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좇아 불나방은 날아든다
  • 엄민우 기자·문정빈 인턴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3.04.2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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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친인척 관리 대상 189명 공개…재계 인사 많아 주목

늘 주변 단속이 문제였다. 대한민국 역대 정권을 돌이켜보면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서 자유로웠던 경우는 어느 정권도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인맥이 철저히 중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리 친척이 대통령인데”라는 한마디는 엄청난 파괴력을 갖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변에서 친인척들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줄을 대거나 꼬드겨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매번 정권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 당선인들은 친인척 관리부터 나섰다. 1992년 12월 14대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은 서울 상도동 집에 친인척 50여 명을 불러놓고 “이제부터 여러분들에게 돈 싸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니 절대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 동안에 차남 현철씨가 비리로 구속되는 쓴맛을 봐야 했다. 비단 김 대통령뿐만 아니다. 역대 모든 정권이 친인척 관리에 실패했다.

한 전직 대통령은 청와대에 입성한 직후 민정수석실에서 관리하는 자신의 친인척이 1000명 가까이 된다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친인척이 수십 명에 불과한데, 그렇다면 나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다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냐”고 되물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지난해 10월26일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가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33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4촌 이내 100~150명 집중 관리 대상

역대 정권에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에 친인척관리팀이 별도로 있었다. 이들이 관리하는 친인척은 대략 대통령 친가 쪽 8촌 이내, 외가 쪽 6촌 이내다. 영부인 쪽으로는 친가와 외가 각각 6촌 이내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돈 집안 종친회까지 관리한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대략 1000명 정도가 된다는 전언이다. 역대 정권마다 친인척 비리가 끊임없이 불거진 탓에 ‘특별 관리 대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늘어났다. 김대중 정부 때 약 700명 규모이던 것이 노무현 정부 때는 930명에 이르렀다. 급기야 지난 이명박 정부 때는 10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 중에서도 특히 4촌 이내 100~150명이 집중 관리 대상이다.

박근혜 대통령 집안은 헌정 사상 최초로 2대에 걸쳐 대통령을 배출했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18년 동안이나 장기 집권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번 박근혜정부는 관리할 잠재적 위험이 다른 정부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있다. 가까운 사이인 동생이나 올케부터 먼 친척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인물들이 무수히 많다. 재계, 언론계 심지어 연예계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이런 탓에 이번 정부에서는 기존의 관리 시스템보다 강화된 친인척 관리가 이뤄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막으려 해도 터지고 또 터지는 것이 친인척 비리다. <시사저널>은 박근혜정부 청와대의 집중 관리 대상이 될 수 있는 친인척 189명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조카사위 박영우 회장, 벌써 도마 위에

대통령 주변의 권력 비리는 반드시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친인척에 국한되지 않는다. 평소 대통령과 왕래 한번 없었던 쪽에서 터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청와대는 고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친인척 가운데 자주 회자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박영우 대유신소재 회장이 주목된다. 박 회장은 엄밀히 말해 박 대통령의 배다른 친척이다. 박 전 대통령의 첫 번째 부인 김호남씨의 손녀사위이기 때문이다. 그는 박 대통령의 조카사위로 불리며 각종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박 대통령의 이름과 함께 거론된다.

박영우 회장은 지난해 말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도마에 올랐다. 문제가 된 부분은 박 회장과 스마트저축은행 간 임대차 거래 내역이다. 당시 스마트저축은행은 주변 건물 시세보다 10배 이상의 보증금을 지급하는 임대차 계약을 맺어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스마트저축은행은 박 회장이 몸담고 있는 대유신소재 계열사다. 당시 김기준 민주당 의원은 “박 회장이 대통령 후보의 친인척이라는 위세를 이용해 불법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주현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박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 EG 회장과 중앙고 동기다. 박영우 회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대유에이텍과 자베스파트너스는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됐다. 우선협상대상자란 경쟁 입찰 시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 추려진 업체로, 일정 기간 동안 매각 협상에서 우선권을 갖는다. 금융 당국의 한 인사는 “김 사장은 박지만 회장과 가까운 사이로 금융권에 소문 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29일 예금보험공사는 서울신용평가정보 지분 60.4%에 대한 매각 공고를 냈다. 이후 예금보험공사는 박영우 회장의 대유에이텍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했다. 당시 대유에이텍은 우선협상대상자가 될 수 없었다. 금융사를 소유한 회사는 신용평가사를 인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유에이텍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하루 만에 그 지위를 포기했다. 지난해 11월12일에는 자베스파트너스가 설립한 자베스파트너스컨소시엄이 예금보험공사로부터 그린손해보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됐다. 박영우 회장은 이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자베스파트너스는 박 회장의 형인 박영호씨의 아들 박신철씨가 대표로 있는 기업이다.

고액 후원금 낸 친인척 많아

박영우 회장은 현재 국감 불출석 및 부당이득 취득 혐의로 국회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검찰에 고발당한 상태다. 국회에서도 박 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김기준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 업무보고 때 해당 건에 대해 검찰 추가 고발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향후 진행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 관련 이슈는 현 정부에게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언론 보도 때마다 ‘박근혜 조카사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박영우 회장 부부는 과거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최대 후원자로 부각되기도 했다.

박영우 회장의 경우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친인척 중에는 특히 재계 인사가 많다. 청와대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 대통령의 외사촌인 홍지자씨와 남편 정영삼씨는 박 대통령에게 고액 후원금을 냈다고 국회에서 지적받은 바 있다. 지난해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무소속 박원석 의원은 홍지자·정영삼 부부가 2년 동안 총 800만원의 정치후원금을 냈으며, 민속촌 인수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영삼씨는 현재 한국민속촌을 소유한 조원관광진흥 회장을 맡고 있다.

한승수 전 총리는 박 대통령의 사촌형부다. 한 전 총리는 박 대통령뿐 아니라 현 정부 인사들과도 인연이 많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김선동 청와대 정무비서관,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모두 한 전 총리와 함께 일했다. 최근 영국 대처 전 총리의 장례식에 대통령 조문특사로 파견됐던 한 전 총리는 현재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의 비상임 이사를 맡고 있다. 이화영 유니드 회장은 한 전 총리와 사돈지간이다. 이화영 회장의 장녀 희현씨와 한 전 총리의 장남 상준씨는 부부다. 41세인 상준씨는 유니드의 전략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다. 이화영 회장의 장남 우일씨는 3월19일 접수된 ‘OCI상사 감사보고서’ 확인 결과 OCI상사의 주식 35.71%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설자씨는 박 대통령의 사촌언니다. 박씨의 남편은 김희용 동양물산기업 회장이다. 김 회장의 친형이 벽산그룹 김희철 회장이며 김희철 회장의 부인 허영자씨는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동생이다. 한병기씨는 박 대통령의 형부다. 설악관광케이블카 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의 아들 태준·태현 씨가 설악케이블카의 지분 과반을 보유하고 있다. 한병기 회장 부자는 설악케이블카 운영권을 독점 운영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박재홍 전 동양철관 회장은 박 대통령의 사촌오빠로 4선 의원을 지냈다. 한때 동양철관은 ‘박근혜 테마주’로 불리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유연상 전 영남대 재단이사장은 고(故) 육영수 여사의 조카사위다. 숙부인 유준씨가 영남대 이사와 총장을 지냈는데 당시 이사진 중에 신기수 전 경남기업 회장과 박근령씨가 포함돼 있었다. 신기수 전 회장은 과거 박 대통령에게 서울 성북동 주택을 무상으로 지어주는 과정에서 탈세 의혹을 받았다.

대한축구협회장을 역임했던 박준홍씨는 박 대통령의 사촌오빠다. 박준홍씨는 2010년 6월 지방선거 때 ‘친박연합’을 창당했다. 그는 정당을 창당한 뒤 시의원 공천을 주겠다며 3500만원을 받아 구속됐다. 최근엔 사찰 주지 고소 사건과 관련해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지난 3월22일 ‘채널A’는 문경의 한 사찰 주지가 지난 대선을 전후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인부들에게 임금과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 검찰에 고소당한 사건을 단독 보도했다. 이때 박준홍씨가 박근령씨와 함께 제사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그는 현재 민족통일촉진회 총재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파리클럽 회장 및 보광개발 회장 등을 지낸 은희만씨는 박 대통령의 사촌오빠다. 박정희 전 대통령 누나의 아들인 은씨는 지난해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박정희 전 대통령 33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박 대통령과 나란히 앉았다. 은씨의 3남은 방송인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은지원씨다.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와 화제가 됐다.

“친인척 비리는 사회적 지위 가리지 않아”

박 대통령의 사촌오빠들이자 형제지간인 박재석·박재호 씨는 지난해 발생한 박 대통령 5촌 조카 살해 사건으로 슬픔을 겪었다. 당시 경찰은 박재호 전 동양육운 회장의 아들 용수씨가 박재석 전 국제전기산업협회장의 아들 용철씨를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시사저널>은 해당 사건의 국과수 부검 결과를 단독 입수해 경찰이 발표하지 않았던 부분을 보도했다.

홍세표 전 외환은행장은 박 대통령의 이종사촌 오빠다. 홍 전 행장은 1954년 한국은행에 입행한 후 한미은행장을 지냈다. 그는 2007년 박 대통령에게 500만원의 정치후원금을 기부해 관심을 모았다. 홍 전 행장의 장녀 소일씨는 2007년 어머니 김영자씨와 같은 날 학위를 받아 화제가 됐다. 소일씨는 현재 대한지적공사 해외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은 박 대통령 이종사촌의 사위다. 18대에 이어 재선인 김 의원은 현재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간사를 맡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 현재 부산·경남 지역에서 가장 부자인 공직자로 879억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김 의원은 선친인 김진재 전 의원이 활동했던 부산 금정구에서 당선돼 지역구 세습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박근령씨와 이혼한 류청씨의 동생은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다. 류진 회장은 국무총리를 지낸 노신영씨의 차녀 혜경씨와 혼인했다. 비록 이혼으로 박 대통령 가문과의 연결 고리는 끊겼지만, 친인척 관리 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요직에 있는 대통령 친인척일수록 구설에 휘말릴 위험이 크다. 힘이 있다고 생각해 여러 사람이 접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맥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대통령 친인척이라는 위치 자체가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친인척 비리가 쉽게 척결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풍토와 관련돼 있다. 역대 정권을 보면 친인척 비리는 인물의 사회적 지위를 가리지 않고 일어났다”고 진단했다. 박 대통령의 경우 배우자가 없기 때문에 전체 친인척 관리 대상 숫자는 이전 정권에 비해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친인척들의 화려한 면면과 함께 과거 권력의 단맛을 봤던 인사들도 상당하기 때문에 여권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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