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외치며 뒤에선 무기 파는 ‘나쁜 나라’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3.04.09 15: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EU 국가들, 중동 국방 예산 노리고 무기 수출 경쟁

중동은 영국과 프랑스의 전통적인 무기 수출 시장이다. 이곳에 독일이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중동은 EU(유럽연합) 국가들의 불꽃 튀는 무기 판매장이 되고 있다. 독일 정부가 종전과 달리 무기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가 있다. 재정 위기로 고통받는 유로존 국가들이 독일산 무기 수입을 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국의 국방비가 삭감되면서 독일 방산업체들은 수출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독일 국방비는 통일 이전인 1988년에 GDP 대비 2.6%였지만 2012년에는 1.3%로 줄어든 상태다.

독일 무기의 중동 진출 선봉장은 방산업체인 라인메탈이다.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에 장갑차와 함께 레오파드 2A7플러스 전차 600대를 판매하면서 126억 달러 상당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 계약을 독일연방 안보비밀회의에서 메르켈 총리가 승인했던 때가 2011년 6월이다. 튀니지·이집트·예멘·리비아 등에서 ‘아랍의 봄’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바레인 시위대 진압용으로 레오파드 전차를 추가 주문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런 상황에서 조용히 독일의 무기 금수 조치를 풀었다. 독일 녹색당 당수인 클라우디아 로스는 “이런 무기 거래는 ‘죽음과의 거래(Deal with Deaths)’”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2012년 10월20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정부군은 독일제 장갑차를 동원해 이슬람 수니파 시위대를 진압했다. ⓒ AP 연합
독일, 사우디·이집트 등에 무기 팔아 ‘눈총’

원래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된 무기 구입처는 미국과 프랑스였다. 이 나라는 이미 미국의 제너럴다이내믹 사가 만든 115대의 아브람스 MIAS 전차, 그리고 수백 대의 프랑스 AMX-30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독일 전차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미 외교 정책 변화다. 2011년 미국이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을 버린 사실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고객은 사우디아라비아만이 아니다. 이집트는 독일 방산업체 HDW가 제작한 209잠수함 2대를 15억 달러에 구매할 계획이다. 하지만 HDW의 이번 판매가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이집트의 새 정부가 국제 사회의 우려를 낳자 독일 야당들이 메르켈 총리의 무기 수출 결정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부도 독일을 걱정한다. 이집트가 독일 잠수함을 구입하게 될 경우 이스라엘의 군사력 우위가 약해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이런 주장을 엄살이라고 본다. 독일에서 돌핀급 잠수함 6척을 구입한 이스라엘은 이 중 3척을 이미 배치했고 좀 더 성능이 업그레이드될 나머지 3척의 잠수함을 2017년까지 인도할 예정이다. 게다가 이스라엘 해군에 인도할 3척의 잠수함은 핵크루즈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다. 자칫 중동에서 핵무기 경쟁을 부추길 우려가 제기되는 무기다.

본 국제군축센터(BICC)의 얀 그레베 연구원은 무기 수출에 열을 올리는 독일 정부에 냉소적이다. 그는 “중동 지역의 무기 경쟁이 그 지역의 안정에 도움을 줄지 미지수다. 군수 장비는 거의 영구적인 것들이다. 중동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기들이 누구의 손에 들어갈지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된 사례는 적지 않다. 아프가니스탄을 옛 소련이 점령했던 시절, 반군이었던 탈레반에게 소형 스팅거 미사일 같은 무기를 제공한 쪽은 미국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무기가 미국을 비롯한 나토군들을 조준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1990년 걸프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영국에서는 대처 총리의 장남이 무기 중개상으로 나서 이라크에 야포 등 무기를 판매했고, 그 무기들은 이후 영국을 포함한 다국적군을 향해 사용됐다.

과거 걸프협력이사회(GCC) 6개국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영국과 프랑스의 몫이었다. 영국의 경우 BAE시스템즈가 2005년 사우디아라비아에 72대의 토네이도 전투기, 30대의 호크 훈련기, 30대의 필라투스 P-9 훈련기를 판매했다. 영국 무기 판매 역사상 최고가 거래로 80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이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돼 BAE시스템즈는 부패 혐의로 기소를 당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영국 의회가 무기 계약과 관련한 부정을 조사하겠다는 태도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관계 악화는 다른 유럽 국가들, 특히 독일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을 제공했다.

유로존 재정 위기 이후 유럽통합의 주도권 경쟁에서 독일에 밀리고 있는 프랑스는 중동 무기 시장에서 또 한 번 불편한 상황에 처했다. 프랑스는 2011년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무력화할 때 나토 일원으로 참가했다. 당시 라팔 전투기를 투입해 실전 상황에서 성능을 증명했는데, 이때의 시연은 2012년 1월 인도가 126대의 라팔을 구매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현재 프랑스는 말리 내전에 개입해 이슬람 반군을 공격하는 데 또다시 라팔 전투기를 투입했다. 이번 예상 고객은 UAE(아랍에미리트연합)다. 실전 성능을 통해 UAE가 60대의 라팔 전투기를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프랑스가 말리 내전을 100억 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를 위한 마케팅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방과 가까운 걸프협력이사회 회원국들은 무기 구매에 열을 올리는 가장 큰 명분으로 ‘이란의 군사적 위협’을 든다. 그런 명분으로 이들 국가가 향후 5년간 편성한 국방 예산 규모는 약 3850억 달러에 이른다고 관측통들은 전한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중동에 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는 독일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는 줄곧 아랍의 민주화를 지지한다고 천명했지만, 커튼 뒤에서는 국방 예산을 잡기 위해 경쟁을 벌여왔다. 이들에게 국익과 인류 보편의 가치는 이율배반적인 관계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