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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명함 15년, 신통한 재주라도?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의 ‘장수 CEO’ 조건

노진섭 기자 ㅣ no@sisapress.com | 승인 2013.04.09(Tue) 15: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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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 코리안리 사장(70)과 하영구 한국씨티은행 행장(61)의 공통점은 장수 CEO(전문경영인)라는 점이다. 창업가(家) 출신이 아닌 전문경영인으로 다섯 차례나 연임하며 사장직을 꿰찼다. 15년 동안 사장 명함을 들고 다녔으니 ‘직업이 사장’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그렇다고 그 기간에 탄탄대로만 달려온 것은 아니다. 고비를 잘 견뎌낸 점도 두 경영인의 교집합이다. 두 명 모두 공교롭게 금융계에 몸담고 있지만 출신, 경영 방식, 성과 등은 사뭇 다르다.

재보험사인 코리안리의 박 사장은 공무원 출신이다. 행정고시 14회로 재무부, 통계청, 재정경제원 등에서 근무하다 1998년 여름 대한재보험(코리안리 전신) 사장에 올랐다.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그는 이 회사가 퇴출 직전이라는 것을 취임 일주일 전까지도 몰랐다고 한다. 보증채권이 부실의 원인이었다. 박 사장은 취임사에서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고 전진할 건지, 이대로 서서 최후를 맞을 건지 선택할 때”라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회사가 어렵다 보니 노조와 큰 마찰은 없었다. 전 임직원의 30%가량을 내보냈다. 그리고는 “내가 야전사령관이 되어 회사를 최고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6년 자원해서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가 속한 부대는 파병되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명령만 떨어지면 전쟁터로 향해야 했다. 악조건도 버텨내는 군인 정신이 몸에 밴 박 사장은 그 정신을 경영에 접목했다.

당시 직원들은 해도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럴 때면 그는 군대 잔반통 이야기를 꺼냈다. 음식 쓰레기가 담긴 잔반통이 며칠 지나면 찌꺼기가 가라앉고 맑은 물이 떠오르지만 한번 흔들면 바닥에 있던 찌꺼기가 다시 뒤섞인다. 기업 문화도 겉으로는 완성된 것 같지만 위기가 닥치면 다시 오합지졸이 된다는 것이다. 끝없는 혁신을 강조한 말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장수 전문경영인은 똑똑한 며느리”

2000년 그는 20년 계획을 세웠다. 10년 이내에 세계 재보험업계 10위, 20년 이내에 5위 진입을 목표로 제시했다. 모두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했지만, 현실이 됐다. 세계 업계 30위권 밖에 있던 회사가 2011년 10위에 올랐다. 1998년 영업손실 4000억원이던 조직이 5조원 매출을 일궈냈다. 아시아 시장 위주의 영업에 주력해 1998년부터 연간 12%대의 보험료 실적 증가를 이뤘다. 그런 성과 덕분에 다섯 번이나 사장직을 연임했다. 그는 평소 “좋은 실적을 올려 더 나은 자리로 옮기겠다는 욕심을 버렸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는 2004년부터 매년 임직원과 백두대간을 종주한다. 신체 활동은 정신노동자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박 사장의 지론이다. 정신이 건강을 좌우하듯 기업 정신이 기업을 만든다는 것이다. 정신이 강한 직원을 만들기 위해 그는 사원을 뽑을 때도 자필로 쓴 입사지원서를 직접 회사로 들고 와서 접수하도록 했다. 지원 전에 평생 다닐지도 모르는 직장을 한 번쯤은 둘러봐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면접도 신체 활동으로 대신한다. 오전에는 서울 강남에 있는 청계산을 오르고, 오후에는 축구를 한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는 인재를 찾는다. 뽑은 인재는 전원 영국의 보험대학이나 외국의 대형 재보험사에 연수 보낸다. 전체 직원의 5%는 늘 해외연수 중이다.

전문경영인의 역할에 대해 그는 ‘며느리론’을 편다. 기업 소유와 경영이 시아버지와 며느리 관계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세미나 등에서 박 사장은 “다른 환경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사람이 집안에 새로 들어와 적응하면서 나중에는 큰살림을 떠맡아 슬기롭게 관리하며 집안을 번성시키는 것이 며느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똑똑한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어렵더라도 꼭 필요한 때 자기 의견을 지혜롭게 전해 이해를 구한다. 사주에게 무조건 순종할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바른말을 해서 회사를 성장시키는 일이 전문 경영인의 의무라는 것이다.

박 사장은 “회사가 이렇게 성장한 배경에는 CEO의 오랜 책임 경영과 대주주의 신뢰가 있다”면서 “CEO는 사심을 버리고 책임 경영을 하고, 주주는 그런 CEO를 믿고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월19일 창립 50주년을 맞아 세족식 행사를 열어 박 사장은 직원들의 발을 씻어줬다. 그를 따르느라 고생했을 직원의 발이다.

   
ⓒ 뉴스뱅크 이미지
“남은 임기에 기업 세계 진출 돕겠다”

박 사장은 다섯 번째 임기를 소화하고 있지만, 하영구 씨티은행 행장은 다섯 번째 임기를 막 시작했다. 3월29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연임이 결정됐다. 2016년 3월까지 임기를 채우면 15년간 은행장직을 지킨 주인공이 된다. 국내 은행업계에서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그는 1981년 씨티은행에 입사해 줄곧 ‘은행 밥’을 먹었다. 20년 만인 2001년 한미은행장으로 발탁됐고, 한미은행과 씨티은행 서울지점이 합치면서 2004년 한국씨티은행장이 됐다. 지난 12년 동안 큰 고비를 두 번 만났다. 한 번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였고 또 다른 한 번은 한미은행과 씨티은행이 합병한 이후에 있은 통합 작업이었다. 같은 은행이지만 두 은행의 문화적 차이는 컸다는 것이 하 행장의 설명이다.

도전을 극복하면서 은행장으로서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그는 주저 없이 신뢰를 꼽는다. 그는 평소 기자들 앞에서 “고객의 신뢰와 시장의 신뢰, 금융 당국으로부터의 신뢰가 없으면 금융회사의 성장은 불가능하다”면서 “특히 고객의 신뢰가 없으면 금융은 뿌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최근 씨티은행의 실적은 별로 좋지 않다. 지난해 이 은행의 순이익은 1890억원으로 2011년 4568억원에서 반 토막이 났다. 이자 수익도 1년 전보다 3.9% 줄어든 1조4540억원에 그쳤다. 1%대의 순이자 마진율이 1년 사이 0.17%포인트 떨어졌다. 경기 악화 등으로 은행에 돈을 맡기는 고객 자산이 줄어든 것도 실적 악화의 원인이다. 200명 가까운 행원이 명예퇴직하면서 일시적으로 퇴직금 부담이 늘어난 탓도 있다. 그는 “영업점 최적화와 인력 구조조정, 미래 성장을 위한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시도했고, 교차 판매와 해외 사업 확대 등으로 주요 상품의 시장 점유율은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에게 주어진 임기는 3년이다. 그동안에 실적을 회복해야 한다. 하 행장은 일반 기업의 해외 성장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씨티은행이 갖고 있는 세계적 네트워크와 이미지, 상품 등을 활용해 우리 기업이 외국으로 진출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며 “이미 진출한 기업보다 새롭게 성장하는 회사들이 세계 시장에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동반자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씨티은행 노동조합의 반발은 그가 풀어야 할 숙제다. 씨티은행 노동조합은 주주총회 이전부터 하 행장의 장기 집권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노조 간부 6명은 본점 건물 1층 로비에 대형 천막을 치고 밤샘 농성과 삭발식, 단식 투쟁을 벌였다. 씨티은행 노조측은 “하 행장 재임 기간에 시장 점유율이 급락하고, 신입 직원 공채가 줄고, 대규모 점포 통폐합과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등 조직이 축소됐다”며 “그럼에도 하 행장을 비롯한 임원 10여 명은 연임되고 일부는 승진했다”면서 5연임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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