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 실세’ 검은돈 250억 드러나다
  • 이규대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4.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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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신고한 재산은 16억원…법정 싸움에서 거액의 은닉 재산 밝혀져

권력은 곧 ‘돈’이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얘기다. 사회의 모든 힘이 정치권력에 집중되던 시절, 정권(政權)은 금권(金權)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 핵심에 있던 이들부터 그랬다. 문민정부 탄생 이후 ‘권위주의 청산’ 바람이 거세던 1996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심판에는 재산 은닉 및 비자금 조성 혐의가 포함됐다. 두 전직 대통령은 막대한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권력은 홀로 군림하지 않는다. 핵심 권력자를 중심으로 실세들이 암약하며 권력의 지형도를 형성한다. 그들에게도 검은돈이 따라붙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당시 대통령 측근이나 유력자들이 끌어모은 비자금의 존재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속속 드러나고 있는 이유다.

최근에는 6공화국(노태우 정부) 시절 실세로 꼽히는 한 인사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엄삼탁 전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이다. 고인이 된 그의 재산을 둘러싼 수년간의 법정 싸움이 계기가 됐다. 약 2년여에 걸친 진실 게임은 4월14일 대법원 판결로 일단락됐다. 이 소송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정권 실세가 은닉한 재산의 실체와 세탁 과정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2008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 엄 전 실장은 지인에게 유언을 남긴다. 자신의 측근인 박 아무개씨 이름으로 된 600억원 가치의 부동산(서울 역삼동 소재) 소유권을 찾아 가족에게 전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해당 빌딩의 실질 소유주는 자신이며 박씨는 단순 명의수탁자’라는 내용의 각서 등을 함께 남겼다. 박씨가 자신의 수백억 원대 부동산을 차명 관리해왔다는 뜻이다.

엄 전 실장 유족은 당장 그 빌딩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런데 명의수탁자로 지목된 박 아무개씨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양측의 엇갈리는 주장은 곧 민사 소송과 형사 고소(박씨의 횡령 혐의)로 이어졌다. 분명히 어느 한 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왜 이런 상반된 주장이 나오게 됐을까.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작은사진)의 은닉 재산으로 밝혀진 서울 역삼동 소재 빌딩. ⓒ 시사저널 전영기
부동산 거래하며 ‘이중 계약서’ 작성

사건의 시작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엄삼탁 전 실장은 자신과 친분이 있던 권 아무개씨 형제가 운영하는 ㅅ사(社)에 자금을 제공한다. 250억원이라는 거액이었다.

ㅅ사는 1998년 11월 외환위기에 따른 자금 사정 악화로 기업 개선 작업 대상이 된다. 당시 수립된 ‘자구 및 경영 합리화 계획’에서는 ㅅ사의 경영관리단은 자구 노력의 일환으로 경영주 권씨 형제가 소유한 토지와 여기에 건설 중인 미완성 건물을 매각하라고 요구했다.

250억원의 채권을 보유한 엄 전 실장은 투자 자금을 회수할 방안을 모색했다. 그는 서울 강남 요지에 위치한 문제의 토지와 미완성 건물을 매입하기로 결심한다. 2000년 8월 엄 전 실장은 권씨 형제와 매매 계약을 체결한다.

당시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엄 전 실장은 자금 추적을 피할 방법을 모색한다. 여기에 측근 박씨를 끌어들이기로 한다. 엄 전 실장은 고등학교 1년 선배인 박씨와 평소 막역한 사이였다. 박씨는 엄 전 실장이 한국씨름연맹 총재로 재직할 당시에는 이사로, 국민생활체육협의회장일 때는 부회장으로 일했던 측근 중의 측근이었다.

그런데 계약 과정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계약서가 작성됐다. 하나는 권씨 형제의 ‘토지 및 미완성 건물’ 모두를 285억원에 매입한다는 계약서이고, 다른 하나는 매매 대상을 토지로만 명시한 후 매매가를 130억원으로 정한 계약서였다. 다만 여기에는 ‘매매 총 대금은 시공비를 포함한 금액’이라는 것이 특약 사항으로 적혀 있다. 각 계약서가 작성된 경위 등에 대한 양측의 주장은 완전히 엇갈린다.

소송의 쟁점도 둘 중 어느 것이 실제 계약서인지였다. 엄 전 실장 유족은 ‘285억원 계약서’가 진짜라고 주장했다. 매매 대상이 된 건물이 미완성 상태이기 때문에 일단 토지부터 소유권 이전 등기신청을 하기 위해 당시 공시지가에 맞춰 토지만을 대상으로 매매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유족은 박씨가 엄 전 실장의 명의수탁자에 불과하다는 증거로 관련 내용이 담긴 박씨의 각서, 위임장, 확약서 등을 내세웠다.

박씨의 설명은 달랐다. 그는 재판에서 ‘130억원 계약서’가 실제 거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자신은 명의신탁자가 아니라 130억원을 직접 부담한 권리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는 매매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박씨는 ㅅ사 경영관리단의 매각 승인을 얻기 위해 계약금으로 9억9500만원을 우선 지불했다. 이후 남은 120억원은 자신이 개설한 총 7개의 계좌에 계속적으로 분할해 입금했다. 이를 엄 전 실장이 현금으로 인출하는 편법을 썼다. 정치인인 엄 전 실장의 자금 흐름이 추적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문제의 각서 등은 돈을 모두 상환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직 명목상으로는 해당 부동산이 엄 전 실장 것임을 인정하는 ‘매매 대금 지급 담보’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명의수탁으로 수백억 원 숨겨둬

각자가 주장하는 매매 과정은 한눈에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다. 결국 거래의 중심에 있는 엄 전 실장이 자금 흐름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편법을 동원한 결과다. 이 때문에 재판부로서도 어느 쪽이 진실인지 판별하기 어려웠다.

실제 공판 과정에서의 판단도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피고 박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2심과 최종심을 거치면서는 원고인 유족이 승소했다. 공판 과정에서 ‘특약 사항’이 추후 박씨에 의해 기재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났고, 이 사건 주변인들이 진술을 통해 일관되게 유족측의 입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엄 전 실장의 재산을 횡령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형사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토지 소유권을 가리는 민사 소송에서는 패배했다. 문제의 토지 및 건물의 주인은 엄 전 실장 유족이 됐다. 이로써 사법부는 박씨가 명의수탁자일 뿐 해당 부동산은 엄 전 실장의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런데 사법부의 판결은 엄 전 실장이 막대한 재산을 숨겨두었다는 점을 드러낸 꼴이 됐다. 권씨 형제에게 250억원을 투자하던 때와 비슷한 시기, 엄 전 실장은 차관급인 병무청장에 취임한다. 이때 그가 신고한 재산은 16억원 상당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그가 ㅅ사에 투자하고 부동산 매매 자금으로 동원한 돈은 공직자 재산 신고에서 드러나지 않은 은닉 자금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엄 전 실장은 25년간 군에서 직업군인으로 복무했고, 전역 후 3년간 안기부(국가정보원)에서 일했다. 이 기간 동안 받은 월급 등을 합친다고 해도 수십억 원을 모으기 힘들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250억원을 모은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번 공판 과정에서는 과거 정권의 유력자가 은닉 재산을 어떻게 운용했는지도 드러났다. 재판부는 박씨가 엄 전 실장의 명의수탁자라고 판단한 유력 근거로 박씨의 계좌 거래 내역을 들었다.

이에 대해 2심 판결문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대부분 거액의 현금이 입금됐다가 당일 다시 현금으로 출금되고, 이와 같이 출금된 현금이 다시 다른 통장으로 입금되는 형태를 보이는 바, 이는 실질적인 자금의 유입 없이 외형상 거래가 있었던 것처럼 거래 내역이 가공된 것인데, 오로지 자금 세탁을 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엄 전 실장이 차명 계좌에 거액을 입금했다가 출금한 후 다시 다른 계좌에 거액을 입금하는 방식을 통해 비자금을 세탁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16억원이 전 재산이라고 신고한 엄 전 실장은 과연 250억원이라는 거액을 어디서 조달했을까. 그가 은닉한 재산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굳게 입을 닫았다. 현재 엄 전 실장 유족과 박씨는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엄삼탁 전 실장의 유족이 살고 있는 서울 서초동 소재 빌라. 4월17일 현재 유족은 집을 떠난 상태였다. ⓒ 시사저널 박은숙
승자도 패자도 취재진 접촉 꺼려

<시사저널> 취재진은 4월17일 엄 전 실장 유족이 사는 서울 서초구의 한 빌라를 찾았다. 그러나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에 대해 빌라 관리인은 “그제(15일) 이미 집을 떠났다. 현재 집에는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엄씨 유족이 집을 떠난 시기는 14일 대법원 판결 이후 관련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

박씨 역시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렸다. 패소한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임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박씨의 변호인은 기자에게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박씨가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자신이 회장으로 재직 중인 ㅇ건설사 관계자를 통해 “판결로 인한 충격이 커 언론 대응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승소측과 패소측 모두 이번 소송과 관련된 언급을 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6공 실세 ‘엄삼탁’은 누구?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은 대구 출신으로 학군단(ROTC) 장교로 임관해 국군체육부대장을 지냈다.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함께 근무했던 인연으로 동기들 중 선두로 ‘별’을 달았다.

1990년 전역 직후 곧바로 안기부 요직을 꿰차며 6공의 실세로 군림했다. 그는 공사비가 5000억원이 넘게 든 내곡동 청사 신축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1992년 대선 당시에는 김영삼 민자당 후보를 지원했다. 대선에서 승리하자 문민정부 출범 후인 1993년 3월 차관급인 병무청장에 취임하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그러나 취임 전후로 재산 관련 문제가 불거지며 자질 논란이 일었다.

급기야 취임한 지 2개월 만에 사행성 놀이기구인 ‘슬롯머신’ 로비에 연루돼 청장직에서 해임됐다. 슬롯머신업계의 대부로 알려진 정덕진씨로부터 1억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다.

그럼에도 엄 전 실장은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했다. 15대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둔 1997년 10월,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에 전격 입당했다. 김대중 정부 초기 2년여 동안 여당 부총재를 지내며 정계 중심에 있었다.

체육계 활동도 왕성히 했다. 1998년부터 국민생활체육협의회장을 역임했고, 2000년에는 제12대 한국씨름연맹 총재로 취임해 2년간 활동했다. 체육훈장 기린장, 홍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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