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의 ‘반포’에 신동빈은 ‘서초동’으로 맞선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4.0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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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인수…롯데는 롯데칠성부지 개발 예정

‘유통 제왕’ 자리를 놓고 벌이는 롯데 신동빈 회장과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부동산 확보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신세계는 최근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주식 148만6236주(38.74%)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엄밀하게 말하면 신세계가 최대 주주인 센트럴시티를 통해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을 인수한 것이다. 인수 대금은 2200억원. 신세계는 지난해 10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메리어트호텔, 호남선 터미널이 들어가 있는 센트럴시티 지분(60.02%)을 1조250억원에 사들였다. 이로써 신세계는 강남반포터미널에 어른거리던 롯데의 그림자를 완벽히 지우는 데 성공했다.

부동산 놓고 유통 공룡끼리 ‘장군 멍군’

신동빈 롯데 그룹 회장과 서초동 롯데칠성 건물(왼쪽),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과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건물. ⓒ 시사저널 박은숙·최준필·연합뉴스
롯데는 신세계의 강남터미널 인수에 심드렁한 반응이다. “그 땅, 별 매력 없다”는 것이다. 이들에겐 그보다 상품 가치가 뛰어난, 4만3438㎡에 달하는 서초동 부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땅은 삼성 강남타운 바로 옆에 붙은 알짜 중의 알짜다.

두 유통 공룡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은 지난해 신세계백화점이 1997년부터 텃밭으로 일구던 인천점을 롯데에 뺏긴 뒤부터다. 지난해 9월 인천시는 신세계 인천점을 포함한 인천터미널을 롯데쇼핑에 전격적으로 매각했다. 신세계 인천점의 영업계약 기간은 2017년까지. 그 이후에는 이 백화점이 그대로 롯데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신세계는 각종 소송을 통해 이 계약을 무효화하려고 했지만 대세는 기울어진 듯하다.

롯데 입장에서는 신세계 인천점 확보는 2009년 신세계가 ‘도발’한 부동산 싸움의 ‘멍군’에 해당한다. 신세계는 2009년 상반기에 경기도 파주시 법흥면 소재 땅을 전격적으로 사들였다. 이 땅은 롯데가 협상 중이던 땅이었다. 롯데는 ‘임대차 계약이 된 땅을 신세계가 가로챘다’는 보도자료를 내며 유감을 표시했다. 신세계는 이 땅에 2011년 3월 파주아울렛을 개장했고, 롯데는 6km 떨어진 곳에 부지를 마련한 뒤 그해 7월 문을 열었다. 통상적으로 땅 매입부터 실제 공사 완료까지 2~3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롯데가 이 문제를 얼마나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기민하게 대처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말하자면 파주 아울렛 대전에서 장군을 부른 신세계에, 롯데가 인천터미널 인수로 멍군을 부른 셈이다.

신세계 입장에서 인천점을 2017년 내놓는 것은 엄청난 손실이다. 그것도 롯데가 고스란히 가져가기 때문에 아픔이 더 크다. 특히나 신세계백화점의 랜드마크점인 센트럴시티에 롯데가 눈길을 주고 있다는 소문이 나자 지난해 센트럴시티 지분 60% 인수에 1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이번에 경부선 터미널 자리까지 차지해 롯데가 끼어들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롯데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우리에게도 접촉이 왔지만 그쪽 지분이 복잡하다. 막판에 그쪽에서 흥행을 위해 우리 이름을 끼워 넣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신세계 강남점은 신세계가 본점을 제치고 최고 매출을 기대하고 있는 곳이다. 신세계는 강남점이 매출 규모 전국 1위 점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강남점이 백화점 매출 1위 매장이 되기까지는 만만찮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롯데의 부동산 점유력과 자금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롯데쇼핑만도 현금성 자산이 1조원을 넘는다. 롯데는 점포를 낼 때 건물과 부지를 실제 소유하는 방식을 우선으로 한다. 롯데쇼핑의 25개 백화점 중 임차료를 내는 곳은 5곳에 불과하지만, 신세계는 10개 백화점 중 임차료를 내고 있는 곳이 7곳이나 된다. 자본의 효율성을 생각하면 신세계의 임차 방식이 유리하지만 인천점 사례에서 보듯 자금력 있는 경쟁자에게 언제든 허를 찔릴 수 있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이후 강남점 ‘내 땅 만들기’에 1조3000억원 가까운 돈을 투입한 것이다. 롯데는 신세계의 공격에 두 장의 강남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하나는 100층으로 상징되는 잠실 제2롯데월드 프로젝트이고 또 하나는 서초동 삼성전자 강남사옥 옆에 있는 롯데칠성 서초동 부지다. 제2롯데월드는 2015년 555m짜리 100층 빌딩을 국내 최초로 선보일 예정이다. 제1롯데월드는 국내 최초의 도심형 실내공원으로, 여기에 100층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지고, 6성급 호텔과 쇼핑 공간까지 가세하면 기존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의 히든카드는 서초동 땅

롯데는 서초동 롯데칠성 부지 활용 계획을 추진 중이다. 강남역 삼성타운(2만4000㎡)을 보면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롯데는, 그 두 배에 가까운 규모(4만3438㎡)의 복합시설을 삼성타운 바로 옆에 세울 계획이다. 서울시는 이 부지를 지구단위로 재개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 땅은 완충 녹지와 공원 부지를 빼도 3만5710㎡나 된다.

이 땅은 롯데자산개발이 호텔과 상업 판매시설이 결합한 복합 상업시설로 개발할 계획을 짜고 있다. 롯데는 2010년 6월 사업제안서를 제출한 뒤 서울시의 수정·보완 요청을 받아들여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서울시에서도 이 땅을 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용도 변경에 따른 개발 이익을 얼마나 환수할지, 어떤 방식으로 환수할지에 대해 논의가 좀 더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최근에 바뀐 조례에 따르면 개발 이익을 현금으로도 낼 수 있어 개발 사업자에게 좀 더 유리해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강남역은 강남의 서쪽 끝에 치우쳐 있는 고속버스터미널과는 입지 조건이 다르다. 강남역 일대는 강남 지역 상권의 핵이다. 이곳에서 분당선 지하철이 출발하고 용산과도 연결된다. 게다가 서울고속버스터미널처럼 다른 기업들이 지분을 갖고 있지도 않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한진(16.67%)과 천일고속(16.67%), 한일고속(11.11%) 등이 지분을 갖고 있어 경부선 역사를 재개발하기 위해선 이들 주주의 지분을 사거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특히 2대 주주인 한진은 최근 인천하얏트호텔 증설에 나서는 등 호텔업을 강화하고 있어 주목된다.

신세계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인수에 대한 증권가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신세계는 주가 하락, 천일고속 등 주주 회사의 주가는 상승으로 나타났다. 신세계의 2012년 연결 기준 순차입금은 이번 인수로 1조9000억원에서 2조1000억원으로 늘어났다. 공격적인 부동산 인수로 부채 비율도 124%에서 144%로 높아졌다. 신세계는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막대한 현금 동원력으로 점포를 계속 늘려가고 있는 롯데가 버거울 수 있다.

부동산 확보전으로 번지고 있는 롯데와 신세계 두 유통 공룡의 싸움이 어디까지 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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