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위기관리 체계가 ‘위기’
  • 정찬권│한국위기관리연구소 연구위원 ()
  • 승인 2013.04.1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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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도 문제 심각…재난 분야 독립기구 신설 해야

최근 한반도에서는 북한과 한·미 간 상호주의에 입각한 억지(Deterrence) 전략의 단계적 확대(escalation)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정전협정 파기 선언을 시작으로 핵전쟁 불사, 전시 상황 돌입, 개성공단 조업 중단 등 대남 위협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에 맞서 우리 정부는 만약 도발하면 지휘 세력까지 포함해 무자비한 응징·보복을 하겠다고 천명하고, 미국도 B-2폭격기와 F-22 랩터, 핵잠수함, X밴드 레이더 등 첨단 무기를 공개하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무력 충돌과 같은 우발적 사태가 발생한다면 국가 위기관리 체계는 제대로 작동되는 것일까? 국민들의 불안감은 여기에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역대 정부들은 정권 교체 때마다 국가 위기관리 조직 기능의 폐지·복원·축소·확대를 반복해왔다. 하지만 효율성, 통합성, 연계성 그리고 컨트롤타워 기능 미흡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했다. 박근혜정부도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존 국가위기관리실을 폐지하고 국가 안보·위기관리 컨트롤타워로서 국가안보실을 신설했다. 하지만 각 부처에 분산·이원화된 비상 대비·민방위·재난 조직과 유명무실한 지자체 조직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하지 않아 지난 정부와 별반 차이가 없는 실정이다. 결국 제2의 연평도 사태나 대규모 재난 발생 시 보고 지연, 늑장 대응, 땜질식 처방 등의 행태가 재연될 수밖에 없는 비효율적인 구조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 주권과 국민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국가 위기관리 조직 체계 개선 방향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안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월2일 오전 청와대에서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권마다 국가 위기관리 조직 부침 심해

첫째, 박근혜정부의 국가안보실 조직 편성이 기형적이고 미약하다는 지적이다. 즉 국제 협력, 정보 융합, 위기관리 등 3개 비서관 기능으로 국가 안보를 총괄하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무리수이며 시스템이 아닌 힘에 의한 업무처리라는 문제점이 야기될 수 있다. 오늘날 군사·비군사적 안보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포괄 안보 환경에서 국방·통일·외교 조직을 두지 않고는, 지휘통제실 기능은 몰라도 전 방위 대응 조치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미 많은 전문가가 지적했지만 외교안보수석실과의 기능 중복으로 업무 한계가 모호하고, 업무 관련 부처인 안전행정부 등과의 연계성도 미약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력 도발, 재난 상황을 상정해 시뮬레이션을 통해 외교안보수석실을 국가안보실에 통합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현재 군 출신 위주로 구성된 국가안보실에 각 기능별 전문 인력 충원으로 안보 정책 수립이나 의사 결정 시 집단 사고 오류도 예방할 수 있어 일석이조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비상 대비 조직 기능과 충무계획 실효성을 점검하고, 필요할 경우 업무 이관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비상 대비는 국가 안보의 중요한 축이나 이명박정부의 비상기획위원회 폐지로 조직이 축소되고 업무도 위축됐다. 또한 담당 공무원들의 전문성 부족으로 충무계획 수립과 전시 동원 기능 발휘도 국민들이 우려하는 정도다. 유사시 전쟁 지원과 국가 지속성을 유지하는 비상 대비 기능을 업무 성격이 다른 안전행정부에 존치시킨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지난 천안함·연평도 사태 시 대통령실·국방부·행정안전부 등 어디 하나 정부 사태 선포 관련 사전 준비 명령이나 지침도 시달하지 못했던 연유를 곱씹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명박정부가 단행한 비상기획위원회의 폐지 후유증이 크다.

셋째, 민방위·재난 담당 조직의 이원화로 업무 중복과 행정·예산 낭비 등 기회비용 증가와 지자체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낳고 있다. 예를 들면 민방위 업무는 안전행정부에서 법령과 제도를, 소방방재청에서는 자원 관리 및 집행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재난 업무는 안전행정부에서 안전 업무 총괄과 사회적 재난을, 소방방재청은 자연 재난과 인적 재난을 담당하고 있어 지자체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재난 분야는 독립 기구를 신설하거나 안전행정부 혹은 소방방재청으로 일원화시키고, 민방위는 비상 대비 조직과 통합해 전평 시 업무 일원화를 통해 효율성을 강화하도록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3월29일 발행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전략미사일 부대 긴급 작전회의 주재 사진에 ‘전략군 미 본토타격 계획’이라는 작전계획도가 보인다. ⓒ 조선중앙통신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 제정 시급

넷째, 지자체의 위기관리 조직 편성이 취약하고 전문 인력 부족으로 독자적인 위기 대비·대응이 곤란하다는 지적도 낳고 있다. 각 지자체별로 조직 규모, 소속, 부서 명칭 등이 상이하고 상하·수평 조직 간 상호 연계성도 미약해 유사시 유기적인 협조와 통합성 발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태안 기름 유출 사고, 연평도 포격 사태, 구미 불산 유출 사고 당시 해당 지자체는 허둥지둥하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중앙 정부만 바라보며 조치를 기다린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재 지자체별로 각양각색인 위기관리 조직을 정형화해 중앙 정부와 지자체 간 수직·수평적 업무 연계성이 유지되게 해야 한다. 

다섯째, 북한의 해킹과 같은 사이버 테러에 대비한 기본법 부재와 국정원·경찰·국방부 등 업무 기능 분산으로 컨트롤타워 기능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이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보안 환경 변화에 대한 인식과 보안 수준이 낮아 정부기관·방송사·금융기관 등이 북한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사이버 공격을 받았지만, 사전 대비는 거의 없고 뒷북 행정만 일삼아왔다. 따라서 국회에서 몇 년째 잠자고 있는 가칭 ‘국가사이버위기관리법’을 시급하게 제정하고, 일원화된 사이버 위기관리 ‘컨트롤타워’를 구축함과 동시에 국가안보실에 사이버안보비서관을 둬야 한다.

이 밖에도 이명박 정부의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폐지로 담당 주체가 없어져 위기 형태별 소관 부처가 운영·관리하는 국가 위기관리 매뉴얼은 국가안보실에서 총괄 조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냉혹한 국제 질서 속에서 안보·위기관리 시스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과거 수차례의 안보·위기 관련 정부 조직 개편 과정에서 객관적인 안보 위협 요인은 배제된 채 정치적 흥정이나 부처 이기주의, 조직 효율성 논리에 발목이 잡혀 조직 체계가 비효율적으로 설계되고 운영됐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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