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그룹 대권 누가 잡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4.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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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구 부회장·김남정 부사장 형제…후계 구도 ‘회오리’

재계에서 동원가(家)는 자녀 교육이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향교장이던 아버지 밑에서 어릴 적부터 엄한 교육을 받았다. 자녀들 역시 밑바닥부터 경영 수업을 시켰다.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1987년 고려대를 졸업하고 바로 참치잡이 배에 올랐다. 김 부회장은 꼬박 6개월간 참치를 잡았다. 다른 어부들과 똑같이 배에서 생활하며 그물을 던져 참치를 잡고 갑판 청소도 했다. 차남인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도 마찬가지다. 1996년 고려대를 졸업한 후 동원산업에 입사해 참치 통조림을 만들었다. 완성된 제품을 시내 백화점에 배달하는 일도 했다.

2세들이 동원그룹에 입사해 임원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10.5년. 김남구 부회장은 입사 10년 만인 1997년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 이사, 김남정 부사장은 2007년 동원산업 상무로 각각 승진했다. 재벌가 자녀들이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 임원으로 승진한 기간이 3.8년에 불과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혹독한 경영 수업을 거친 두 사람은 현재 ‘금융’과 ‘식품’ 양대 지주회사를 이끌고 있다. 장남이 독자적으로 한국금융지주를 이끄는 데 반해, 차남은 김 회장 밑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점이 다르다. 때문에 동원가 2세의 경영 성적표에 관심이 쏠린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한 대학에서 ‘도전과 응전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증권가 찬바람에 장남 쪽 실적 급감

<시사저널>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지난해 실적을 분석한 결과 동생인 김남정 부사장 쪽의 성과가 더 좋았다. 장남인 김남구 부회장이 22.23%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금융지주는 지난해 3개 분기(2012년 4월1일~12월31일)까지 영업수익(매출) 2조512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10% 상승한 수치다. 하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1553억원, 1285억원으로 40~45% 감소했다. 최근 1년간 한국금융지주의 주가는 15.3% 성장했다. 김 부회장은 2020년까지 자기자본이익률(ROE) 20% 성장과 시가총액 20조원 달성을 공언한 상태라 현재로선 비상등이 켜진 셈이다. 4월11일 기준 한국금융지주의 시가총액은 2조6274억원이다.

양대 지주사인 식품 쪽의 사정은 달랐다. 김남정 부사장이 최대 주주(67.98%)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연결 매출은 지난해 3조364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7.9% 성장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2012억원, 1242억원으로 3.9%, 44.8% 늘어났다. 이에 따라 상장 계열사의 주가도 오르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동원F&B의 최근 1년간 주가 상승률은 85.6%에 달한다. 삼성증권은 최근 리포트를 통해 ‘참치 캔 사업의 실적 회복과 비참치 캔 사업의 성장을 토대로 종합식품기업으로서의 시장 지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목표 주가도 11만7000원에서 15만500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증권 전문가들은 단순 실적 비교만으로 2세들의 경영 능력을 따지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최근 여의도 증권가에는 유례없는 칼바람이 불고 있다. 투자자 이탈로 증권사의 수익성이 급속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 62곳 중 21개사가 지난해 적자를 냈다. 대신증권과 NH농협증권은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65~82% 감소했다. 교보증권, 유진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현대증권 등도 적자로 전환됐다. 10개사는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 지점 통폐합과 인원 구조조정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금융지주는 선방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2011년 유럽발 금융 위기에도 한국금융지주는 최고 성과를 냈다. 업계 상황을 감안하면 지난해 실적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주목되는 점은 동원그룹의 후계 구도다. 재계에서는 동원그룹의 실적 상승을 김남정 부사장의 후계 구도와 연결 짓고 있다. 장남이 운영하는 금융지주는 일찌감치 그룹에서 독립한 상태다. 하지만 차남은 김 회장 밑에서 여전히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국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M&A(인수·합병)를 진행해왔다. 최근 10년간 인수한 기업만 10곳이 넘는다. 2005년 디엠푸드와 해태유업(현 동원데어리푸드)을 인수해 유가공 사업에 뛰어들었다. KT로지스택배와 아주택배를 인수하면서 택배업에도 진출했다. 2008년과 2011년, 2012년에는 각각 미국 1위의 캔참치업체인 스타키스트, 세네갈의 SNCDS, 대한은박지 등을 인수했다.

택배업의 경우 사업 진출 1년 만에 포기를 선언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생계를 잃은 지사들은 서울 양재동 사옥과 김재철 회장 집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건설업체인 삼선건설과 급식업체인 삼보유통을 인수하는 과정에서는 허위 공시 논란을 빚기도 했다.

ⓒ 연합뉴스
김남정 부사장 후계 구도 가시화 예상

하지만 잇따른 M&A로 동원은 사업군이 수산·식품·물류·유통·건설·정밀 사업 등으로 다각화됐다. M&A 효과 역시 최근 실적을 통해 가시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김남정 부사장의 경영권이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부사장이 지난해 해외 핵심 계열사인 미국의 스타키스트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선임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김 부사장은 일찌감치 동원그룹 후계자로 낙점돼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회사 경영의 안정은 어떤 식으로든 김 부사장에게 호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원그룹은 2010년 해태음료 인수전에 나섰다. 이때도 재계에서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동원그룹이 해태음료 인수에 성공하면 국내 음료 시장에서 3위로 뛰어오를 수 있다. 주력 사업인 참치 부문에 음료 사업을 더해 종합식품업체로 부상하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동원그룹이 종합식품업체로 발돋움하면 김 부사장의 입지가 탄탄해진다. M&A로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지고, 사업 또한 안정되고 있기 때문에 김 부사장의 후계 구도가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동원그룹측은 “경영권 승계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그룹 관계자는 “(김재철 회장이) 여전히 활발하게 경영하고 있다. 김남정 부사장의 경우 아직 경영 수업 중이기 때문에 후계 구도를 논하는 것은 이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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