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컴퓨터를 들고 나타났다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 기고가 ()
  • 승인 2013.04.1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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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소프트파워 떨치는 중국 공자학원

# 1.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수도인 브라자빌에 위치한 응구아비 대학. 교정 내 공자학원에서 100여 명의 학생이 중국어 삼매경에 빠져 있다. 그들은 본국에서 파견 나온 중국인 교사들에게 한자 읽기, 쓰기 등 기초부터 철저히 교육받고 있다. 3학년인 아부는 어느덧 중국어를 능숙히 구사한다. 아부는 시골 마을 출신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중국어를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인 교사와 중국어로 막힘없이 대화를 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아부는 졸업 후 중국으로 유학해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보도했다.

# 2. 3월20일 캐나다 앨버타 주의 주도인 에드먼턴에 소재한 앨버타 대학 공자학원. 평소와 달리 이날 공자학원은 앨버타 각지에서 몰린 100여 명의 대학생과 학부모로 열기가 끓어올랐다. 제2회 앨버타 주 대학생 중국어 말하기 대회가 개최됐기 때문이다. 10명의 참가자는 각기 갈고 닦은 중국어 솜씨를 맘껏 발휘했다. 유창한 중국어 솜씨로 자신의 ‘차이니즈 드림’을 설명해나갔다. 일부 학생은 중국 전통 춤과 노래를 선보였고, 전통 악기를 연주한 참가자도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참가자들의 국적이다. 캐나다·한국·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대거 참여했다.

중국 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 북쪽 광장에 세워져 있는 청동 공자상. ⓒ AP 연합
공자학원 설립하면 20만 달러 지원

전 세계에서 중국어 열풍이 불고 있다. 부자 나라인 미국과 캐나다부터 가난한 아프리카 오지 국가까지 중국어에 매달리고 있다. 지구촌 젊은이들이 중국어에 빠져든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이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최강국(G2)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 상품이 전 세계를 휩쓸고, 중국이 세계 주요 소비 시장으로 떠오르면서 중국어의 위상도 급격히 올라가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통계가 최근 발표됐다. 3월11일 중국의 국가한판(國家漢辦)은 “2013년 초 현재 전 세계 110개국에서 410개의 공자학원이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74개국 266개 중국어학원이 정식 공자학원이 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공자학원은 중국 정부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중국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세계 각 나라의 대학들과 합작으로 세운 교육기관이다. 2004년 미국 메릴랜드 대학에 최초로 개설된 뒤 빠른 속도로 확산돼 전 세계 곳곳에서 문을 열었다. 한국에도 서울 공자아카데미가 처음 개설돼 지금은 20개 가까운 공자학원이 성업 중이다.

해외 현지 대학과의 합작이라고 하지만, 개설과 관리는 베이징에 위치한 공자학원 총본부에서 원격 조종한다. 총본부에서 인정하지 않는 중국어학원은 공자학원 간판을 달지 못한다. 이 총본부의 상급 기관이 바로 국가한판이다. 국가한판은 중국 교육부 산하의 한 부서로 전 세계에 중국어를 보급하기 위한 싱크탱크이자 지휘소다. 국가한판의 공자학원 운영은 여러모로 독특하다. 먼저 국가한판은 공자학원을 설립하는 학교에 20만 달러 안팎의 투자금을 지원한다. 돈뿐만 아니라 현지 학교가 요청하면 중국인 교사를 파견하고 중국어 교재도 제공한다. 개설한 뒤 벌어들이는 이익은 현지 학교와 일정 비율로 나눈다.

중국 내 대학과 연계해 공동 운영하는 방식도 사용된다. 한국의 경우 한국외대는 베이징 외대, 충북대는 옌볜 대학, 충남대는 산둥(山東) 대학, 호남대는 후난(湖南) 대학, 계명대는 베이징 어언대 등과 제휴하고 있다. 2006년부터 주로 지방대를 중심으로 설립됐는데, 최근에는 수도권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런 공자학원의 운영 방식은 초창기에 오해를 불러왔다. 일부 서구 언론이 색안경을 끼고 공자학원을 중국의 해외 첩보기관쯤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자학원의 개설은 외국 대학이 베이징의 총본부에 설립을 요청해야 진행되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쉬린(許琳) 국가한판 주임은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날마다 세계 각국의 대학에서 보내오는 팩스나 이메일이 40여 통에 달한다. 모두 공자학원의 개설이나 중국인 교사 파견, 중국어 교재 제공 등을 부탁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18일 영국 런던 북페어 행사장에 설치된 공자학원 홍보 전시장. ⓒ Xinhua 연합
저개발 국가 핵심 인재 모으는 통로 역할

중국 정부는 공자학원을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제고하고 21세기 문화 전쟁을 대비하는 전초기지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는 공자학원이 중국 교육부의 ‘중국어 교량 프로젝트(漢語橋工程)’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이 프로젝트는 중국 문화를 전 세계에 알려 중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교육부는 한 해 20억 위안(약 3600억원) 이상의 예산을 공자학원에 쏟아붓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중국 정부가 346만명의 빈곤 지역 초등학생을 위해 설립한 1만5000여 개의 희망학교에 든 예산이 56억 위안인 점에 비춰볼 때, 엄청난 자금을 공자학원에 뿌리고 있는 것이다. 공자학원에 대한 ‘투자’가 가능한 것은 중국이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국이라는 점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3조3000억 달러(약 3659조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 2004년 이후 722%나 증가한 액수다.

공자학원에 대한 중국 정부의 관심은 총본부 이사회의 진용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현 이사장은 과학·교육 부총리인 류옌둥(劉延東·여) 국무위원이다. 이사진은 교육장관을 비롯해 중앙 정부의 실세들이 맡고 있다. 이런 대대적인 지원 아래 공자학원은 해외에 있는 중국문화원과는 또 다른 파워를 갖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공자학원을 전 세계 인재가 중국으로 모여드는 통로로 만드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중앙 정부뿐만 아니라 지방 정부까지 동원해 대대적인 장학금 지원 사업을 펼치는 중이다. 특히 아프리카·남미·남아시아 등 저개발 국가 학생들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현재 충칭(重慶) 사범대학에 재학 중인 스리랑카인 찬나드라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콜롬보에 있는 공자학원에서 공부하다가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장학금 혜택을 받아 다른 3명의 학생과 함께 유학 왔다. 학교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기숙사를 제공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각 지역 공자학원의 역량을 제고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쉬린 주임은 “전 세계에 산재한 공자학원의 강의 수준을 균등하게 하기 위해 수준 높은 교사를 교육하고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중국 정부가 해외로 파견한 교사 수는 무려 1만여 명에 달한다.

앞으로 국가한판은 온라인 서비스를 개발해 해외에 있는 학습자가 더욱 쉽게 중국어를 배우도록 할 예정이다. 게다가 한의학, 전통무술, 요리, 예술 등 중국 문화를 특화한 교육기관을 세우는 데도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5년까지 500개가 넘는 공자학원을 세워 150만명 이상의 학생을 배출할 계획이다.

물론 공자학원이 어디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6월 미국 국무부는 자국 내 공자학원에 근무하는 중국인 교사들에게 방문학자용 비자가 아닌 정식 취업 비자를 받아오라고 통보해 중국 정부와 마찰을 빚었다. 중국 문화가 자국의 안방까지 침투하는 것에 대한 우려로 해석되었다.

공자학원의 폭발적인 확장에 놀란 우리나라와 일본도 뒤늦게 해외의 자국어 교육기관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 세종학당과 일본어 학습 거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공세적인 투자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소프트파워가 지구촌을 지배하는 21세기. 어느덧 중국은 우리보다 한 발짝 앞서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빠르게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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