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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딸’ ‘TK 청장’ 엉키며 정치경찰 민얼굴 드러났다

검·경 수사권 독립에 사활 걸었던 경찰, 잇단 ‘자충수’로 위기

조해수 기자 ㅣ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04.30(Tue) 2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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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뇌부가 선거(18대 대선) 막판에 노골적으로 ‘여당 줄서기’를 했다. 등에 칼을 맞은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대선 직후 민주당에서는 경찰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대선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이 검찰에 맹공을 퍼부으며 경찰과는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정치권에서는 ‘경찰은 야당, 검찰은 여당에 줄을 섰다’는 말이 나돌았다. 민주당이 검찰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에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권은희(왼쪽) 수사과장은 “경찰청 고위층이 국정원 여직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고 폭로했다. 김용판 전 서울청장은 이 사건과 관련한 수사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연합뉴스
김기용 전 청장-김용판 전 서울청장 알력도 

그런데 대선 막바지에 이상한 기류가 감지됐다. 그 발단은 ‘국정원 여직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다. 민주당은 대선 일주일 전인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이 댓글로 여론을 조작했다”며 국정원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국정원 직원 김 아무개씨(29)를 경찰에 고소했다. 문제는 경찰의 중간 수사 발표에서 불거졌다. 경찰은 “김씨가 댓글을 작성한 흔적이 없다”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고소를 접수한 지 불과 4일 만인 12월16일 밤 11시에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선거가 사흘 남은 시점인 데다 대선 후보 마지막 방송 토론회가 있는 날이어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시점이었다. 국회 법사위 소속의 한 민주당 의원은 “당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커지자 경찰 수뇌부가 저쪽(여당)으로 선회한 것이다. 실무진 등 경찰 중간 간부들이 민주당을 지지할지라도, 수뇌부가 결정해버리면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경찰 수뇌부가 경찰 전체의 이익(수사권 독립)보다 개인의 출세를 선택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청 고위층이 이번 사건 수사를 방해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양심 고백이 터져나왔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수서경찰서의 권은희 전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은 최근 언론을 통해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 초까지 경찰 상부에서 지속적으로 수사에 개입해 우리 실무진이 수사에만 집중하기 힘들었다”고 폭로했다.

압력을 행사했던 ‘윗선’으로 지목된 인사는 김용판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퇴임)이다. 김 전 청장은 대구 달성군 태생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을 지냈던 영남대를 졸업했다. 김 전 청장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달성경찰서장을 지내기도 했다. 달성군은 박 대통령의 의원 시절 지역구이기도 하다. 김 전 청장이 달성서장일 때 역시 박 대통령이 그 지역 국회의원이었다. 전형적인 TK(대구·경북) 인사로 ‘박 대통령 인맥’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이 때문인지 김 전 청장은 새 정부 들어 유력한 경찰청장과 해양경찰청장 후보로 자주 거론됐다. 경찰 관계자는 “김기용 전 경찰청장 재임 기간에도 실세는 김용판 전 서울청장이라는 말이 많았다. 김기용 전 청장과 김용판 전 서울청장 사이에 알력도 상당했다. 한 예로 김기용 전 청장은 학교 폭력 예방에 주력했는데, 김용판 전 서울청장은 따로 ‘주폭 척결’을 내세우면서 유력 언론사와 공조해 언론 플레이를 펼치는 등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반면 권은희 수사과장은 이른바 ‘광주의 딸’이다. 권 과장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부속여고와 전남대 법대를 졸업했고, 2001년 사법고시(43회)에 합격한 후 청주에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2005년 치러진 경찰 간부(경정) 특채 시험에 8.9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경찰에 입문했다. 이런 그를 두고 문희상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4월21일 “용기 있는 말로 인해 그분(권 과장)은 ‘광주의 딸’이 됐다. 민주당은 당력을 총동원해 광주의 딸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 권 과장이 민주당을 위해 내부 고발한 것처럼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권 과장이 곧 경찰복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할 것이며, 이후 민주당에 입당해 광주 지역 선거구를 맡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권 과장은 현직 경찰공무원으로서 이번 양심 고백과 관련해 민주당과 전혀 교감이 없었다. 문 위원장의 광주의 딸 발언은 광주 대의원대회에서 한 것으로, 그때 현장 분위기에 맞추다 보니 나온 말”이라고 뒤늦게 해명에 나섰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취임사에서 “어렵고 중요한 시기에 무거운 책임을 맡게 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청와대, 경찰청 범정과 폐지할 듯

경찰 수뇌부와 일선 경찰 간부들 사이의 불협화음은 유력 인사 별장 성접대 사건에서도 불거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3월2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수차례에 걸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의혹이 있는지를 경찰 수뇌부에 확인했다. 차관 임명 당일까지도 ‘없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이 대서특필된 후 일선 수사 라인이 청와대에 보고한 내용은 전혀 달랐다. 경찰이 성접대에 동원된 여성들을 이미 만나 진술까지 받아놓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경찰의 부실 보고에 박 대통령이 진노했고, 이에 대한 문책으로 유임이 점쳐졌던 김기용 전 청장이 전격 해임됐음은 물론, 이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 책임자도 전원 교체됐다.

성접대 사건 후폭풍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듯하다. 이번 사건을 주도한 경찰청 범죄정보과(범정과)를 폐지하려는 움직임까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범정과는 조현오 전 청장 재임 중이던 2011년 신설된 조직으로, 고위 공직자나 대기업 비리 수사를 전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청와대의 눈 밖에 나면서 범정과는 바람 앞의 촛불 신세다. 총대는 안전행정부(안행부)가 메는 모양새다. 4월11일 유정복 안행부장관은 “경찰 인력을 현장 중심으로 재배치하겠다. 경찰청 본청의 규모를 줄여 현장 인력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사정기관 관계자는 “안행부가 경찰청 공식 직제에 포함되지 않는 비직제 부서를 폐지할 방침이다. 이는 사실상 ‘범정’을 노린 것이 아니겠는가. 지능범죄수사대도 그 대상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경찰이 특수수사에 사활을 걸고 만든 두 핵심 조직이 모두 존폐의 위기에 선 셈”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괘씸죄에 걸린 범정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경찰 고위 간부 회의에서 이 문제로 토론을 벌였는데 간부들이 대부분 범정 폐지에 반대했으나 정작 이성한 신임 경찰청장은 ‘4대악 척결’만을 강조한 것으로 안다. 4대악은 민생 치안에 관계된 문제이지 범정의 특수수사와 전혀 관계없다. 새 정부가 범정 폐지로 가닥을 잡으면 이 청장도 결국 거기에 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경찰은 민주당은 물론 청와대와도 멀어지면서 고립무원 상태이다. 이에 따라 경찰의 오랜 염원도 사실상 ‘물 건너간’ 분위기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경찰은 수사권 독립을 주장할 때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을 비판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정치경찰’이 돼버렸다. 수사권 독립을 말할 자격이 없어진 것이다. 제 무덤을 판 꼴이다”라고 자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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