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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으로 돌아가라”

보스턴 마라톤 참사 이후 힘 얻는 강경파, 딜레마에 빠진 오바마

김회권 기자·김원식│뉴욕 통신원 ㅣ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3.04.24(Wed) 09: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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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95km라는 인고의 길, 그 끝에 위치한 마라톤 결승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소’라고 말해진다. 4월15일 미국 보스턴, 미소와 환희를 머금고 뛰어들어와야 할 그곳이 비명과 혈흔으로 가득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보스턴 마라톤대회 결승선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때문이다.

테러 발생 이후 미국 연방수사국(FBI)을 중심으로 미국의 모든 수사기관이 동원돼 범인을 잡겠다고 나섰다. 보스턴의 한 경찰이 “묵사발을 내겠다”며 격한 감정을 쏟아냈을 만큼 이번 폭탄 테러로 미국이 받은 충격은 컸다. 배후 세력이 알카에다와 관련이 있든, 미국 정부에 원한을 가진 ‘외로운 늑대(lone wolf)’와 같은 자생적 테러리스트이든, 이번 폭탄 테러 사건으로 상처를 받은 피해자는 부지기수다. 이 폭탄 테러로 워싱턴 정가와 백악관도 심각한 파편을 맞았다.

   
4월15일(현지 시각)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 결승선 근처. 피가 낭자한 폭탄 테러 현장에 부상자들이 쓰러져 있다. ⓒ AP 연합
‘테러’ 규정에 이틀 걸린 오바마

압력솥으로 제작된 이번 폭탄이 터진 뒤 전 세계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입을 주목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건 직후 발표한 긴급 성명에서 “이번 사건의 배후가 누군지, 동기가 무엇인지 등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속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첫 성명에서 그는 ‘테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규정을 내린 것은 사건 발생 이틀이 지나고 나서다. 보스턴 폭발 사건을 “가증스럽고 비겁한 테러 행위(act of terrorism)”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폭탄이 무고한 시민을 겨냥했을 때에는 언제든지 테러 행위라고 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테러’라고 규정하기까지 걸린 이틀의 시간은 무엇을 의미할까. ‘테러’라는 규정을 내리는 데 신중한 자세를 취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이틀이라는 시간은 ‘고민’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미국 본토에서 폭탄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장 곤혹스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오바마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처참했던 장면 중 하나는 2001년 9월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빌딩이 비행기 테러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붕괴 현장에서 핸드 마이크를 들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당시 이 선언은 공화당과 민주당을 불문하고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이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개시됐고, 미국은 엄청난 달러를 쏟아부어 테러와의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피로감은 점점 커졌고, 막대한 전쟁 비용은 미국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는 주범이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비판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런 그가 이번 보스턴 사건을 섣불리 ‘테러’라고 규정했을 경우 “미국의 안전을 위해 당신은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정치적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재선을 등에 업고 총기 규제와 ‘시퀘스터(sequester)’라고 불리는 연방 예산 삭감 문제를 정면 돌파하려고 했던 오바마 대통령에게 12년 만에 부활한 ‘본토 테러’는 악몽이나 다름없다. 신중한 테러 규정에는 이런 고민이 깔려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파를 떠나 이 난국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의 바람이 통할 가능성은 부시 때와 달리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오바마의 첫 대선 상대였던 존 매케인, 두 번째 상대였던 미트 롬니 모두 “지금의 오바마 정부가 이슬람권의 테러 위협을 과소평가하고 중동 국가들을 달래는 데만 치중했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지난해 리비아 벵가지에 위치한 미국대사관에서 미국 영사가 피살되자 공화당은 “백악관이 ‘테러와의 전쟁’을 등한시한 결과”라며 오바마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보스턴 테러 사건이 터진 뒤 공화당의 피터 킹 하원의원(뉴욕)은 오바마의 초당적인 협력 주문에 대해 “역사적으로 미국은 위기 때마다 국가적으로 협력을 해왔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날에도 통할지는 모르겠다. 오바마의 초당적 대응 필요성은 지지하지만, 마찬가지로 그가 이전 부시 대통령의 그러한 요구를 통렬하게 비판한 데는 아이러니가 있다”고 말했다.

   
4월18일 오바마 대통령이 보스턴 마라톤대회 테러 희생자와 부상자들을 위한 연합 예배에 참석했다. ⓒ DPA 연합
“보스턴 테러, 새로운 형태의 공격”

4월15일 보스턴 테러는 미국의 주요 이슈들을 잠식해버렸다. 미국 내 논쟁거리였던 총기 규제에 관한 의회 법률 제정 그리고 북한의 미 본토 핵공격 위협 등은 이내 뉴스의 중심에서 사라졌다.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6일, 오바마 대통령은 사전 녹화된 미국 NBC 방송에 출연해 “북한은 탄도미사일에 핵무기를 장착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대화를 시작하려면 북한이 전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내용은 보스턴 테러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녹화된 것이었고, 이미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벗어난 뒤라 주목받지 못했다.

연일 북한 관련 뉴스로 도배를 하던 CNN도, 북한 관련 내용이 메인을 차지하던 미국 국무부의 정례 브리핑도 달라졌다.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과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을 증인으로 출석시킨 하원 정부 예산안 관련 청문회에서도 보스턴 테러 사건과 관련한 질문만 쇄도했다. 북한 문제에 관한 답변을 준비했던 헤이글 장관은 청문회 자리에서 보스턴 사건을 ‘잔인한 테러 행위’라고 규정했다.

미국 전역이 이번 참극을 두려워하고 있는 이유는 보스턴 테러가 새로운 모습을 띤 공격이라는 점 때문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공항과 항만 보안 통제를 엄격하게 실시했다. 아프가니스탄을 시작으로 이라크, 예멘,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외국인 테러리스트를 추적해 제거했고 전 방위적인 정보 수집을 통해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이 불가능할 정도로 보호막을 조성했다. 그런데 그 틈을 뚫고 성공한 방법이 공공장소를 대상으로 하는 테러 전술이었다.

미국 국가대테러센터(NCC) 소장을 지낸 마이클 리터는 “틀림없이 9·11 때보다는 완벽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미국인들에게 이번 보스턴 테러는 아직도 국가 안보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해줄 것”이라며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테러 대책을 나름으로 준비했지만 공개 행사에서 속수무책이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고민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오바마와 같은 민주당 소속이며 전 하원 정보위 위원인 제인 하먼 의원은 “이번 테러에 사용된 것과 같은 폭탄을 모두 발견할 방법은 없으며 우리가 테러로부터 100%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추가 테러가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나선 모양새다.

미국 육군 특수부대 출신으로 보안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짐 리스 대표는 “이번 마라톤 코스는 범위가 26마일에 달해 테러리스트가 노리기 쉬운 행사다.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보스턴 경찰 관계자는 경찰 투입도 충분했고, 폭탄 탐지견도 준비했다고 밝혔다. 마라톤 코스에 포함되는 홉킨턴 고등학교 옥상에는 소총 사수까지 배치됐다. 그래도 사건은 터졌다. 짐 리스 대표는 “오는 11월에 개최될 예정인 ING 뉴욕 마라톤의 경우 센트럴파크의 골 부근에 모이는 관중에 대한 보안이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아마 모든 사람이 검사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스턴 테러 사건이 발생한 직후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당신이 어제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것”이라고 말하며 안전 불감증을 지적하고 나섰다. 테러에 대한 ‘공포’는 이미 정치 영역에서도 작동하고 있다. 지금은 모든 시선이 보스턴에 쏠려 있지만 워싱턴에서는 보스턴 테러가 오바마 정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전망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보수파와 공화당 의원 일부는 ‘테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 주저했던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다시 ‘대테러 전쟁’을 선언하라는 압박도 넣고 있다. 과거 부시 정부에서 이미 큰 손해와 낭비를 경험했지만 미 본토에 대한 테러 공격이 다시 발생하면서 강경 주장도 다시 활력을 얻었다.

“초당적 협력? 클린턴 때와 다르다”

오바마 대통령의 운신 폭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오랫동안 오바마의 정치적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익명의 관계자는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건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우리 정치권은 이런 문제를 정치 의제로 잘 다루고 있지 못하다”며 보스턴 테러 사건이 다른 의제들을 휩쓸고 갈 것을 우려했다. 또 다른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이번 테러 사건을 다른 여러 문제를 합의하는 데 반대하는 명분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악관의 전망도 비슷하다. 한 관계자는 “보스턴 테러 사건이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버려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테러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창 전투적일 때 발생했다. 재정 절벽 문제로 공화당과 ‘출구 없는 소모전’을 벌이며 그 어느 때보다 외교·안보 문제보다 내치를 지향하던 때 일어난 것이 이제는 오히려 약점이 됐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백악관 자문역을 맡았던 폴 베가라는 1995년 발생했던 오클라호마시티 폭탄 테러 사건을 떠올렸다. 그는 “그 당시에도 공화당은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라고 주장하는 등 지금보다 더한 주장을 했는데, 클린턴은 통합의 지도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현재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반감이 그 어느 때보다 극에 달해 있다. 이번 테러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은 무조건 강하게 대응할 것이고, 오바마는 클린턴과 달리 이번 비극을 잘 활용하지 못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오바마 대통령은 ‘테러’를 비판하며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국가 간의 전쟁이라는 단순한 구도가 아닌 테러라는 ‘비대칭 전쟁’이 얼마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일인지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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