말했다.

김삼천 이사장은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부정한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을 뵌 것은 2005년 상청회장직을 시작할 때 딱 한 번이다. 밥 한번 같이 먹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이사장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는 박 대통령과 가깝지 않다고 애써 강조했으나, 그는 항상 박 대통령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선 때 정수장학회 관련 논란이 일자 박근혜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정수장학회는 개인 소유가 아닌 공익재단이며, 어떠한 정치 활동도 하지 않는 순수한 장학재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수장학회가 저의 소유물이라든가 저를 위한 정치 활동을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친박 인물로 채워진 공익 재단

정수장학회가 공익 재단이고, 서울시교육청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겉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정수장학회가 정치성이 없는 순수한 장학회라고 보기에는 박정희·박근혜 색깔이 너무 짙게 배어 있다. 정수장학회 설립 배경, 이사장과 이사진, 심지어 장학회 명칭까지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공익 재단, 또 박근혜 대통령과 연결 고리를 끊으려면 ‘친박’으로 꾸려진 이사장과 이사진을 중립적인 인물로 교체하고, 명칭을 바꾸는 등의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과 같은 ‘친박 체제’가 지속된다면 정수장학회는 끊임없이 정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더 이상 정수장학회가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서 국민에게 혼란을 주고 정쟁의 도구가 돼선 안 된다. 이사장과 이사진은 국민적 의혹이 조금도 남지 않도록 국민 앞에 모든 것을 확실하게, 투명하게 밝혀서 해답을 내놓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정수장학회는 박 대통령이 말한 것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도 여전히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있고, 국민에게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사장 자리에는 친박 인물이 왔고, 친박 이사진들 또한 그대로다. 정수장학회는 지난해 12월 임기가 끝난 김덕순·신성오 이사의 임기를 4년 연장해 서울시교육청의 승인을 받았다. 이사장 외에 추가 이사 교체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지난해 문제가 됐던 정수장학회가 소유한 언론사 지분 처리 문제도 지지부진하다. 정수장학회는 MBC 문화방송 지분 30%와 부산일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시민사회는 언론사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해 정수장학회가 보유한 지분을 공공성에 맞게 처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것도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정수장학회는 새롭게 탈바꿈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사장만 바뀌었을 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박 대통령의 책임 있는 태도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배신감이 들 수도 있다. 이런 상태라면 정수장학회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직·간접 영향력은 더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정수장학회 대리 운영’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친박 인사가 신임 이사장이 되면서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언론단체가 중심이 된 시민사회는 연일 김삼천 이사장의 퇴진과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을 촉구했다.

이강택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군사 독재가 강탈한 장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하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다. 김삼천 이사장 내정 결정은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특수 관계인 이사들이 전원 사퇴하고 상청회를 해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수장학회를 수렴청정하고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수장학회는 어떤 곳?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는 1958년 부산 지역 기업가인 고(故) 김지태씨가 설립한 장학법인이다. 김씨는 5·16 군사쿠데타 이듬해인 1962년 재산 해외 도피 혐의로 구속됐고, 이후 부일장학회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개입해 강제로 국가에 헌납됐다.

부일장학회라는 명칭은 ‘5·16장학회’로 바뀌었고, 1982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의 이름 한 자씩을 따 지금의 ‘정수(正修)장학회’가 됐다. 정수장학회로 이름을 바꾼 뒤 이 단체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관리해왔다. 초대 이사장인 이관구 전 재건국민운동본부장, 엄민영 전 내무부장관 등은 박정희 전 대통령 사람이다. 박 전 대통령의 친구인 최석채 전 MBC 이사도 이사장을 지냈다. 박 대통령의 이모부인 조태호씨도 8년간 이사장으로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9년간 이사장을 맡았다. 그 후 최필립 전 리비아 대사가 후임에 올랐다.

정수장학회는 태생적으로 ‘박정희-박근혜’와 연결된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하든지, 원래 주인인 김지태씨의 유족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수장학회 출신 조직 ‘상청회’와 ‘청오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써준 정수장학회 휘호.
정수장학회 출신 장학생들은 촘촘한 점조직으로 연결돼 있다. 대학·대학원 재학생들은 ‘청오회’, 사회에 나오면 ‘상청회’ 회원으로 활동한다. 먼저 상청회(常靑會)는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들의 친목 모임이다. 학교로 따지면 ‘동문회’인 셈이다. 상청회의 한자 뜻을 보면 ‘늘 푸르게’ 또는 ‘항상 청와대를 생각한다’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청와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상청회 회원들은 3만8000명에 이른다. 전국 시·도별로 12개 지부가 결성돼 있으며, 매년 정기·비정기 모임을 열어 친목을 다지고 있다. 설립자(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방문, 체육대회, 가족한마당, 등산 등을 정례적으로 개최하며 연말에는 정기총회와 송년회도 갖는다. 회원들의 결혼·승진·영전 등도 챙기는 등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

김삼천 신임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상청회 회장을 지냈다. 올해부터 김성호 전 국정원장이 회장을 맡고 있다. 상청회 회원은 정·관계, 재계, 학계, 언론계 등에 고루 분포돼 있다. 정계 인사로는 현경대·김기춘·박선영 전 국회의원, 김재경·이이재 새누리당 의원, 오제세 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눈에 띈다.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신승남 전 검찰총장, 김진홍 두레교회 목사, 김춘석 여주군수, 이재원 전 법제처장, 주선회 전 헌법재판관, 이영복 전 인천일보 부사장, 신현필 전 MBC 부국장, 김두원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전영구 스마트팜 회장 등도 상청회 회원이다.

상청회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매년 생가를 방문할 뿐만 아니라 지향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있다. 김성호 회장의 인사말에는 “우리 회원들은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는 ‘음수사원’이란 문구처럼 항상 그 고마움을 생각하고, 조국·명예·사랑의 정신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 ‘飮水思源’은 ‘물을 마시며 그 근원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학생들에게 써준 휘호다. 김 회장의 말은 상청회 회원들이 ‘평생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청오회(靑五會)는 1966년에 설립됐다. ‘靑五’는 청와대와 5·16을 연상하게 한다. 회원은 400여 명의 정수장학회 대학·대학원 장학생들로 구성돼 있다. 현재 전국 10개 시·도에 지부를 두고 있다. 각 지부에는 정수장학회 출신이자 상청회 회원인 대학교수 한 명이 배치돼 지도하고 있다. 현 46대 회장은 숭실대 국제통상학과에 재학 중인 최석원씨다.

청오회 회원들은 학술 연구, 후배 양성, 사회봉사 등의 활동을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7년 3월 청오회 회원들의 소식지 ‘청오지’가 창간되자 친필 휘호인 ‘음수사원’을 보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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