뻣뻣하게 굴다 애플 꼴 당할라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 기고가 ()
  • 승인 2013.04.0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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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소비자 무시하면 십자 포화

지난 몇 주 동안 애플은 중국에서 악몽을 겪었다. 언론 매체를 시작으로 중국 정부까지 나서 애플을 집중 공격했다. 3월15일 관영 CCTV 보도가 발단이다. 이날은 중국 정부가 정한 ‘소비자 권익의 날’이다. 이에 맞춰 중국 언론은 소비자 권익을 소홀히 하거나 침해하는 기업을 찾아내 융단 폭격했다.

CCTV는 애플을 ‘올해의 나쁜 기업’으로 선정했다. ‘3·15 완후이(晩會)’를 비롯해 각종 뉴스 프로그램에서 애플의 애프터서비스 부실을 지적했다. 애플이 아이폰 4S 등에 문제가 생겨 새 제품으로 교환해줄 때 뒷부분 케이스는 쓰던 것을 그대로 부착하고, 다른 나라에 비해 보증 수리 기간도 연장해주지 않는다는 것. 보도가 나간 뒤 애플의 초기 대응은 ‘뻣뻣’했다. 애플은 “우리는 탁월한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의 기대를 뛰어넘으려고 항상 노력한다”는 성명을 냈다. 해명이나 사과는커녕 자화자찬만 늘어놓았다. 이에 중국공산당 관영지 인민일보가 1면과 특집 기사로 애플을 비난했다.

3월29일에는 중국 공상행정관리총국까지 나서 애플의 소비자 권리 침해 행위에 대한 단속에 들어갔다. 정부 당국과 관영 매체가 전 방위로 압박하자 애플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4월1일 애플은 중국어 홈페이지에 팀 쿡 최고경영자(CEO) 명의의 사과문을 올렸다.

2013년 1월2일 중국 쉬창 시의 애플스토어에 아이폰5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3개월여가 흐른 뒤 애플은 중국에서 ‘올해의 나쁜 기업’으로 선정되며 전방위 공격을 받고 있다. ⓒ AP 연합
2년 전엔 금호타이어 중국 매출 반 토막

애플 사건은 자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을 길들이려는 중국의 만행으로 비칠 수도 있다. 과거에도 CCTV는 3월15일마다 외국 기업에 회초리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2년 전에는 그 대상이 한국 기업이었다.

당시 CCTV는 ‘3·15 완후이’에서 ‘금호타이어가 작업 표준에 표시된 것과 달리 고무 배합 비율을 조작해 타이어가 자주 펑크 난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한 금호타이어의 자세는 이번 애플보다는 겸손했지만 모호했다. 금호타이어는 홈페이지를 통해 ‘보도 내용에 과장과 오해가 있다’며 ‘가까운 시일 내에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공지했다. 그러나 신화통신·인민일보·차이나데일리 등 중국 유력 매체가 CCTV 보도를 인용해 금호타이어에 연일 십자 포화를 퍼부었다. 일부 소비자는 “유통되는 저질 타이어를 즉시 리콜하라”며 금호타이어 중국법인에 항의 전화 공세를 벌였다.

결국 같은 해 3월21일 이한섭 금호타이어 중국법인 대표가 CCTV 경제 채널에 나와 “톈진(天津) 공장의 일부 제품이 작업 표준과 다르게 제조됐다”며 “이에 공장장 등 책임자 3명을 해고·해임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성명을 발표한 뒤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이번에는 그 주인공이 애플로 바뀌었을 뿐이다. 팀 쿡 CEO도 사과문을 통해 “소통이 부족해 중국 소비자에게 애플이 오만하거나 소비자를 무시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반성하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중국 언론의 외국 기업 때리기에 과도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무조건 외국 기업 죽이기라고만 단정할 수도 없다. 최근 들어 외국 기업 제품이 공격 대상으로 자주 등장하지만 중국 언론의 살생부에는 자국 기업 제품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9월 발생한 멜라민 분유 파동 이후 중국 언론은 불량 제품을 찾아내 고발하는 데 정부 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최근 중국 언론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정밀 진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시발은 2008년 5월 쓰촨(四川) 대지진부터다. 당시 중국에서는 사회주의 정권 수립 이후 처음으로 지진 피해 지역과 희생자들에 대한 ‘자발적인’ 기부 및 자원봉사 열기가 거국적으로 끓어올랐다.

당시 중국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기업은 자둬바오(加多寶)였다. 차 음료 ‘왕라오지(王老吉)’를 생산하는 자둬바오는 다른 대기업들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무려 1억 위안(약 180억원)의 거금을 기부금으로 내놓았다. 이는 성금액 중 최대였다. 그 뒤 왕라오지는 ‘국민 음료’로 등극했고, 소비 열풍이 불어 일부 지역에서는 품절 현상까지 빚었다.

반면 중국 최대 부동산회사 완커(萬科)는 자둬바오의 5분의 1 수준의 기부에 그쳐 비난을 샀다. 다국적 기업인 코카콜라·KFC·노키아·P&G 등도 적은 금액을 내놓았다가 ‘구두쇠(鐵公鷄)’라는 오명만 뒤집어썼다. 심지어 일부 네티즌은 기업의 기부금 리스트를 공개하고 적은 성금을 낸 기업 상품에 대한 불매 운동을 벌였다.

중국 소비자를 소홀히 여기거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이 치르는 고초는 더욱 혹독하다. 1999년 중국 소비자를 미국 소비자에 비해 차별 대우했다며 언론의 공격을 맞은 도시바 노트북은 중국 노트북 시장 1위에서 밀려났다. 2010년 CCTV ‘3·15 완후이’에서 치도곤을 당한 HP 노트북은 1년 사이에 시장 점유율이 9%나 떨어졌다.

CSR에 대한 한국 기업 대응력 떨어져

금호타이어의 상황은 더욱 참담하다. 2011년 중국 내 매출액은 전년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다소 회복된 지난해에도 2010년의 60%에 그쳤다. 금호타이어의 매출이 절정이던 2010년 당시만 해도 중국 시장에서 외국 기업 가운데 판매율 1위를 차지했다. 납품한 타이어는 1200만개에 달했고, 매출액만 1조원을 기록했다.

문제는 CSR에 대한 한국 기업의 인식과 대응이 지극히 뒤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통계를 통해 잘 드러난다. 지난해 11월 중국한국상회가 진출 기업 189개사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3.4%가 ‘CSR 활동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중국어 웹사이트에 자료를 공개하거나 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은 18.3%에 그쳤다.

이런 한국 기업에 대해 중국은 냉혹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2011년 중국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이 조사한 중국 내 전체 기업의 CSR 평가 결과 한국 기업은 평균 8.4점을 받았다. 이는 중국 국유기업(31.7점)보다 훨씬 낮고, 외국 기업 전체 평균(12.5점)을 밑도는 수치다. 지난해 7월 칭다오(靑島) 총영사관이 주최한 CSR 세미나에서 중국사회과학원 장언연구원은 “한국 기업은 자선과 공익사업 외에도 다양한 CSR 활동을 진행하면서 전문적인 CSR 보고서도 발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플 역시 향후 중국에서 겪게 될 후환이 더욱 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애플에게 중국은 세계 2대 시장이다. 지난해 전체 매출의 16%를 중국 시장에서 올렸다. 올해 1분기 애플의 중국 시장 매출은 68억3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에 비해 55%나 증가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수익만 거둬갈 뿐 CSR 활동은 전무한 대표적인 외국 기업으로 손꼽힌다. 일부 중국인은 애플을 ‘독 있는 사과’라고 부르는 등 반감을 갖고 있다.

중국은 한국 기업에게도 가장 큰 해외 시장이다. 중국인은 외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대감이 자국 기업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외국 기업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제 중국에서 기업의 소비자 보호 및 CSR 활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업 전략이 됐다. 시혜적 자선 활동이 아닌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한 투자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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